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알려진대로 터키에서는 지금 대규모 시위가 한창이다. 지금 이 글을 끄적이는 순간에도 알자지라의 터키 시위 라이브 블로그에는 터키 전역으로 확산된 시위 현장의 사진들이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다. 48개 이상의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번 시위의 발생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개발 독재’식의 무리한 개발 추진이고, 다른 하나는 ‘이슬람화’이다.
개발 독재의 그림자
터키의 현 총리인 에르도안과 여당 정의개발당(AKP)은 벌써 10년 넘게 집권을 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해서 집권을 연장하고 있는 정권이다. 그리고 그 비결은 눈부신 경제성장에서 나온다. 과거만 하더라도 터키는 국체의 허약함으로 유럽 내에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2003년 집권 당시의 터키 경제규모를 2011년 세 배로 키웠다. 미국과 유럽과의 관계도 개선시켜 올해 초에는 나토로부터 패트리어트 포대 지원도 받기에 이르렀다.
한편 에르도안은 동의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거침없었다. 많은 언론인들이 감옥을 가기도 했다. 이미 교통 정체로 악명 높은 이스탄불에 또다시 공항을 설치하려는 계획도, 이스탄불의 유럽쪽과 아시아쪽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려는 계획도, 환경론자와 도시계획 전문가들의 우려를 물리치고 밀어붙였다. 최근 시위가 격화된 것도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이 반감을 불러온 측면이 크다.
이번 시위를 촉발시킨 이스탄불 시내의 탁심 광장 사건도 그렇다. 도심의 얼마 남지 않은 녹지대인 광장을 철거하고 쇼핑몰을 짓겠다는 계획이 환경운동가들의 반발을 낳았다. 그리고 광장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운동가들을 과도하게 압박하면서 예술가들과 정치인들도 시위에 가담하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시위는 전국적인 차원으로 확산되었다. (이 상세한 과정에 대해서는 터키 탁심광장 시위, 5일간 잔혹한 현장의 흐름을 참조)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
이 모든 과정의 밑바닥에는 터키의 이슬람화 문제 또한 깔려있다. 터키는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 신자이지만 기본적으로 정교가 분리되어 있는 세속국가이다. 터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터키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이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터키 공화국을 세우면서 가장 먼저 확립한 것이 바로 세속주의 원리였다.
이 때문에 서구는 중동 이슬람 국가들의 ‘서구적’ 이상형으로 꾸준히 터키를 꼽아왔다.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 신자이면서도 정교가 분리되어 있는 세속국가이고, 민주적인 방식을 통해 정권을 세우고 교체한다. 게다가 최근 10년 동안 터키는 경제적으로도 꾸준히 발전해왔으니 그야말로 타의 모범이 될만하지 않겠는가. 동아시아에 한국이 있다면 중동에는 터키가 있었다.
사실 터키의 이슬람화 우려는 에르도안 집권 초기부터 있었다. 정의개발당이 기본적으로 이슬람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터키는 9/11 이후의 세계에서 서구(특히 나토)와 협력을 계속하면서 서구 국가들의 불안감을 잠재웠다.
그러나 에르도안은 조금씩 오늘날의 터키를 있게 한 세속주의와 멀어지면서 점차로 터키를 이슬람화시키고 있다. 주류 규제를 강화한 것이 그중 하나다. 이번 시위를 촉발시킨 탁심 광장의 개발도 이슬람주의와 연관이 있다. 쇼핑몰 건설과 더불어 오스만 제국 시절의 포병부대 건물을 재건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스탄불의 새로운 교량의 이름을 짓는 것에서까지도 오스만 제국의 술탄 셀림의 이름을 따 문제의 소지를 만들었다.
‘터키의 봄’은 허구
또다시 중동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재작년의 ‘아랍의 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터키의 경우는 이전의 중동 국가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이미 언급했듯 터키는 이미 민주국가이고 세속국가이다. 소위 민주국가에서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고 분개하기 전에 우리나라를 떠올려 보자. 어쨌든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국가가 맞다.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완벽하다. 터키를 다른 아랍 국가들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또한 ‘아랍의 봄’은 대부분 서구의 자유주의자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이집트를 들 수 있다. 독재자 무바라크를 몰아낼 때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이후 선거를 통해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하면서 서구가 희망하던 국가의 모습과는 많이 멀어져 버렸다.
앞으로의 터키는?
시위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우리나라의 촛불 시위를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형식적으로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에 대한 (그러나 경제난으로 인한 것은 아닌) 불만으로 시작되어, 정부의 잘못된 대응으로 크게 번졌다. 이명박 정부나 에르도안 정부나 모두 정상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정권이다. 세속 성향의 시민들이 최근의 이슬람화 경향에 반발하고 있으나 여전히 다수는 에르도안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 경제난으로 인한 시위가 아니기 때문에 상당 기간 지속되기도 쉽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개인적으로는 시위 자체보다 앞으로 터키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가 궁금하다. 에르도안의 경제 개발이라는 단맛을 입힌 당의정(이슬람화)는 과연 어디까지 진행될 수 있을까? 이슬람화가 된 이후에도 터키는 지금과 같은 발전과 번영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