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거대과학, 공학관련 프로젝트가 있는가 하면 많은 돈을 쓰고도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한 프로젝트가 있다.
성공하는 프로젝트의 예를 들자면 이렇게 꼽을 수 있겠다.
- 맨해튼 계획 (원폭개발)
- 휴먼 지놈 프로젝트
- 아폴로 계획
반대로 망한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경우로는 1970년대 닉슨 행정부 시절 추진된 ‘암과의 전쟁’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똑같이 많은 돈을 들이고도 어떤 프로젝트들은 성공하고, 다른 프로젝트들은 성공하지 못했을까. 일단 ‘성공했다’ 고 평가되는 프로젝트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듯싶다.
A. 원하는 목표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확립되었으며 이를 완수할 수 있는 기술의 기본 원리가 확립된 경우
일단 휴먼 지놈 프로젝트라는 것이 시작되던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대해서는 이제 유전암호에 대한 기본적인 성질은 완전히 알려져 있으며, 상당수의 유전자가 실제로 클로닝 되어 염기서열까지 결정된 상태였다. 또한 1977년 프레데릭 생거에 의해서 DNA를 효율적으로 시퀀싱 할 수 있는 기술 역시 개발되었고 자동화가 막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맨해튼 계획의 경우에도, 핵분열에 대한 기본 이론은 확고하게 확립된 상태였고 우라늄 235가 중성자를 흡수하면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이 1938년에 확인된 상태였다.
물론 3Gb라는 인간유전체의 막대한 서열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반 기술의 확립 (오토매틱 시퀀서의 개발, 100kb 이상의 큰 조각으로 DNA 단편을 클로닝한후 이들의 순서를 정하는 기술, 수백 bp 의 시퀀싱 리드를 서로 비교하여 긴 서열을 조립하는 어셈블리 기술 등등) 이 필요했지만 이러한 것은 엄밀히 말하면 기술적, 공학적 문제였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진 상황이었다.
반면에 ‘암과의 전쟁’이 전혀 성과가 없이 끝났던 이유는 이러한 캠페인이 벌어질 때까지 우리가 암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암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인가? 아니면 감염성이 있는 병원체 때문인지에 대한 것조차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암과의 전쟁’이라는 캠페인에 의해 수많은 자금이 흘러들어왔다.
그 결과 이 연구비 중의 상당수는 ‘암을 유발하는 레트로바이러스를 찾는다’ (대개의 암이 전염성이 아니라는 것은 그때에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와 같은 헛된 연구에 사용되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즉, ‘암과의 전쟁’을 시작하긴 했는데 ‘적’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전쟁터에 뛰어들어간 격이라고나 할까.
B. 구체적으로 달성 가능한 뚜렷한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경우
휴먼 지놈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의 정확도 (10,000염기에 에러가 1개 있는 수준)으로 인간의 모든 염기서열을 결정한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계획된 시기 내에 이 목표를 달성한다면 성공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인 것이다. 아폴로 계획에서는 사람을 무사히 달에 보냈다가 귀환시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그렇다면 ‘암과의 전쟁’은 어떻게 하면 성공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실패한 것인가? 이렇게 ‘성공’ 과 ‘실패’ 를 구분할 수 있는 뚜렷한 기준이 없는 프로젝트는 그 프로젝트가 무엇을 성취했는지와는 상관없이 아무리 잘 해봐야 ‘절반의 성공’일 수밖에 없다.
최근에 제시되는 거대과학 프로젝트 (BRAIN initiative, ENCODE) 등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과연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얼마나 잘 정의된 목표와 성공, 실패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C. 프로젝트의 성과물이 해당 프로젝트에 직접 연관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가?
휴먼 지놈 프로젝트에 그렇게 큰 비용이 사용되었음에도 여기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서 산출된 레퍼런스 지놈 시퀀스가 직접 지놈 수준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레벨에서 ‘사람의 유전자’를 연구하는 모든 사람, 아니 생물학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참고가 되는 자료로서 기능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해당 연구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별 쓸모가 없다고 느껴지는 성과물이 생산되는 프로젝트라면 자연히 해당 분야의 연구자 몇 명만 관심이 있을 일에 수백 명의 개별 연구자들의 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 들어간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수행하는 프로젝트가 자기 생각에는 폭넓은 사람들에게 널리 사용될 수 있는 데이터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주고 돈 낭비라고 (부당하게) 비판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일단 이러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오오오력을 해라! 즉, 내가 생산하는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있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너의 연구에 어떤 임팩트를 줄 것인지를 설득하는 능력이 이러한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기본인 것이다.
그게 안 되면 못하는 거지 뭐…
D. 프로젝트를 이끄는 사람(들)의 과학적 역량과 정치력이 조화를 이룰 때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입안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정치력이 필요하다. 일단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많이 들고, 이를 위해서는 돈을 댈 (주로 정부겠지만) ‘물주’를 설득할 정치력이 필수적이다.
이뿐인가?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참여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갈등의 요소가 존재하는데,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조정하느냐도 중요하다. 즉 이러한 프로젝트를 이끌기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정치력’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력은 프로젝트의 목표를 설정하는 과학적 통찰과 같이 가지 않으면 대개 쓸모가 없어진다. 즉, 아무리 정부를 잘 설득하고, 이해당사자들 간의 조정을 잘해서 무난히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해당 프로젝트가 얻고자 하는 과학적 목표가 별 볼 일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휴먼 지놈 프로젝트와 같은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프랜시스 콜린스 (Francis Collins)와 같이 과학적으로도 훌륭한 업적을 남겼지만, 행정적으로는 더 탁월했던 사람이 있었고, 영국 쪽에서는 존 설스턴 (John Sulston)과 같은 사람들이 큰 역할을 하였다. 즉 프로젝트를 이끄는 리더들의 과학적 비전과 정치적 역량이 조화되었기 때문에 ‘돈값 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에서 왜 대형 과학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가가 쉽게 짐작이 된다. 한국과 같이 과학적 역량과 정치력이 조화를 이룬 리더를 찾기 힘든 곳이 세상에 없다 -.-;;; 정치력이 있는 분들은 그런 큰 과학프로젝트를 이끌 만한 과학적 안목이 없으며 과학적인 안목이 있는 분은 그럴 만한 정치력이 없다는 것은 한국 과학계에 조금이라도 발을 걸친 사람이라면 쉽게 아는 일이다.
한국에서 정치력을 키우려면 과학적 안목을 쌓을 시간이 부족하게 되기 십상이고 과학적인 안목이 높은 분들이 한국에서 정치력이 있기는 어렵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엉뚱한 결론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니 한국에서는 웬만하면 거대과학 프로젝트는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