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티브 잡스는 증명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음악에 비용을 지불할 의사와 능력이 충분히 있음을. 다만 사람들은 이제 LP와 카세트 테이프와 CD가 너무 불편했을 뿐이었다.
MP3와 P2P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1)더이상 직접 매장에 갈 필요없이 집에서 검색을 통해 음악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2)또 그렇게 얻은 음악을 듣기 위해 기존처럼 음반과 플레이어를 따로 소지할 필요가 없어져서 휴대성이 대폭 증대되었다. 3) 게다가 P2P에는 계산대가 없어서 듣고 싶은 음악을 그냥 들고 나올 수도 있었다. P2P는 무엇인가를 사고 파는 매장이 아니라 무언가를 ‘공유’하는 매개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음악 파일은 널리 공유할 수 있는 명백히 존재하는 누군가의 창작물이라는 점이다. Copyleft가 아니라 Copyright다. 불법 복제는 빽판이라는 형태로, 불법 녹음 테잎이라는 형태로 오래전부터 존재하긴 했다. 허나 그것이 음악 시장에 이처럼 심대한 타격을 준 건 MP3 등장 이후가 처음이었다. 비물질인 MP3 파일은 물질인 음반들과 달리 오리지널과 모조품의 구분이 거의 무의미하며 사람들 사이의 복제와 전파 속도가 겉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대로 계속 가다간 음악은 머지 않아 끝장날 판이었다. 음악을 생산하는데는 분명히 제작비가 들어가는데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면 당연히 전업 뮤지션은 끝장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스티브 잡스가 다음과 같은 구호를 내걸었다.
“Don’t steal music”
사족을 붙이자면 잡스가 이 말을 하기 이전에 닥터 드레와 메탈리카도 같은 맥락의 말을 했었다가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극심한 비난을 받았다. 벌 만큼 번 인간들이 무슨 돈만 밝히는 아티스트마냥 작품 좀 꽁으로 다운로드 받았다고 소송까지 벌이는 게 못마땅해서였을까? 하여튼 그랬는데, 또 다른 벌만큼 벌어본 인간인 스티브 잡스가 같은 말을 하자 비난은 커녕 그 말이 실제로 시장에서 유효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잡스는 심지어 닥터 드레나 메탈리카 같은 당사자(뮤지션)도 아닌데 말이다.
잡스는 저 구호를 아이팟과 아이튠즈를 선보이는 프레젠테이션에서 내걸었다. 잡스는 자신이 내건 구호를 자신의 제품을 통해 시장에서 실현시켰다.
아이팟과 아이튠즈는 이 글의 첫문단에서 언급한 사람들의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해줬다.
- 다량의 음악을 P2P보다 더 쉽고 편리하게 취득(소비)하고 보관하게 했고
- 휴대성 역시 말할 것도 없었으며
- 거기에 계산대까지 설치했다.
불법 다운로드를 하든 CD에서 음원을 추출하든 어쨌든 MP3파일을 재생하려면 MP3플레이어가 필요한 건 상수였다. 이런 MP3플레이어와 달리 아이팟은 플레이어 하나만 사면 1, 2가 충족되었다. 애플 제품 특유의 간지는 기본이었다. MP3 플레이어는 둘로 나뉜다. 아이팟과 아이팟이 아닌 것.
아이팟의 시장 점유율은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의 75%에 육박했고, 아이튠즈의 음원 다운로드 시장 점유율은 세계 72%에 육박했다. 싱어송라이터 존메이어는 “아이팟이 없었다면 디지털 음악 시대는 노래와 앨범 대신 파일과 폴더로 분류됐을 것이다.” 라고. 아이팟과 아이튠즈는 그렇게 망가져가던 미국 음악 시장을 구원했다.
2.
음반 시장이 저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필연적이다. 편리성과 휴대성의 측면에서 음악을 상품으로 가공하던 수단이 LP에서 CD로 변한 게 필연적인 것처럼 CD에서 MP3로의 전환 역시 그렇다. 나아가 음악 소비 방식이 MP3의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 변하고 있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기술의 발전이 편리성의 최대치를 벡터값으로 잡고 달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발전 자체를 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문제는 결국 그렇게 하여 얻은 이익과 부작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있다.
아이튠즈가 필연적으로 저물 수밖에 없었던 음반 시장의 대안으로 설 수 있었던 것은 발전된 기술을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형태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아이튠즈에는 ‘묶음 다운로드’라든가 ‘정액제 무제한 스트리밍’ 같은 상품이 없다. 아이튠즈의 매대에는 그저 음반 대신 디지털화된 노래와 앨범들이 있을 뿐이다.
소비자는 앨범 매장에서 그랬듯 아이튠즈에서도 선택한 개별 곡 또는 앨범에 비용을 지불하고 MP3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가격은 0.69달러에서 1.29달러로 음악 생산자가 선택할 수 있다. 평균가는 0.99달러로 약 천원 안팎이다. 정규 앨범에 10곡 내외가 수록된다 치면, 아이튠즈에서 앨범 전체를 구매했을 때 드는 비용은 평균 만 원 이상이다. 디지털 음원은 CD를 직접 생산할 때 드는 프레스 비용과 자켓 프린트 비용 등이 세이브되니 생산자 입장에서 CD로 음악을 판매할 때와 크게 차이가 없는 가격이다.
즉, 아이튠즈는 음악 생태계 자체는 보존하면서 변화된 시대에 맞춰 소비 수단만 바꿔 음반 시장을 디지털 음원시장으로 견인해줌으로서 음악 시장의 대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3.
한국은 어땠을까? 한국은 이랬다. “마트의 애플망고들이 너무 비싸서 애플망고를 절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애플망고의 저가 정책을 펴겠다.” 소비자 중에는 심지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너네가 먹을 만한 애플망고를 만들어봐라 왜 돈 주고 안 사겠냐? 구린 애플망고를 내어놓으니 훔칠 수밖에.” 뚱딴지 같은 소리가 아니다. 문장들에서 애플망고를 음악으로 치환해서 읽어보라.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굳이 덧붙이는데, 애플망고 안 먹어도 생존할 수 있고, 음악 안 들어도 생존할 수 있다. 생필품도 아니고 공공재도 아닌데, 소비자에 대한 복지적 논리를 음악 가격에 갖다 붙일 까닭이 조금도 없다. 품질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고 판단된다면 사지 말고 듣지 마시라. 본인 생각에 품질이 별로라고 값을 지불하지 않고 상품을 그냥 들고가는 건 범죄다. 대체 세상 모든 재화에 당연하게 적용되는 이런 상식을 왜 음악에 있어서만 따로 논박해야 하나.)
말하자면, 한국은 음반 시장이 불법 다운로드에 함몰될 때 음원 저가 정책을 택했다. 기존의 음반 매장이나 아이튠즈가 소비자에게 ‘음악’ 자체를 직접적으로 판매했다면, 한국의 디지털 음원 서비스 플랫폼들이 소비자들에게 일차적으로 판매한 것은 ‘음악’ 자체가 아니라 일종의 ‘음악 이용권’이었다. 그것도 아주 저가의. 그리고 소비자들이 그렇게 구매한 이용권을 통하여 음악을 소비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을 시행했다. 지금의 ‘묶음 다운로드 상품’이나 ‘정액제 무제한 스트리밍 이용권’이 그것이다.
이 방식은 아이튠즈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매우 편리했다. 우선 소비자들로 하여금 음악을 소비하는 일에 대한 기회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게 해줬다.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때처럼 만오천 원으로 너바나를 선택할지 오아시스를 선택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다운로드의 경우 몇 천 원 주고 ‘50곡 묶음 다운로드 상품’을 구매하면 무려 앨범 열 장 분의 음원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것이고, 스트리밍의 경우 그냥 몇 천 원 짜리 이용권을 결제하면 어느 것 하나 포기할 필요 없이 플랫폼 내의 모든 음악에 접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방식은 특히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더욱 유효하게 작동했다. 스마트폰과 빠른 인터넷망 덕분에 월 몇 천원 짜리 스트리밍 상품을 구매하면 플랫폼 내의 모든 음악에 ‘언제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4.
문제는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수많은 음악을 편리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음악 시장을 불법 다운로드 시장으로부터 건져올리긴 했지만 아이튠즈처럼 음악 생태계를 복원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일단 대부분의 음악 생산자들은 이와 같은 가격 구조와 수익 분배 구조로는 도저히 채산을 맞출 수가 없다. 음악을 만드는 데는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될 수도 있다.
보통 시장에서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상품은 마진을 남기기 위해 희망 소비자가도 높게 책정할 수 있고,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간 상품은 희망 소비자 가격을 낮게 책정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기준들도 있을 수 있다. 어느 정도 확보된 소비층이 반드시 자신의 브랜드를 구매해줄 거라고 판단된다면 보다 가격을 올려 책정할 수도 있고, 인지도가 낮아 본인의 음악이 좀 넓게 퍼지길 원한다면 상대적으로 가격을 낮게 책정할 수도 있다. 허여튼 가격을 보고 구매할 지 말 지는 소비자가 알아서 판단한다. 그게 그 잘난 ‘보이지 않는 손’이지 않은가.
그런데 한국의 음원 시장 구조는 애덤 스미스의 뺨을 후려친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갔든 적게 들어갔든 관계없이 같은 가격으로 음악이 팔리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몇 천 원 주고 구매한 무제한 이용권으로 대개 어떤 음악이든 감상할 수가 있으니 말이다.
자, 그럼 정리해보자.
- 거래하는 수 많은 뮤지션으로부터 각각 40%의 매출 수수료를 가져오는 음원 서비스 플랫폼
- 몇 천 원으로 플랫폼 내의 모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소비자
- 제작비가 얼마나 들건 같은 가격으로 음원이 판매되면서 매출의 60%(그것도 통상, 유통수수료 8.8% : 제작사 35.2% : 저작권 10% : 실연권 6% 나뉜다.)를 가져가는 음악 생산자(참고로 아이튠즈의 경우 뮤지션이 수익의 70%를 셰어하고 아이튠즈가 30%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이런 구조에서 음악가들이 채산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은가? 음악 생산자들이 제작비를 많이 들여 퀄리티를 높이면 높일 수록 시장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음악 시장 크기의 절대값 자체가 작기 때문에 이런 가격 구조로는 플랫폼 사업자들 역시 시장 점유 1위 사업자를 제외하고는 성장하는 게 녹록지 않다.
단순도식화 해보자면 과거에는 수백 만 장이 팔린 A뮤지션의 앨범부터 수백 장이 팔린 Z뮤지션의 앨범까지, 그 매출의 총합이 음반시장의 크기였다. 당연히, 대형 스타가 나오면 나올 수록 시장의 절대값 자체가 커질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디지털 음원 시장은 각 플랫폼들의 회원수 또는 회원들이 구매한 ‘음악 이용권’의 총합이 음원 시장의 크기다. 서로 회원수 쟁탈의 경쟁을 펼칠 수 있을 뿐 절대값이 커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저가의 가격 구조로는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1위 사업자를 제외하고는 플랫폼들 역시 지속적으로 버티고 성장해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 증거가 애플뮤직 한국 런칭에 대한 저 호들갑이다. 이런 허약하고 왜곡된 구조의 시장에서, 애플뮤직이 들어오면 국내 디지털 음원 플랫폼 회원들이 이탈하여 애플뮤직으로 갈 가능성이 상당하기에.
5.
우선 말하건대, 애플뮤직은 아이튠즈와 다르다. 애플뮤직에는 아이튠즈가 보여준 음악 생태계를 함께 챙겼던 혁신적 대안으로서의 면모가 내게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평면적으로 월 이용료가 9.99달러이고 저작자와의 수익분배가 7:3이라는 데만 집중하여 애플뮤직이 친아티스트적이라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내가 볼 땐 현재 국내 디지털 음원 플랫폼들에 비교해서 크게 의미없어 보인다.
국내 디지털 음원 플랫폼은 약 500만 곡 정도에 접근할 수 있는 음악 이용권을 몇 천원 정도에 판매하는 것이고, 애플뮤직은 그 여섯배인 약 3000만 정도의 곡에 접근할 수 있는 음악 이용권이 약 만 천 원(9.99불) 정도에 판매하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6배의 더 많은 음원에 접근할 수 있는 이용권을 구매하는 데 추가 비용 3~4천 원 정도 더 지불하는 게 그리 아까운 일인 것 같진 않다. 서비스사 입장에서는 서로 다른 규모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과연 수익 분배 비율이 7:3이란 이유로 아티스트에게 정책적으로 그리 유리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아닌 말로 10원에서 6원을 가져가던 구조가 7원을 가져가는 구조로 바뀐다고 아티스트의 삶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애플뮤직의 한 곡 스트리밍 당 정산되는 금액이 얼마인지도 따져봐야겠으나, 국내 무제한 스트리밍 이용권의 가격과 애플 뮤직의 그것의 비율로 추정컨대 국내 음원 서비스 플랫폼들보다 비약적으로 높을 것 같진 않다.
요지는 내가 볼 때 애플뮤직은 본질적으로 아이튠즈의 그것과 가깝지 않고 차라리 국내 디지털 음원 서비스 플랫폼들과 더 가깝다는 것이다. 정액제 이용권을 판매하여 플랫폼 내의 모든 음악을 ‘무제한 스트리밍’ 할 수 있는.
결국 매출의 측면에서 애플뮤직이 국내 디지털 음원 플랫폼들보다 아티스트에게 비약적으로 유리해지는 지점은 분배구조나 정산가가 아니라 애플뮤직이 보유하고 있는 ‘회원수’에 있다. 그러니까 이용자수의 절대값이 높으니 스트리밍 곡당 단가가 낮아도 애플 뮤직에서 매출이 많이 날 것이라는 것.
근데 이 논리. 지금의 국내 디지털 플랫폼 1위 사업자에게 늘 적용하던 논리다. 불만이 많지만 그 어플을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그 서비스 플랫폼에서 매출이 제일 많이 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플랫폼의 정책에 끌려다니는 것이지, 그것은 공정한 정책이나 구조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6.
그렇다고 애플뮤직과 국내의 디지털 음원 플랫폼이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디까지나 무제한 스트리밍 정액제를 정책으로 가져가는 한 구조적인 측면에서 대동소이하다는 것이지, 둘은 결정적인 차이를 갖고 있다. 그게 뭐냐면, 애플뮤직은 특정 음원 배급사가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의 음원 서비스 플랫폼은 대형 유통사가 소유하고 있다. 멜론은 로엔엔터테인먼트라는 유통사가, 지니는 KT뮤직이, Mnet은 CJE&M이 갖고 있는 플랫폼이다. 유통사와 디지털 음원 플랫폼의 수직계열화는 여러가지 폐단을 낳아 왔다.
이를테면 자신의 유통사에서 발매한 음반을 자신의 플랫폼 메인화면이나 추천곡에 걸어서 매출을 증대 기회를 높인다는 점이 그렇다. 꽁꽁 숨어있는 음반 보다 늘 메인에 노출되어 있고 차트 상단에 추천곡으로 걸려있는 음악의 재생률이 높은 건 자연스러운 것 아니겠는가? 쉽게 말하면 극장을 갖고 있는 영화배급사가 본인들이 배급하는 영화를 전국 극장의 관에 쫙쫙 깔아버릴 수 있고, 그건 자연스럽게 매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과 같은 논리다.
하루 4곡의 추천곡 중 자사에서 유통한 음반이 2곡으로 걸려있는 양태나 메인 페이지의 최신앨범 구좌에 늘 자사에서 유통한 앨범을 우선으로 걸려있는 양태를 애플뮤직에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애플뮤직의 매칭 기능은 소비자에게 본인이 선호하는 아티스트와 비슷한 곡을 찾아 소개해줄 것이다.
결국 음악을 생산하는 입장에서 애플뮤직에 기대감을 품는 것은 단지 가격적인 측면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 음악가들은 그간 불공정성이 의심되는 양태를 국내 음원 플랫폼들에서 너무 많이 보아왔고,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견뎌왔기 때문이다.
즉, 애플뮤직은 유통사와 플랫폼에 잘 보여서 메인에 노출되는 게 관건이 아니라, 차라리 리스너들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이라고 추정된다. 결국 스트리밍이라는 기술을 어떻게 관리해서 과실이 공정하게 돌아가 음악 생태계를 구조적으로 선순환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과제가 남더라도, 어쨌든 소비자 입장에서나 생산자 입장에서나 애플 뮤직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혹자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국내 음원 보유량이 높지 않은 애플뮤직을 비선호할 것이라고 하던데 글쎄. 국내 음원 보유량 안 높아도 된다. 왜냐고? 국내 음악의 생명력 싸이클이 아주 짧기 때문이다. 며칠만 지나도 차트 1위 곡이 바로 사라져버릴 정도로.
그래서 어차피 국내 음원 플랫폼들도 소수의 곡들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매출이 차트에 올라있는 최신곡에서 발생할 것이다. 그런데 아티스트들이나 제작사가 최신곡을 애플뮤직에 배급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결국 일정 비율 이상의 소비자가 원하는 국내 음원들도 애플뮤직에 등재될 것이고, 점차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비율은 올라간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음원의 생명력 싸이클을 짧게 만들어 놓은데 큰 영향을 끼친 것 또한 국내 디지털 음원 플랫폼들이다. 전통적인 주간 차트를 채택하는 아이튠즈나 애플뮤직과 달리 국내 음원 플랫폼의 차트는 실시간 차트다.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있고, 음악의 순환 싸이클이 짧을 수 밖에 없다. 자승자박한 셈이다.
7.
필자는 소비자들이 이용한 만큼 요금을 내는 가격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기준에서 ‘무제한 스트리밍 정액제 상품’ 이라는 것은 실은 일반적인 소비자들에게도 그렇게 유리한 상품이 아니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들을 때 발생하는 비용은 곡당 10원 정도다. 6,000원 짜리 무제한 정액제 상품 가량의 음악을 들으려면 월 600회 이상을 재생해야 한다. 음악 한 곡의 평균 런닝타임이 약 4분 정도이니, 계산하면 월 2400분(40시간)이상 들어야 무제한 스트리밍 상품을 통해 음악을 듣는 것이 이익인 셈이다.
그러나 의외로 바쁜 현대인들은 꾸준히 월 600회 이상의 음악을 재생하지 않는다. 정말이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하루에 음악을 듣는 시간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의외로 그렇게 많지 않다. 수면시간과 일과시간과 기타 다른 활동시간을 제외하면 이동시간이나 잠깐 잠깐 틈 날 때 음악을 들을 뿐이다.
필자는 들은만큼 후불로 비용을 지불하는 후불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듣는 데도 무제한 스트리밍 상품 가격인 5,900 원을 넘는 요금을 결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무제한 정액제 서비스 상품을 구매하지 않고 그냥 이용한 만큼 내는 게 실은 더 저렴할 수 있다. 무제한 스트리밍을 결제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저 ‘무제한’이라는 수사의 트릭인 것이다.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은 애플뮤직이든 국내 음원 디지털 음원 플랫폼이든 언젠가는 ‘생산자가 원하는 가격으로 매대에 올리고 소비자가 선택하여 이용한 만큼 요금을 지불하는 방식’이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적용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제한 이용권’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랑했던 ‘음악가의 작품’을 구매하는 세상이 다시 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