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지금까지 내 취업 노하우의 기본 정신이라고 해도 되는, 그러니까 그리 꿈팔이스럽지는 않은 조언이다. 주위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식의 조언을 자주 본다. 솔직한 반응은,
라고 말하고 싶다.
내 조언은 “사회에서 그럭저럭 제일 안정적으로 팔리는 기술을 연마해라“이다. 회사는 망한다. 윗사람은 짤린다. 회사가 망하지 않더라도 부서는 없어지고, 윗사람이 바뀌면서 일이 바뀌고, 품목이 없어지고, 새 품목이 주 종목이 되고, 딴 나라로 옮겨버리기도 한다.
한 회사에 충성 바치는 건 엄마 아빠가 대주주이지 않은 이상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예외라면 법조계, 회계인 것 같은데 여기선 어쨌든 버텨야 파트너를 달기 때문에 쉽게 움직이진 않는다고 들었다). 평생직장 개념이 깨지면서 나중에 나 잘 봐줄 거라 믿고 윗사람에게 충성 다한다는 것처럼 의미 없는 짓이 없다.
지난 3년 동안 난 윗사람 네 번 바뀌었다. 이번에 또 상사 갈렸다(짤린 건 아니고 세 사람은 좋은 데로 이직해서 나갔다). 물론 이 사람들하고 좋은 관계 유지하는 거 중요하고 열심히 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사에게 충성해뒀다가 그 사람이 높은 자리 가면 나도 같이 투게더 해피해피 승진…은, 뭐 없는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내 위험확률이 너무 커진다.
위험을 쉴 새 없이 계산하고 피하는 게 좀 성격적인 면도 있긴 하다. 회사 하나에 내 커리어를 맡긴다는 것, 내 상사에게 내 승진을 맡긴다는 건 최소한 나에게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커 보였다.
결정적으로 (소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 빼고는) 내가 어떻게 컨트롤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내가 어떻게 일한다고 해서 상사가 나를 내 맘처럼 봐주는 건 아니니까. 이쁘면 좀 더 좋게 봐주고, 성격 안 맞으면 덜 하고, 프로젝트 잘 풀리면 똑같이 일해도 더 좋은 평가 받고, 내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망하면 내 능력도 엉망으로 보이고 등등.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은 나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는 말도 될 수 있겠으나 뒤집어 보면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나도 망할 수 있다. 왜 꼭 필요한데? 노하우가 쌓여서? 그거 다른 데 가도 써먹을 수 있는 거야? 이런 상호의존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내 협상 여지도 줄어든다. 그쪽에서도 알거든. 니가 나가서 뭐할 건데.
문제는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해서 어느 정도 일하다 보면 연봉 상승과 동시에 전문화 및 경력 상승도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일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은행원 자리는 많지만 점장 자리는 별로 없듯이 말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은행원보다 점장이 더 중요하고 필요할 거다. 그렇지만 자리 옮기는 것은 점장보다 은행원이 더 쉽다.
이래서 기술직 1인으로 전문화, 연봉 상승, 움직임의 용이함을 다 고려하게 되는데 내 결론은 ‘우선 무조건 기술직으로 남는다’가 최우선이었다. 관리직 기술은 객관화하기 힘들고 시장에서 팔기 힘들다. 인맥 따라 움직인다고 하지만 그건 남에게 기대기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에도 안 맞고 난 기본적으로 의심이 많은 인간.
그럭저럭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하고 상용화된 기술을 사고파는 인력시장에선 회사보다 기술이 철밥통이다. 그리고 이건 내가 컨트롤이 가능하다. 내가 찾아서 배우면 되잖소. 하지만 기술이 너무 특화되면 완벽한 마켓(무한한 수요와 무한한 공급, 완벽한 정보)에서 아주 많이 멀어진다. 늘 매매가 많은 시장이 안정적이지, 가끔가다 대박 나지만 안 그럴 땐 조용한 시장은 혹시라도 내 사정 때문에 급하게 옮겨야 할 때 불리하다.
이게 유행인지 아닌지도 중요하다. 한때 지나가는 유행인 걸 이게 수요가 많구나 싶어 올인하면 나중에 유행 지나갔을 때 불리하다. 이 이유로 난 데이터 특화로 전공한다는 사람들은 말리는 편이다. 하려면 그냥 컴퓨터 사이언스.
하여튼. 윗사람이 어떻게 꼬시든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최대한 많은 회사에서 높은 임금으로 구하려 하는 직종의 사람이 됩시다’가 내 조언이다.
원문: 양파 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