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In an Age of Privilege, Not Everyone Is in the Same Boat」를 번역한 글입니다.
마이애미 —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이 최근 출시한 크루즈선에는 승객 4,200명 대부분의 출입이 통제된 구역이 있다. 아무나 갈 수도 볼 수도 없게 하는 것은 계산된 전략이다.
‘더 헤븐(The Haven)’이라 불리는 이곳은 배 안의 또 다른 배로, 최우수 고객 275명만을 위한 공간이다. 불편 사항을 바로 처리해주는 전담 직원이 24시간 대기하고 있고, 수영장과 일광욕 테라스, 식당까지 모두 ‘더 헤븐’에 머무는 손님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시설이다.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 이스케이프 호의 다른 일반 객실에 탄 승객들과 마주칠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오아시스 같은 꿈의 공간인 셈이다.
‘더 헤븐’에 묵는 최우수 고객은 크루즈에서 상연하는 쇼를 보러 일반 고객에게 통제된 전용 구역을 벗어날 때도 ‘더 헤븐’ 탑승권인 황금 카드를 보여주기만 하면 바로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를 받는다. 크루즈가 항구에 정박하면 다른 손님들이 내리기 전에 제일 먼저 배에서 내린다.
“‘더 헤븐’이라는 공간과 서비스를 대중들에게 구태여 알리지 않고 어느 정도 신비주의를 유지하는 건 처음부터 계획된 전략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고 싶어 하거든요.”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의 CEO였던 케빈 시한의 말이다. 시한은 더 부유한 고객층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이스케이프 호의 설계를 돕기도 했다.
남북전쟁 직후 19세기 말의 대호황 시대를 일컫는 도금 시대(Gilded Age) 이래 빈부 격차가 가장 크다는 요즘이다. 부유층 가운데도 정말 돈이 아주 많은 부자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갑부들에게만 허용된 공간에 중산층, 서민들은 드나들지 못하도록 고급스러운 벨벳 줄로 출입을 막아놓은 세상이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 즉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 제이피 모건이 은행을 세우던 때, 등급에 따라 객실이 명백하게 나뉘어 있던 타이타닉 호가 출항했던 시대 이후 보이지 않던 경제적, 사회적 계층화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를 보여준다.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오늘날에는 기업들이 이런 최고 갑부 고객을 훨씬 더 능숙하게 찾아내고, 이들의 어떤 지점을 공략하면 지갑을 열 수 있는지를 신통하리만치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목적은 선택받은 극소수만 독점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사치스럽고 독특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선택받지 못한 대다수의 반감을 사더라도 말이다. 사실 어느 정도의 시기와 부러움은 결국 기업(의 수익)에 득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돈 많은 여행객이 애틀랜타나 뉴욕 및 다른 도시의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탈 때 델타 항공은 포르쉐 승용차로 터미널 간 셔틀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비스의 이름은 ‘깜짝 기쁨을 드리는 서비스.’ 지난 3월 월트 디즈니 월드는 놀이동산의 수많은 인파에 치이기 싫은 고객들을 위해 폐장 시간 이후 디즈니 월드를 개방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쉽게 말해 고객으로서는 디즈니 월드의 동화 속 왕국 전체를 전세 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로얄 캐리비안 크루즈선이 아이티 북쪽 해안가 라바디에 있는 크루즈 회사 소유의 전용 리조트에 정박할 때도 전용 리조트 안의 또 다른 특별고객 전용 비치클럽에 머무는 VIP 고객은 일반 고객들과 마주칠 일이 없다. 다시 말해 특별구역 내의 또 다른 특별 구역인 셈이다.
“우리는 계급에 따라 더욱 격리된 채 각기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분명 평등이라는 가치를 구현하려 노력해 온 것이 미국 사회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였는데, 적어도 그 점에서는 우리가 이전보다 훨씬 잘못하고 있는 겁니다.”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시민참여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토마스 샌더의 말이다.
UC 버클리의 경제학자 엠마누엘 사에즈 교수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1%의 가계가 미국 전체 부의 42%를 소유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이 수치는 20년 전만 해도 30%도 되지 않았다. 상위 0.1% 가계가 소유한 부는 전체의 22%로 1995년과 비교했을 때 그 비중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소득 불평등과 빈부 격차 문제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이 문제는 올해 미국 대선에서 핵심 의제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미국 기업들에 있어서 불평등의 심화는 전혀 다른 의미다. 크루즈를 운영하는 기업, 카지노 업계, 놀이공원, 항공사 등은 상위 1%의 지갑이 두둑해진 지금 상황을 새로운 이윤을 창출할 더없이 좋은 기회로 보고 있다.
오늘날 기업들은 때때로 일반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줄이면서까지 부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최상위 계층을 사로잡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금융위기와 함께 시작해 오랫동안 계속된 경기 침체가 끝난 뒤 갑부와 갑부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기업들은 좋은 시절을 누렸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 사이 미국에서 금융 자산만 100만 달러 이상 보유한 가계의 숫자는 1/3 가까이 늘어 700만 가구에 육박하게 됐다. 이 기간에 이들의 추정 재산은 연간 7.2%씩 늘어났다. 금융 자산이 100만 달러 미만인 가구들보다 재산이 불어나는 속도가 여덟 배나 빨랐다.
“돈이 몰리는 곳에 사람도 몰리는 법이죠. 돈이 있는 곳에서 수요가 나오고 기업들은 수요가 있는 분야에서 혁신을 꾀하게 되는 겁니다.”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의 스티븐 파짜리 교수의 말이다.
계급의 분화
여러 면에서 벨벳줄로 상징되는 특권층의 부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행, 레저를 비롯해 미국인의 생활 구석구석에서 일어난 위대한 민주화의 성과를 거스르는 일이다. 예전에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부자들을 제트족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제는 제트족은 특별한 계층이 아니다. 저가 항공사들의 등장으로 일반 서민들도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갈 기회가 많아졌다. 언젠가부터 공항이나 놀이공원 같은 곳에서 부자들은 서민들과 부대낄 수밖에 없게 됐다.
사기업은 물론 공공기관도 돈이 아주 많은 부자에게 특별 대우를 제공한다. 이런 특별 대우는 부자라서 그냥 개인적으로 받게 되는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업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말 LA 시 정부는 LA 공항 내의 별도 시설 하나를 사기업에 임대해 일종의 최최우수 고객 전용 터미널을 짓기로 했다. 유명 연예인 혹은 누구든 1,800달러, 우리돈 약 200만 원을 내는 고객은 공항 안팎의 교통 체증도 피하고 주요 터미널에서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최최우수 고객 전용 터미널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물론 훨씬 더 극단적일 수도 있다. 실제로 과거에는 그랬다.
20세기 초, 타이타닉 호에 탄 승객들은 표의 등급에 따라 철저히 격리됐다. 다른 등급의 객실과 객실 사이는 철문으로 막혀 있었다. 19세기 프랑스 기차의 3등 칸 객실에는 지붕이 없었다. 지붕이 있는 아늑한 2등 칸 표를 살 수 있는 고객은 돈을 조금 더 내고 2등 칸 표를 사라는 뜻이었다.
오늘날 달라진 게 있다면 미국의 대기업들이 이런 부자 고객을 모셔가기 위해 더욱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이다.
최근 뉴욕 항에서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의 브레이크어웨이 호에 탑승하는 손님들의 모습이 대표적인 사례다. 짐을 잔뜩 끌고 오는 많은 승객이 좁은 엘리베이터 몇 칸에 나눠타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유난히 한적한 곳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 줄은 자리가 있어도 일반 승객은 갈 수 없는, 고층 갑판으로만 가는 ‘더 헤븐’ 승객 전용 탑승구다. 배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크루즈 극장 내 가장 좋은 앞자리에는 일반 승객이 앉지 못하도록 붉은 벨벳줄을 둘러놓았다. 역시 ‘더 헤븐’ 승객만 앉을 수 있는 좌석이다.
수족관도 별반 다르지 않다. 4인 가족 기준 기본 입장료 320달러에 추가로 80달러를 더 낸 사람들은 기다리는 줄 제일 앞으로 질러가 가장 먼저 입장하여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쇼도 보고 놀이기구도 먼저 탈 수 있다. 이 정도에 만족하지 못하는, 더욱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고객을 위해 올랜도의 유명한 수족관 ‘시월드’ 바로 옆에 아예 새로운 고급 해양 체험관 ‘디스커버리 코브’가 문을 열었다.
해양 체험관이라고 그저 돌고래와 함께 헤엄치는 정도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른들이 그들만의 백사장에 마련된 쉼터에서 편히 쉬는 동안, 해양 생물학자를 꿈꾸는 어린이들은 조련사와 함께 부지 안에 있는 새와 수달에게 먹이를 주고 상어와 다른 동물들을 돌보며 하루를 보낸다. 돌고래와 함께하는 수영은 물론 기본 메뉴에 포함돼 있다.
사람들이 몰려 줄을 서서 기다릴 일도 없다. 하루 입장객이 1,300명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디스커버리 코브에서 하루를 보내려면 4인 가족 기준 적어도 1천 달러, 우리 돈 100만 원이 넘는 돈은 쓰게 된다.
내년에 크리스탈 크루즈라는 회사는 심지어 부유층 고객을 노린 초호화 항공 세계 일주 상품을 내놓는다. 최우수 고객 전용 크루즈로 개조한 보잉 777기 한 대로 14일 혹은 28일 동안 세계 곳곳을 다니는 여정이다.
UC 버클리 하스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스티브 타델리스 교수는 이론과 실제가 다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론적으로는 돈을 쓰고자 하는 여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더 비싸고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으면 (여유 있는 사람들은 물론)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이론적으로는요. 하지만 현실에서 각자의 효용에 꼭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모두가 행복해지기는 아주 아주 어렵죠.”
기업이 점점 VIP 고객에 공을 들이는 등 고객을 세분화해 공략하면서 고객 사이에 존재하는 선을 얼마나 분명하게 그어야 하느냐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서 레저 업계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컨설팅 업무를 총괄하는 데이비드 클라크 같은 전문가는 고객이 내는 돈에 따라 서비스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말한다.
“결국은 투명성의 문제거든요. 고객은 기업이 뭔가를 숨기는 것 같고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은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하지만 일반 고객에게 VIP 서비스를 알리는 차원에서 맛보기만 보여주어도 회사 수입이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업들은 발견했다. 물론 어느 정도 (부유한 고객을 향한) 시기와 (부유한 고객만 떠받드는 듯한 기업을 향한) 분노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주요 항공사를 컨설팅하는 맥킨지의 임원 알렉스 디크터는 이렇게 말한다.
“보잉 747이나 에어버스 A380 같은 대형 기종에 탑승하는 일반석 승객은 샤워시설이나 1인실 같은 최고급 시설을 보기만 해도 아주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되죠. 많은 회사가 이런 식의 맛보기 상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의 욕망을 자극하는 도구로 씁니다. 등급을 나누어 놓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더 높은 등급을 지향하게 됩니다.”
돈 있으면 다양해지는 선택지
부자들의 선택지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반면 가난한 미국인들은 기술 혁신과 상품의 진화로부터 별다른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 자비에르 자라벨은 최근 발표한 연구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즉, 멋진 요리도구든 자연산 유기농 치즈든 고급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든 부유층을 겨냥한 상품 분야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 새로운 상품이 계속 출시되지만, 통조림이나 담배처럼 서민층이 주로 찾는 상품 시장에 새로 뛰어드는 업체는 상대적으로 훨씬 적다.
최상위 부유층의 수요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파짜리 교수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세인트루이스 지점의 배리 시나몬이 함께 진행한 연구를 보면 물가 상승을 감안한 소득 상위 5%의 실질 지출은 지난 2003년부터 2012년 사이에 35% 늘어났지만, 나머지 95%의 지출 상승 폭은 10%에 미치지 못했다.
인터넷과 빅데이터 덕분에 회사들은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기법을 동원해 가장 부유한 고객을 정확히 집어내 이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수 있게 됐다.
“부유층 고객에게는 이제 심리학적 관점에서 수요를 측정하는 ‘사이코그래픽스’ 기술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분석 수준이 상당히 발전했습니다. 예를 들어 호텔이 제공하는 고객 편의 서비스를 정확히 얼마나 이용하는지, 2월에 누가 더 많이 스키를 타러 가는지 등을 데이터로 뽑아낼 수 있습니다.”
뉴욕대학교에서 관광경영 관련 과목을 가르치는 비요른 한슨의 말이다. 부유한 고객을 유치하려는 회사에 이런 분석 기법의 발전은 부유층 고객의 수요을 예측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PwC의 클라크는 이렇게 설명한다.
“VIP 고객은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누가 일일이 묻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람들과의 마찰, 심지어는 접촉도 피하고 싶어 하죠. 대신 물 흐르듯 눈에 띄지 않게 자신을 위한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었으면 하는 겁니다.”
반면 저소득층이나 중산층은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즉, 얼마까지 돈을 내기로 마음먹었느냐에 따라 번거로운 정도가 결정되는 셈이다.
“소득이 낮은 고객의 기대치는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느니 어느 정도 불편하고 부족하더라도 돈을 아끼는 편을 택하기도 하는 거죠.”
“일반 고객에게 서비스 업그레이드해주지 마세요. (부자 고객들이 싫어해요)”
기업의 임원들은 최우수 고객을 분리해 특별히 대접하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대놓고 말한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지지하는 이들이 들으면 대뜸 발끈할 만하다.
처음 ‘더 헤븐’을 선보였던 2006년,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은 일반실 고객에게 200달러만 더 내면 40개 남짓한 특급 객실로 업그레이드를 해줬다. 그 결과 ‘더 헤븐’은 객실 등급을 업그레이드한 고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전직 CEO 시한 씨는 업그레이드를 당장 중지했다. 이윤이 떨어져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특권층만 누릴 수 있는 최고급 서비스’라는 ‘더 헤븐’의 고유한 상품 가치를 훼손했기 때문이었다.
“‘더 헤븐’에는 올 만한 자격이 있는 손님을 제대로 선별해야 했어요. ‘더 헤븐’이라는 특별한 공간에 일반 고객을 너무 많이 받은 나머지 부유층 손님들이 원하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됐습니다.”
지난해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난 시한은 말했다.
어쨌든 부유한 고객에게 집중한 시한의 전략은 선견지명이 있는 것으로 판가름났다.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의 주가는 급등했다. 최근 몇 년간 새로운 크루즈선 여러 척을 건조하면서 ‘더 헤븐’의 개념은 더욱 뚜렷해졌다. ‘더 헤븐’만을 위한 전용 수영장, 라운지, 바와 레스토랑이 마련되면서 ‘더 헤븐’은 배 안의 다른 공간과 더욱더 격리됐다. 2010년 승객 4,100명을 수용하는 에픽 호를 진수할 때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의 앤디 스튜어트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VIP 손님이 한번 배에 오르면 영원히 크루즈선을 떠나지 않아도 될 만큼 모든 걸 갖추어 놓았습니다.”
지난해 더 최근에 건조된 이스케이프 호가 첫 항해에 나섰을 때 ‘더 헤븐’ 95개 객실은 배의 가장 앞쪽 제일 높은 곳에 있어서 ‘더 헤븐’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비싼 돈을 주고 고급 객실을 예약한 승객 중에는 ‘더 헤븐’의 존재를 짐작하지 못한 이도 있었다. 성수기 여부에 따라 요금이 다르긴 하지만, 보통 일주일간 이어지는 크루즈 항해에 ‘더 헤븐’ 방 하나를 예약하려면 2인 기준 1만 달러 정도를 내야 한다. 배 안의 다른 일반 객실 요금은 3천 달러 정도다.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의 서비스 ‘더 헤븐’이 배 안의 숨겨진, 혹은 적어도 잘 보이지 않게 가려놓은 공간이라면,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의 최대 경쟁사 로얄 캐리비안의 전략은 정반대다. 돈을 가장 많이 내는 고객에게 제공하는 최고의 서비스가 무엇인지 모든 승객이 알고 있다. 로얄 캐리비안의 최고급 객실 로얄 스위트는 배 안의 또 다른 배 혹은 숨겨진 비밀 공간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일반 고객은 이용할 수 없는 최고급 서비스가 제공되는 건 똑같지만 ‘더 헤븐’과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일반 고객이 로얄 스위트 고객들이 누리는 서비스를 말그대로 유리창에 코를 대고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로얄 캐리비안의 새로운 크루즈선 앤썸 호에서 모든 승객이 이용할 수 있는 북적북적한 윈드재머 카페의 뷔페로 밥을 먹으러 가는 일반 승객은 늘 로얄 스위트 고객 전용 식당 코스탈 키친이 보이는 반투명 유리창을 지나게 된다.
코스탈 키친에서는 뷔페 음식을 담아놓은 냄비와 그릇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 새하얀 식탁보가 깔린 식탁에 고객 한 명 한 명이 안내된 자리에서 식사를 하는 코스탈 키친의 분위기는 대체로 평온하고 여유롭다. 일반 고객들이 식사하는 뷔페 식당은 사람들로 붐벼 정신이 없다. 로얄 스위트 고객도 원하면 물론 뷔페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로얄 캐리비안과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의 경영 방식은 놀랄 만큼 대조를 이룬다.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의 경영진이 ‘더 헤븐’을 일반 승객들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설계했다면, 로얄 캐리비안은 오히려 모두에게 공개하는 쪽을 택했다. 로얄 캐리비안의 대표이사 마이클 베일리는 말했다.
“미국식이죠. 저는 미국 사회가 돈을 더 많이 낸 사람이 더 많은 몫을 가져가는 게 당연하다는 원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대표이사 베일리와 리처드 페인 회장은 ‘더 헤븐’을 분석한 뒤 로얄 캐리비안에는 ‘배 안의 배’ 개념을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로얄 캐리비안의 매력과 문화에도 어울리지 않아요. 승객을 등급에 따라 나누는 건 전혀 미국적이지 않은 발상입니다. 물론 뉴욕 센트럴파크처럼 좋은 동네에 산다면 당연히 돈이 더 많이 들겠죠. 미국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요.”
최근 들어 레저 산업 전반의 추세가 그러하듯, 로얄 캐리비안도 일반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와 최우수 고객에게 제공하는 고급 서비스의 차이를 차츰 더 자연스럽게 벌려 왔다. 로얄 캐리비안의 최고 운영책임자인 아담 골드슈타인은 회사가 새로운 배를 설계하거나 새로운 시설, 서비스를 도입할 때마다 고객의 심리적 반응을 항상 중시해 왔는데, 근래에는 고객들의 기대치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고객들은 객실은 달라도 객실 밖에서 받는 전반적인 서비스는 배 안에 탄 고객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받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저희도 고객 서비스를 승객마다 차등화하려고 하지 않았죠.”
그러던 것이 1990년대 말부터 바뀌었다는 게 골드슈타인의 설명이다.
“고객들의 우선순위가 가히 혁명적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요? 더 넓은 방, 더 좋은 이불을 원하던 데서 나아가 요즘 돈을 많이 쓰는 고객들은 보살핌을 받고 싶어 합니다. 즉, 자신이 다른 고객보다 더 중요한 고객이라는 걸 항상 인정받고 싶어 하죠.”
룸서비스가 단적인 예다. 로얄 스위트에 묵는 손님들의 룸서비스 주문은 일반 고객들의 주문과 섞이지 않고 직통으로 먼저 접수된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거나 서비스도 들쭉날쭉한 일반 룸서비스와 달리 로얄 스위트 손님에게는 확실한 맞춤형 서비스가 신속히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로얄 캐리비안 일반 객실 요금이 4천 달러인 데 반해 로얄 스위트 객실료는 일주일에 비싼 방은 3만 달러가 넘는다. 베일리는 아주 부유한 고객층을 유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요금이 비싸도) 방을 채우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5월에 로얄 캐리비안은 최고급 객실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개인별 도우미 서비스 “로얄 지니(Royal Genie)”를 선보였다. 로얄 지니는 승객의 취향을 미리 파악해 처음 배에 타 객실에 들어왔을 때 각자 즐겨 마시는 스카치나 보드카를 준비해놓는 식의 ‘취향 저격 고객 만족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로얄 캐리비안 측은 설명했다.
포춘 100대 기업에 자문위원으로 일해 온 예일대학교 경영대학의 배리 네일버프 교수는 이렇게 벨벳줄 안쪽에 머무는 부유층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회사의 매출을 올리는 데는 도움이 되고 부자들을 기쁘게 할지 모르지만, 특별 대접을 받는 부자들과 나머지 일반 손님들의 격차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불편해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제가 비행기 일반석 뒷자리에 타 있다면 속으로 일등석에 탄 사람들에게 야유를 보내고 싶어질지도 모르죠. 반대로 일등석에 타 있으면 또 일반석 승객들이 지나갈 때 민망하여 몸을 웅크리게 되지 않을까요?”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