아주 특별한 상황이지만, 응급실에서도 분만하는 경우가 있다. 모든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수를 상정하는 응급실의 특성상, 분만도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래서 나도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몇 번의 분만에 직접 관여해야 했다.
준비된 분만실이 아닌 응급실에서 분만해야 하는 상황이니 그것들이 얼마나 급박했겠는가. 택시에서 양수가 터져 전 의료진이 응급실 앞에 주차된 택시로 달려가 아이를 받아 탯줄을 잘라 가져온 경우도 있었고, 아이가 머리만 빼꼼히 나온 채로 소생실에 들어온 경우도 있었고, 변기에 빠진 신생아를 데려온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매번 응급실에 있는 유일한 책임의사로서 혼자 그 상황들을 관장해야 했다.
하지만 나도 맨 처음엔, 그 중요한 시술인 ‘분만’을 직접 준비해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학생 때가 유일했다. 케이스가 많지 않아 응급의학과 내부에서는 체계적으로 이를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습의 추억
산부인과 의사가 아닌 이상 모든 의사들의 경험은 나와 비슷하다. 그래서 매번 이런 상황은 문헌적인 습득에 더해, 기본적인 의사의 소양으로 해결해내야 했다. 그러나 글로 알게 된 지식은 위기 상황에서 대처의 방편이 되기 힘들다. 특히 사람을 직접 다루며, 그것이 생명과 직결되는 의학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아무리 문헌을 잘 외워도, 실제 그 과정을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환자에게 위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의사들이기 때문에, 교육 과정에서 아무리 간단한 시술도 처음에는 꼭 숙련자가 옆에서 가르치거나 눈으로 직접 보여주게 되어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처음’은 힘들 것을 이해하고 또 대처할 수 있게 만들어 인간의 안위 앞에 경건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그래서 내가 분만 관련된 급박한 상황에 닥칠 때마다, 기대었던 것은 학생 때 보았던 분만의 기억이었다. 언제 분만이 일어날지 몰라, 어두운 산부인과 당직실에서 밤을 새워 대기하던 때가 눈에 선하다. 그리고 분만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뛰어나가 지금은 누군지 기억할 수도 없는 산모에게서 아이가 태어나던 과정을 똑똑히 떠올려 그 환자들에게 임했다. 그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된 과정은 순조로워서, 위급한 상황을 견디게 해 주었으며, 매번 건강한 아이와 산모를 산부인과 의사에게 인계할 수 있었다.
나는 당시 산부인과 당직의 백업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러한 기반이 없는 오지에서의 상황도 분명히 있을 것이며, 더불어 나보다도 관련 경험이 없는 의사도 있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도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각자의 기억들을 바탕으로 환자의 목숨을 구하려고 임할 것이다.
나는 매번 그 뿌듯한 과정에서 지금은 누구인지 기억나지도 않는 산모와 아이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생면부지의 남에게 분만 과정을 보이는 일은 당연히 하고 싶지 않은 일일 것이며, 그것을 숭고한 희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다고. 나는 그 덕분에 현장에서 두 사람의 생명을 동시에 책임질 수 있는 의사가 되었고, 또 내가 이번에 구해 낸 두 개의 생명에 있어서도 대신 감사하다고.
다시 불거진 분만 실습 논란
의대 실습 과정에서 유독 분만에 관한 논란이 많으며,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했다. 그것은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분만은 매우 특별한 의학적 상황에 속한다. 일단 병이 아니기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며, 급박하고 다양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고, 가임기의 젊은 여성에게만 생기며, 환자가 대개 맨 정신이고, 두 개의 목숨이나 걸려 있으나 자연적으로 일정 확률의 사망이 발생한다.
언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으며 중하지만 생명이 탄생하는 숭고한 상황. 이 상황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전국에 의사라는 집단뿐이며, 환자에게도 그 급박한 상황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의사뿐이다. 고로 인간 중에서 누군가 해야 한다면 꼭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이다.
덧붙여 분만이라는 생사가 걸린 과정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의사의 자격이 있다고 할 것인가. 의사들과, 동반한 교육과정도 전부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레이저나 쌍꺼풀 시술 같은 것은 보지 않아도, 의사 면허를 취득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실제 선택하지 않으면 볼 기회도 없지만, 자연 분만은 의학에서 너무나 중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습 과정에서 겪고 숙지하도록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이 있어, 이미 실습을 마치고 면허를 가지고 있어 관련된 이해관계가 없는 의사들임에도 최근 언론 보도에 극렬히 반발한다. 그들도 전부 막연한 상황에서 분만 환자를 만나, 이전 환자들과의 경험을 발판으로 다른 환자의 생명을 살려 내왔기 때문이다. 이 알고리즘의 존치 여부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 수련병원이라 할지라도 산모의 동의 없이 무례하게 실습을 진행할 수는 없고, 그 절차에 있어서도 충분히 논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교육이 목적이라고 할 지라도 산모들이 느낄 수치심에 비할 바는 아니다. 분만 과정에서 환자에게 무례함을 끼쳐 희생을 덧없이 만드는 행위는, 의료 현장과 산모를 직면한 의사들이 먼저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몇 가지 사실 역시 주지할 필요가 있다. 분만 실습은 의사 양성과 수련을 기본으로 하는 대학병원에서만 이루어지고, 또 수많은 환자를 다룬 산부인과 의사의 주관 하에서만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과정에서 숙련된 산부인과 교수는 산모에게 무례함이 가해지지 않는 선에서, 의학 교육에 필요한 만큼만 학생들을 참관시키며, 곧 의사가 될 의대생들은 그 과정을 감사해하며 머릿속에 새겨 다른 환자들을 살릴 준비를 한다.
개선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의사들 역시 이와 관련된 논의의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럼에도 의사들이 이런 식의 보도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은 그 모든 전제와 과정이 무시된 채, 감정적으로 의사를 환자의 인권을 해치는 존재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이미 수없이 이루어졌던 숭고한 분만의 과정에서, 목도한 장면들에 충분히 감사해 왔으며, 그 희생을 딛고 생명을 보존하고, 또 다른 생명을 이 세상에 가져오고 있었다.
환자의 인권을 논하는 이 당위성 있고 피할 수 없는 과정에서, 이 실습의 간절함과 의사들이 그간 느껴온 감사함, 그리고 그로 인해 살아나는 생명에 대한 입장이 간과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내가 느껴온 감정과 경험에 비추어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원문: 남궁인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