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이 꽤나 핫하긴 하지만, VR에 대해 여전히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 든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서 VR에 관심을 갖고 개인적으로 정리를 좀 하고 있지만, 정리된 뭔가가 나오기는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그동안 내가 보아온 VR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한다.
1. VR과 AR의 차이와 역사
VR과 AR은 기술이나 사용자 경험으로 봤을 때 확연한 차이가 발생한다. AR은 실제 상황을 보여주면서 그 위에 가상물체나 가상정보를 뿌려주는 개념이라면, VR은 가상현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모두 다 VR로 통칭하는 분위기가 있다. AR의 초기에는 가상 물체가 아닌 ‘정보’를 뿌려주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AR에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상 물체를 그리는 형태라면 사실 VR의 경험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이 두 개는 태생이 조금 다르다. VR은 게임의 가상게임 세계를 구현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AR은 산업계에서 특정한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VR은 조금 더 엔터테인먼트적인 입장에, AR은 조금 더 생산성 도구적인 입장에 있게 된다. AR을 기반에 두고 VR에 훨씬 가까워진 홀로렌즈나 매직리프는 MR(Mixed Reality)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금일 컨퍼런스를 가보니 외국인들도 홀로렌즈나 매직리프도 VR로 통칭하는 듯하다. 사전적 의미와 태생이 무엇이 중요하냐. 어차피 쓰는 사람들이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지. 현재는 VR과 가상 오브젝트를 그릴 수 있는 AR을 통칭하여 VR이라 통칭한다고 할 수 있겠다. 가상 오브젝트는 사실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명시적인 입장에서는 VR이 맞다고 본다.
때로는 AR이 VR을 포함한다고 표현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AR이 VR을 포함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AR은 디지털로 필터링 혹은 더해진 가상정보를 보고 있으니, 사실 VR이 더 큰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좀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VR이 가장 큰 용어로 올라오는 상황에서는 역사적으로 AR과 VR이 각각 존재하다가 AR 후속이 MR이고, VR이란 용어로 통합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굳이 그림을 그리자면 아래의 느낌 정도 같다.
2. Vive와 오큘러스 중 누가 이길 것인가? 사실 두 개는 다른 기기
VR을 이야기하면 오큘러스와 HTC Vive 중 어느 게 더 시장을 석권할지를 묻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추가로 하반기에 출시될 홀로렌즈와 매직리프도 초미의 관심사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두 기기는 전혀 다른 기기이다. 마치 “아이패드가 갤럭시S를 이길 수 있어요?”라고 묻는 질문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해당 기기들은 전혀 다른 공간에서 전혀 다른 사용자의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앞서 말한 VR과 AR을 통칭하여 아래와 같이 정리해봤다.
VR과 AR이 기술적으로 가장 크게 갈라지는 부분은 무엇일까? 사용자가 느끼기에는 ‘실제 화면이 보이는가?”일 것이다. 하지만 기술적 입장에서는 주요 관점이 조금 달라진다.
1) VR
VR은 사용자가 앉아있는지, 어디를 보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는지, 손가락을 까닥거리는지 같은 사용자의 행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스템이다.
1.1) Seating
앉아있는 사용자를 가정하게 되는 오큘러스나 플레이스테이션 VR의 경우에는 게임과 360도 동영상에 적합하다. 일반적인 Lean back형 콘텐츠나 장시간 편안한 자세를 요구하는 RPG 게임 등이 그것이다.
1.2) Standing
앞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HTC Vive는 오큘러스의 경쟁제로 보기 어렵다. 특정 공간을 요구하고 사용자가 서 있는 것을 가정하는 기기는 사실 상당히 액티브한 활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러한 게임들로 ‘키넥트’와 ‘Wii’가 있었다. 수 미터 이내의 공간을 요구하고 사용자가 온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아케이드형 게임에 적합하다. 즉 아케이드형 VR방에 적합하다.
1.3) Mobile
‘삼성 기어VR’과 ‘카드보드’로 대표되는 모바일 VR은 스마트폰을 꽂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 스마트폰을 꽂는 이유는 그게 싸기 때문이다. 만약 단독기기가 더 값싸진다면, 모바일기기는 스마트폰을 꽂지 않는 형태도 출현할 것이다.
그보다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동성이다. 어디서나 간편하게 이동해서 잠깐잠깐 즐길 수 있는 형태의 기기들이다. 이러한 VR기기들은 교육용 기기에 적합하다. 물론 모바일용 기기가 모션 추적도 되고, 3D랜더링도 오큘러스 수준으로 된다면야 나머지를 다 잡아먹을지 모르겠으나, 노트북이 현재도 데스크탑을 잡아먹지 못한 것을 보면 이 시장은 따로 분리되어 갈 심산이 크다.
2) AR
앞서 말한 VR 대비 AR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용자의 몸이 무얼 하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주위를 스캔하는데 더 큰 프로세싱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홀로렌즈의 경우 주위를 스캔해서 3차원 공간을 인식하고, 가상오브젝트를 떨구는 데만 프로세싱을 꽤 쓴다.
산업적 목적하에 사용될 AR은 특수목적에 리얼타임으로 목적한 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고해상도의 그래픽을 요구하기보다는 빠른 속도와 주변 스캔에 더 많은 힘을 쏟는 기기가 될 것이다. 따라서 AR이 VR을 잡아먹을 것이라고 기대하기에는 기술상 어려움이 있다.
2.1) Outdoor
실외의 AR은 대표적인 것이 ‘구글글래스’이다. 실외는 태양광 아래에 보여주는 것이 문제가 되므로 빛의 밝기와 배터리가 상당히 큰 이슈가 될것이다. 구글글래스의 경우, 경험해보면 정말 쓸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실외 AR의 산업적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그중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군수산업일 것이다. 100만 원짜리를 1억에도 납품 가능 한 한국이라면 더더욱.
2.2) Indoor
실내의 AR은 생산성 기기, 교육용 기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사무실에서 VR기기를 쓴다는 것은 옆 동료가 보이지 않으므로 사실상 매우 불편하다. Video Through처럼 VR에 카메라를 통해 외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개념상으로 그런 VR기기는 AR로 분류가 가능하니 일단 AR에 넣을 수 있겠다. 따라서 특정 기기로 분류하기보다는 사용자 경험 관점에서 실내 AR을 따로 나누었다.
2.3) Transport
자동차, 비행기, 버스 같은 이동형 기기들은 AR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관련 업체들도 전통 자동차 업체들이 많다. 혹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와서 운전을 아예 안 한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창문은 존재할 테고, 주변의 정보들을 보고 싶어 하는 욕구들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 가능성이 높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투기의 HUD는 대표적인 이동형 AR기기이다.
3. 360동영상이 VR의 최고의 킬러 콘텐츠? 그보다는 입문 콘텐츠
개인적으로 360도 동영상이 최고의 VR 콘텐츠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360동영상은 VR기기로 경험 가능한 영상의 한 종류이다. 그리고 엄밀하게 따지면 360동영상은 VR이 아니다. Virtual에 대한 가상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AR에서 말풍선이라도 달아주던 것이 오히려 VR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360동영상은 4K, 8K의 확장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때문에 360동영상이 VR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360동영상의 성공 혹은 실패가 VR 게임 시장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4K영화가 고해상도 3D 게임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았듯이 말이다. 두 개는 엄밀히 다른 시장이다. VR은 컴퓨터나 모바일과 같은 컴퓨팅 환경이다. 모바일이 등장해서 지도서비스와 동영상 서비스가 나왔지만, 그 두 개가 하나를 압도한다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영역에 있는 서비스일 뿐이다. 따라서 둘이 싸울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조금 우려되는 바는 있다. 360동영상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높은 편인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고 본다.
1) 제작과 배포의 용이성
360동영상은 게임에 비해 제작이 용이하다. 수준의 문제지만 어쨌든 특수한 카메라를 구매한 후 연기자만 있으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유통 플랫폼이 파편화된 다른 VR콘텐츠 대비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막강한 메이저 플랫폼이 존재한다.
2) 방송, 통신의 새로운 먹거리
대한민국 IT의 가장 큰 분야는 방송, 통신이다. 해당 부분에 대한 정책도 많고 실제로 돈도 많이 번다. 새로운 먹거리를 위한 욕구가 높고, 방송 입장에서 360동영상은 새로운 시도이며 통신입장에서는 VR비디오야 말로 더 많은 통신료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소스이고 5G 확산을 위한 가장 좋은 아이템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360동영상은 공급자 중심의 드라이브가 좀 강한 편이다.
3) 유명 IP와 성인콘텐츠 적용 용이성
콘텐츠에서 가장 손쉽게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방법 중 하나는 기존 콘텐츠의 유명세이다. 유명 연예인, 유명 캐릭터, 그리고 또 하나는 새로운 경험과 자극을 쫓는 성인 콘텐츠.
360동영상은 이러한 요소를 적용하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
4) 모바일 VR의 보급
VR기기 중 유일하게 그나마 많이 깔린 건 ‘기어 VR’이고, 더 많이 깔린 건 1만 원도 안 하는 카드보드다. 이 가격에서 경험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360도로 고개를 돌려보는 것이 다였다. 카드보드의 자석 버튼도 기어VR에 블루투스 게임패드를 붙여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러한 상황에서 쉽게 접근이 가능한 것은 360VR뿐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360동영상은 VR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가치인 Virtual이 주는 가치가 부족하다. 중국VR산업백서에서는 VR의 3가지 가치를 이야기한다. 각각 몰입감, 상상력, 인터렉션이다. 이 중 360동영상은 VR의 가치 중 몰입감만을 이용했을 뿐이다. 상상력의 추가 가치와 인터렉션 부분이 부재하다. 공연 그대로를 찍은 일반적인 360동영상보다 VR로서의 상상력의 가치를 더한 아래의 동영상이 VR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Coldplay – Up&Up
일반적인 드라마, 스포츠, 공연처럼 360동영상의 시장은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TV나 4k 영상 시장을 대체할지 모른다. 그 시장은 결코 작지 않다. 나도 게임을 좋아하긴 하지만, 요즘엔 쇼파에 누워서 IP TV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것이 VR이 주는 모든 가치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그렇기 떄문에 VR의 모든 가치를 경험하길 원하는 사용자의 입문용 콘텐츠로 분명히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현재의 360VR도 여전히 360도 영상이 주는 가치를 발견하지는 못한듯하다. 360도 동영상이라 해서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도 금방 식상해지고, 뒤를 못 봤다고 Replay를 할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사용자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영화 두 번 세 번 보고, 게임 두 번 세 번 엔딩 보는 매니아들이 얼마나 될 거라고 기대하는가?
때문에 VR에 대한 시선이 좀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관점에서 360VR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경계한다.
4. 좀 더 자세한 건 리포트를 기약
본 포스팅은 그동안 VR, AR기술들을 보면서 독자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위와 같은 VR기술의 프레임워크를 상정하고 각 산업영역에서 어떤 기술이 어떻게 필요할지, 한국과 해외의 상황은 어떠한지 찾아볼 게 무궁무진하다. 생각보다도 빨리 새로운 기술들과 콘텐츠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한편 좀 더 제대로 된 리포트를 작성해볼 계획이긴 하지만, 언제 나올지 모르는 일이니 시의성도 중요하다 싶어 가볍게 썼다.
혹시 해당 프레임워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었으면 한다. VR이라 하는 시점에서 워낙 다양한 기술들이 나타나서 개념을 정립하고 있는 중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원문: 숲속얘기의 조용한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