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토론식 영어가 어떻게 해야 늘까요?
A. 제가 삼십 년 살고 나서 드디어 받아들인 삶의 비밀을 가르쳐 드릴게요. 피눈물 흘리면서 말씀드립니다.
돈을 벌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 (X) 틀렸음. 돈을 벌려면 돈을 벌어야 함. (O)
살을 빼려면 마음가짐을 바로잡아야 한다/독소를 빼야 한다/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X) 틀렸음. 살을 빼려면 살을 빼야 함. (O)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그 방법에 정신이 팔려서 내가 궁극적으로 뭘 하려고 했는 건지 잊어버립니다. 몸이 유연하면 춤추는 데에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춤추는 데에 제일 도움이 되는 건 춤을 추는 겁니다. 그냥 무식하게 딱 그거만 하는 게 아닌 뭔가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 것 같지만…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편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하면서 그걸로 인해 다른 것까지 도움을 받는 방법을 원합니다. 저는 글쓰기가 편하고 읽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걸 하면 말도 늘거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늡니다. 조금 늡니다. 하지만 최대 빨리 말이 느는 방법은…
네, 맞습니다. 말을 하는 겁니다. 제가 이걸 안 하고 버텨서, 어린 나이에 외국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글은 술술 잘 쓰고 영어 점수는 아주 잘 받았으나 아직 외국인 억양이 있습니다.
인생 전반에 아주 정말 지겹도록 이 논리가 적용됩니다. 발레를 배우면 힙합에 도움이 될까요? 네, 되겠죠. 연아 선수도 발레와 춤을 배워서 그렇게 우아한 거라고 하네요. 하지만 연아양이 발레와 춤만 배우고 스케이트를 안하면…? 네. 다 쓸 데 없습니다. 하는 만큼 늘고, 다른 걸 부가로 하면 기본에 약간의 플러스 알파가 붙긴 하지만 생각처럼 많이 붙지 않습니다.
그럼, 토론식 영어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토론식 영어를 하시면 됩니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토론식 영어도 될까요?’ 조금 도움은 됩니다. 토론할 때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억지로 섞는다던가(…) 뭐 토론할 때 어려운 말만 하는 건 아니니까 기본 문장구조나 표현도 도움 되겠죠. 하지만, 토론식 영어가 늘려면, 궁극적으로는…
네.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질문하신 분에게 제가 드릴 답은, ‘최대한 토론식 영어를 많이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서 많이 하면 됩니다.’ 어떻게 글케 할 수 있을까나요.
이거 역시 삼십 년 살고 나서야 받아들인 건데요. 주입식 교육이 나쁘고 어쩌고 하지요? 하지만 사람의 학습방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머리로 이해하는 거고, 두번째는 딥따 외우거나 반복하는 겁니다.
IT나 이공계 사람들, 우리는 머리를 써서 이해하는 분야라서 딴 애들이랑 다르다 어쩌고 하는데, 헛소리입니다. 경험이 쌓인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뭘 할 줄 안다는 거고, 그건 그 상황을 겪어 봤다는 거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반복하면서 배웠다/기억에 새겨놨다는 말이거든요. 처음에는 머리로 이해했을지 모르지만, 내 걸로 만드려면 어떻게 해서든 ‘이해하는 과정’ 없이 답이 툭 튀어나올 때까지 익숙해져야 합니다. (NullPointerException 따위로 도움 안 되는 에러가 나와도 이게 왜 나오는지 대강 맞출 수 있는 상태 말이죠!!)
그런 연습/반복 없이 성취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습니다. 특히 언어는 ‘읽어서 이해’ 혹은 ‘대강 감이 가는 것’ 정도로 안 됩니다. 뇌세포에 굵게 새겨놓아야 됩니다.
한 번 1:1 토론 수업 한다고 될까요? 당연히 안 되죠. 많이많이 반복하셔야 합니다. 영어로 뉴스를 읽으세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요약해서 적으세요. (이건 텍스트에 강한 한국 사람들에게 잘 통하는 방법입니다.) 그 다음에, 그 뉴스를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얘기하세요. 한 열 번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면 상대방이 되묻는 질문에도 익숙해지고, 그 뉴스 내용도 외우게 되고, 문장 구조도 외워집니다.
혼자 앉아서 열 번 반복해서 읽어봐야 안 됩니다. 만약 돈 제약 없으시고 시간 제약 없으시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무언가 30분 정도 말할 것을 정해서 텍스트로 요약 정리 한 다음에, 스카이프로 영어 선생님 세 사람 구해서 똑같은 내용으로 토론 수업을 세 번 하시고, 영어 포럼이나 그 외에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 서너 명과 얘기하시고, 스터디로 만나는 사람 둘셋 있으면 또 반복하세요. 그 주가 끝날 때 쯤이면 장담하건대 그 주제에 관해서만은 줄줄줄 얘기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그 주제에 대해서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하나 징하게 끝내고 그 다음주엔 또 다른 주제로 다시 시작하시면 됩니다. 정치, 경제, 문화, 음식 뭐 등등 주제는 많지요. 그런 주제를 약 30-50개 정도 마스터 하시면, 겹치는 단어와 표현 덕분에 이젠 훨씬 말하는 것이 쉬울 거예요.
일상생활 대화에 익숙해지고 싶으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드라마 보면서 알아들으려 해보는 것으로는 도움이 조금 되긴 하지만 크게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내 것을 만드려는 노력을 하면서 보셔야 합니다. 써먹고 싶은 상황을 뽑으신 다음에 대본을 구하시던지 아니면 자막을 적던지 해서 대화 대본을 만드세요. 그리고 친구와 실제로 연기하듯이 해보세요. 달달 외우세요. 그런 상황을 만든 다음 또 써먹으세요. 사실 실생활 시나리오 해봐야 몇 십 가지 안 됩니다.
<Why students don’t like school>이라고 인지과학자분이 쓴 책에서 불멸의 명언을 얻었습니다.
Memory is residue of thought.
내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에, 고민하고 분석하고 어쨌든 머릿속에 돌아다녔기에 기억으로 남습니다. 별 생각 없이 눈으로 보고 대강 짐작한 것은 기억으로 안 남습니다. 다시 보면 알아보긴 하지만, 내 것은 되지 않습니다. 요리 프로 본다고 요리사 안 되죠. 연아양 스케이트 백날 본다고 내 스케이트 실력 늘지 않아요. 느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거 착각이에요.
내가 직접 해야 합니다. 직접 많이 하세요.
원문: 양파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