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이 글은 “데이터 쪽이 잘 나가는데, 기계학습 박사 학위를 따면 취업이 잘 될까요? 어떤 학위를 해야 취업이 될까요?” 에 대한 답이다.
쉐릴 샌드버그가 <Lean In>이라는 책을 썼다가 욕 많이 먹었는데, 요즘처럼 경기 안 좋은 상황에서는 트렌드가 국가를 탓하고 사회를 탓하고 환경을 탓하는 거지 ‘개인 노력 부족’을 탓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노력 부족으로 안 풀리는 사람보다는 경기에 타격 먹은 사람이 더 많거든.
하지만 사실 개인 레벨로는 사회적인 무언가가 바뀌길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최대한 하는 것이 이기적이더라도 효과적이다. 지금 이런 엉망진창 경기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투표 빼놓고는 노오오력 밖에 없는 게 함정. 애 있는 입장에서 먹고 사는 게 우선이라 데모 나가기도 힘들잖소.
그러므로 다음의 내용은 ‘개인이 어떻게 돈을 버는가?’이지 ‘이상적인 돈 벌기’ 혹은 ‘국가, 사회가 이상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모델’ 이런 게 아니다. 아무리 범죄는 범죄자의 잘못이라지만, 우범지대에 산다면 치안 문제 해결해달라고 데모하는 것보단 자물쇠를 채우고 다니며 문 함부로 열어주지 않는 것이 내 이기적인 관점에서 훨씬 더 효과적인 것과 마찬가지.
‘돈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어라
자라면서 세뇌당한 것 중 제일 해악이 큰 것은 ‘노력한 대로 보상받는다’이다. 혹은 ‘공부 열심히 해야 돈 잘 번다’.
노노노. 돈 버는 방법은, 내가 돈을 찍어내지 않는 이상은, ‘상대방이 나에게 돈을 주고 싶어 할 정도로 뭔가를 제공하면’ 돈이 생긴다. 이 아주 당연한 걸 안 가르쳐줬다. 어느 정도 안정된 경제에서 돈 버는 방법은 교환이다. 내가 무언가를 주고 상대방이 돈을 나한테 주는 것.
그럼 뭘 제공해야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이 올바른 질문. ‘열심히 노력하면 돈이 생긴다’ 에러. 인과 관계 증명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린 이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는 대신, 한 단계 물러난 대책을 세운다.
-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데 취직을 해서 돈을 번다.
- 얼굴이 이쁘면 잘나가는 남자랑 결혼해서 사모님이 된다.
- 연예인이 되어서 떼돈을 번다.
자, 위의 문장 모두가 ‘돈을 받는다’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취직을 해서→ 많은 돈을 받는다. 그러니까 돈 버는 것은 지금 걱정 안 해도 되고 공부 열심히 하는 것부터 걱정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데 취업이 된다는 것이 연결되어야 하고, 좋은 데 취업이 되면 많은 돈을 받는다 까지도 연결이 되어야 한다. 만약 공부 열심히 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취업이 안 된다면? 연결 고리 깨진다. 취업했는데 갑자기 월급 수준이 내려간다면? 그것 역시 연결 고리가 깨진다. 제일 확실한 고리는 이거다.
- 백 퍼센트 돈 받을 거리를 만든다 → 돈을 받는다.
그럼 어떻게 돈 받을 거리를 만들라는 거야!? 차라리 돈 주고 싶어 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편이 빠르다.
사람은 ‘날 편하게/즐겁게/배부르게 해주는 것’에 돈을 쓴다. 식당 가서 돈 내고, 내 일 처리해주는 데 돈 쓴다. 그런데 원하는 것이 워낙 중구난방이고, 목돈을 주려는 사람은 잘 없고 하니까, 자잘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여러 사람에게서 돈을 조금씩 받거나 (비즈니스 모델) 아니면 지속해서 목돈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회사를 몇 군데에 찾아내어서 그곳에 노동력을 도매로 제공하면 되겠다 (월급 모델).
비즈니스 모델에서 자잘한 서비스는 ‘기본 수요가 있는 비즈니스’, 대표적으로는 소매업이나 식당 등을 개업하여서 나름 부가가치를 더해서 돈을 벌면 되겠다. 아이디어도 필요하고, 지속적일 것이라는 보장이 조금 덜하고, 실패 확률도 높고 하지만 잘하면 월급 모델보다도 안정적일 수 있겠다.
제조업 하나 잘 잡으면 돈 찍어낸다는 말이 딱 그 상황이다. 소비자가 확실히 원하는 아이템이 있으면 아이템과 돈을 교환하므로 찍어내는 대로 돈이 된다. 하지만 투자비용이 많이 들고, 아이템 선정도 쉽지 않고, 그 외에 사업 운영 능력이 필요하다.
현찰 투자 비용이 낮고 훨씬 더 쉽다고 받아들여져 인기 있는 월급 모델은 사실 위험이 상당히 높다. ‘수요’가 많은 것은 금방 알 수 있지만, 준비 기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의사가 되려면 몇 년을 공부해야 하고, 그동안 시간뿐만 아니라 현찰 투자비용도 많다. 되려는 사람도 많으니까 경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어릴 때 공부 열심히 해서 경쟁을 미리 뚫고 의대에 들어가면, 나중에 취업할 때의 경쟁이 훨씬 덜해지니까 인생은 나름 공평.
결론적으로,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냐 안 했느냐는 돈을 얼마나 받느냐와 큰 상관이 없는 것이 정답이다. 내가 만약 ‘이 직종은 수요도 많고 월급도 많다’라는 것을 전제로 두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 직종에 도전했다면, 공부를 열심히 한 것과 수입이 상관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건 어떻게 보면 correlation이지 causation은 아니다.
수입이 높은 사람들의 평균 공부 시간과 수입이 낮은 사람들의 평균 공부 시간을 보면, 높은 사람들의 공부 시간이 높겠지만 그렇다고 공부 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수입이 늘어나지 않는 것.
공부 열심히 안 했더라도 그냥 그 직종에 진입할 수 있으면 수입이 많을 수도 있잖소? 진입하는 데에 공부가 필요하다면 해야겠지만, 목표는 ‘직종 진입’이지, ‘공부 열심히 하기’는 아니라는 것.
연예계의 경우 역시 진입이 힘든 거지 노력이랑은 절대적인 연관이 없다. (물론 어느 직종이든지 ‘기본적인 노력’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면 그 이후는 운, 시기, 인맥, 개인차로 갈린다) 페이스북으로 대박 난 주커버그가 과연 사법고시생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했을까? 벤처 기업인이 노가다 뛰는 사람보다 몸 힘들게 일해서 돈 더 버는 걸까?
수요가 높고 공급이 낮을수록 임금이 높아진다 : 이 법칙이 갑이다
여기까지 왔으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들어가서.
이 세상은 당신이 뭘 좋아하고 즐기는지, 하고 싶어 하는지 별 관심이 없다.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서비스를 구입해야 한다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면 그것에는 관심이 있다. 왜냐면 당신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뭘 했는가도 역시 관심이 없다. 이 세상이 당신에게 가진 유일한 관심은 ‘넌 날 위해서 뭘 해줄 수 있는가?’ 이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가?’ 아님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는가?’ 이거 두 개다.
어쩌다가 내가 정말 하고 싶고, 의미 있다고 느끼고, 즐기는 것을 열심히 했는데 마침 그게 시장에서 많이 요구하고 수요도 높은데 공급도 없는 분야라면 다행히 돈 왕창 벌 수 있겠으나 그게 다 맞아떨어질 확률은 로또 수준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 운으로 어떻게 시장이 원하는 걸 맞춰서 성공 (연예인, 비즈니스)
- 기본적인 수요가 있는 아이템을 훌륭한 경영 전략으로 성공 (맥도널드 등 보통 대기업)
- 혁신적인 기술로 성공 (기술 기반 회사들)
- 운으로 좋은 자리에 좋은 시기를 타고 들어가 성공 (80-90년도 대졸자들)
- 긴 시간의 훈련을 해야 하며 공급이 부족한 분야로 들어가서 높은 임금
- 직종 진입을 까다롭게 만들거나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함으로서 공급이 부족한 분야로 경쟁해 들어가서 높은 임금 (의사, 변호사, 운동선수)
- 공급은 부족하지 않으나 직종 진입을 까다롭게 만들어서 비교적 높은 임금 (대기업)
- 수요는 많으나 공급 역시 넘쳐나고 진입이 까다롭지 않아 임금 역시 낮음 (보통 직장)
수요가 높고 공급이 낮을수록 임금이 높아진다. 이 법칙이 갑이다. 개인적인 취향이나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노력한 것은 사회 입장에선 그냥 니 사정이다. 하루 종일 우리 집 뒤뜰 피 토하며 삽질해봐야 돈 안 나온다. 내가 관심 있어서 이십 년 공부해도 세상이 필요 없다면 돈 못 받는 게 당연하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보상을 받아야지!’ 이것만 내려놓으면 마음이 많이 편해진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역시 마찬가지다. 당신이 슈퍼마켓에 가서 케첩을 살 때에, 케첩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무엇을 희생했는지, 어떤 삶의 꿈이 있는지 관심없고 그냥 케첩을 사고 싶은 것처럼, 당신의 노동력을 고용하는 사람들도 사실 당신에게 별 관심 없다.
단지 세상 사람들은 기계나 물품이 아니므로 어느 정도 존중해주는 척 할 뿐이다 (그런 거 아니고 진짜로 존중하고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회사도 있으나 경영난 닥치면 다 뽀록난다).
마무리하며
이 길고 긴 이야기의 포인트는, “데이터 쪽에서 전망 좋은 (안정적으로 오래 돈 벌 수 있는) 직종은 무엇이고, 뭘 공부해야 할까요?”에 대한 답이다. ‘내가 이렇게 자격을 쌓으면 그들이 알아서 대접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면 실망이 덜하다.
세상은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어떤 자격을 가졌는지보다는 “하여튼 그래서 나한테 뭘 해 줄 수 있는데?”에 관심이 많다. 혹은, “데이터에 관심 있으면 돈 주고 나한테 와서 배울래?”에도 관심이 많다. 진짜로 학생들이 “이 데이터 코스를 공부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에는, 자기네 마케팅 재료에 올라갈 내용 말고는 솔직히 관심이 좀 덜하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이 원하지만, 공급자가 별로 없는 기술을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박사 학위나 학교 이름으로도 어느 정도 가능하기는 한데 이건 어디까지나 ‘얘가 그 필요한 기술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다’란 미끼, 광고 전략에 불과하다. 기술이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니까. 그리고 박사 학위와 학교 이름 없어도 실력 있다면 충분히 기술 매매 가능하다.
옛날 무협 소설에서 곧잘 나오는, 어느 산에 들어가 어느 도사를 만나서 혹은 어떤 비급을 찾아서 몇 년 죽으라고 연마 했더니 고수로 짜잔 변신 해서 강호를 주무르게 되었다라는 식의 변신을 원하는 사람들 많은 거 안다. 어떻게든 박사과정 들어가서 죽자고 공부하면 알아서 다 모셔가는 그런 변화 바라는 거 안다. 실제로 그러는 사람도 있긴 하다. (신문에 나서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의 실생활에서 비급은 없다. 꼭 전 재산 다 팔고 산에 들어가서 도사 찾지 않아도 된다. 생각 없이 ‘이거 몇 년 하면 되겠지?’가 아닌, 훨씬 더 자기 주도적인 리서치와 실제 참여가 필요하다. 이런 학교 나와서 이런 과정 했으니까 이 기술을 잘 알겠지, 라는 넘겨짚기에 의존하지 않고 ‘이 기술을 잘 안다’로 바로 가면 된다는 말이다. 그걸 직접 보여주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니까.
원문 : 양파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