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코노미스트지의 기사 ‘Passive panic‘을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 문장의 세계에서 수동태(passive voice)처럼 푸대접받는 존재는 드물겁니다. 본지를 포함한 수많은 언론사의 스타일가이드에서부터 유명한 작문 서적에 이르기까지 수동태 문장을 쓰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으니까요. 문서 작성 프로그램의 교정 기능을 사용해도 수동태 문장은 능동태로 고치라는 제안이 뜹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수동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 둘째는 “수동태 문장을 쓰지 말라”는 충고가 시도때도 없이 남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수동태 문장의 문제점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 첫째는 문장에서 ‘누가 무엇을 했는가’라는 정보가 누락된다는 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되었던 민간인들이 죽임을 당했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을 때, 이 문장은 민간인들을 죽인 주체, 즉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 드론의 존재를 숨기고 있었죠. 도널드 트럼프는 멕시코계 미국인 판사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해당 판사의 공정성에 대해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누군가요? 다름아닌 트럼프 자신이죠.
- 수동태의 두번째 문제는 이 문장이 최악의 학술 문서나 공문서에서 남용된다는 점입니다. 실험 참가자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선발”되었고”, 이렇게 행동한다는 점이 관찰”되었고”, 결과는 이러이러하게 분석”되었다”라는 글은 연구를 수행한 사람의 존재를 지우고, 실험이 저절로 수행되었다는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수동태의 비판자들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작가 스티븐 킹은 자서전에서까지 여러 번 “수동태 시제(passive tense)”를 비판한바 있습니다. 하지만 수동태는 시제가 아닌데요. 시제는 일이 일어난 시점이지, 행동의 주체를 지칭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죠.
수동태가 아닌 문장이 수동태라며 욕을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잉글랜드 은행 총재가 “50파운드 지폐를 곧 발행할 계획은 없다. 여러 종류의 지폐가 필요하긴 하지만 소액권이 필요하다는 피드백이 있었다(there are no immediate plans for the £50 note…The feedback is that the notes need to be smaller; different sizes, but smaller.)”고 말했을 때, 한 미국 시사잡지는 “총재가 수동태를 아주 효과적으로 썼다”고 비꼬았습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총재의 발언이 애매하긴해도 수동태는 아니었죠.
능동태 문장이 늘 강렬하고 능동적인 내용을 담아내는데, 수동태 문장은 약하고 애매하다고요? “기자가 책상에서 졸았다”는 문장은 능동태이고, “런던이 외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수동태 문장인데요? “누군가 내 케익을 먹었다”라는 능동태 문장이 “내 케익은 이웃집 아이들에 의해 먹혔다”는 수동태 문장보다 명확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수동태 문장도 분명 쓸모가 있습니다. “내 애완 햄스터가 사고를 당한 날은 잊을 수 없을 겁니다”라는 문장은 화자의 슬픈 마음과 불쌍한 햄스터를 강조하는 효과를 냅니다. 복수심을 불태우는 악당이 아닌 다음에야 굳이 “스티브가 내 애완 햄스터를 깔아뭉갠 날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죠.
글의 흐름상 수동태 문장이 더 적절한 경우도 있습니다. “짐이 가장 사랑한 것은 그의 오보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것을 도둑맞았습니다(Jim loved nothing more than his oboe. Then one day it was stolen.).”라는 글을 예로 들면, 오보에가 목적어로 첫 문장의 끝부분에 등장했으니, 두 번째 문장에서는 독자가 이를 잊기 전에 바로 주어로 삼아 수동태 문장을 쓰는 것이 자연스럽죠.
수동태 문장이 문제가 되는 것은 “~에 의한” 부분이 생략된 수동태 문장이 불완전하고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수동태 문장을 절대 쓰지 말라는 조언은 대부분의 경우 문장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담으라는 조언으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적재적소에 적절한 문장 형식을 다양하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초보 작가들이 수동태 문장을 남용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수동태 문장을 쓰면 왠지 글이 어른스럽고 진지해지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초보 작가들에게 웬만하면 능동태 문장을 쓰라고 권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조언입니다. 하지만 문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멀쩡한 문장 구조를 악마화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