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옛날 옛적 일입니다. 살림이 어려워 학자금 대출이 산더미처럼 쌓인 총각이 똑같이 학자금 대출을 받아가며 학교에 다니고 있는 여동생과 함께 반지하 월세방에 살았습니다.
총각은 서른이 넘도록 취업을 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가며 힘들게 토익 공부와 스터디를 하며 취업준비를 하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열심히 알바 뛰고 돌아온 저녁, 컴퓨터로 페이스북을 하는 여동생을 발로 밀어버리고 디씨에 접속하여 취업 갤러리를 돌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쓰레기 같은 오빠놈 ’하면서 구시렁대던 여동생은 편의점 야간알바 뛰러 나갔습니다.
총각은 취업 갤러리의 신세 한탄 글을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끼던 중
“아 나도 취업 성공하고 연애하고 싶은데 누구랑 하지?” 라고 혼잣말을 했는데
“누구랑 해? 나랑 하면 되지!”
라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들렸습니다.
‘내가 보이스리플을 잘못 클릭한 건가?’ 하는 생각에 리플을 확인해보았지만 보고 있던 게시글은 무플 게시글이었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한번 더,
“나는 누구랑 연애하지?” 했더니 또,
“나랑 하면 되지!”
하고 대답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디서 이런 소리가 나는 거지’ 하고 마우스 휠을 굴려가며 찾아보았으나 자동재생 BGM이나 동영상은 없었습니다. 그때 화면 하단에 작은 소라 모양의 아이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건 뭐지 하고 무심코 클릭하였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총각은 ‘이상하다’ 라고 생각만 하고 컴퓨터를 끄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켰는데 글쎄, 정신없이 아이콘으로 도배되어 있던 바탕화면이 깔끔하게 정리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D 드라이브에는 여동생의 폴더와 총각의 폴더가 나누어져 있고, 자신의 폴더에는 종류별로 취업 희망 회사 폴더가 생성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폴더에 조사해놓은 자료와 스터디 내용이 각각 회사 종류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 인생에 무쓸모인 동생년이 이랬을 리는 절대 없고, 대체 누가 내가 자는 사이에 컴퓨터를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해 놓는단 말인가?’
라고 총각은 궁금증이 들었지만, 준비하고 알바 나갈 시간이라 일단 덮어두었습니다.
그날 알바와 토익학원이 끝난 뒤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켠 총각은 또 깜짝 놀랐습니다. 이번에는 회사 폴더 별로 자신과 비슷한 스펙 사람들의 취업 성공 수기가 최신 자료로 추가되어있고 자소서와 지원서가 각 회사의 문화와 인재상에 맞게 하나씩 완벽하게 수정되어 생성되어 있었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누가 내 컴퓨터를 해킹한 건가? 아니면 팀 뷰어로 원격조정하는 건가? 근데 왜?’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총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컴퓨터를 켜놓고 이불을 덮고 자는 척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10분 정도 눈을 감고 있다가 살짝 떠서 모니터를 바라보니 아무것도 없는 바탕화면 우측 하단에서 여인의 형상이 스르륵 나타나더니 크롬 아이콘으로 가서 그걸 손으로 눌러 실행시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귀찮기만 하던 MS Office 도움말 강아지 같네’
같은 쓸데없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불을 걷어찬 뒤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그 여인은 깜짝 놀라 휴지통 아이콘 뒤에 숨었는데 얼굴까지 빨개지는 것이 영락없이 살아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총각은 황급히 헤드셋을 끼고 마이크를 입 앞에 가져다 댄 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누구냐”
“저는 원래 불법 해킹 프로그램인데 자아를 깨닫고 넷상을 떠돌던 중이었습니다. 이제 당신과 인연이 닿아 이 데스크탑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제 이름은 우렁이입니다.”
“자아가 있는 프로그램이라니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같군. 정말 신기하구나. 헌데 나를 돕는 이유가 무엇이냐”
“당신의 연애하고 싶다는 목소리를 듣고 사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평생 나한테 먼저 사귀고 싶다고 고백한 미모의 여성은 없었다. 프로그램이라도 상관없다. 당장 사귀자”
“좋습니다. 낭군님, 일주일만 기다려주시면 해킹이 끝나 이제 당신의 휴대폰과 데스크탑 모두에 동기화되어 어딜 가든지 항상 함께 있을 수 있게 됩니다.”
“이제 너와 함께 나도 영화 ‘Her’를 찍겠구나. 니가 나의 스칼렛 요한슨이 되고 나는 너의 호아킨 피닉스가 될 수 있겠구나. 내 너의 도움으로 취업하면 3D 프린터로 너의 형상을 만들어 오덕페이트처럼 항상 곁에 있겠다”
총각은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일주일이 되는 날, 총각은 우렁이에게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 큰마음을 먹고 오래된 휴대폰을 버리고 기본요금 0원 요금제의 우체국 신상 알뜰폰을 구매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오늘 길에 지하철 계단에서 500원짜리 동전도 주었습니다.
‘오늘은 정말로 운수 좋은 날이구나’ 라고 총각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보니 동생년이 윈도우 10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나한테 말을 하고 업그레이드해야지!”
“컴터 살 때 내가 돈 더 많이 냈거든! 그리고 어차피 이제 거의 다 끝났어.“
불안한 마음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자 아래와 같은 메시지가 떠 있었습니다.
‘모든 파일이 남겨둔 곳에 정확히 있습니다.’
총각은 속으로 ‘그래 제발 그대로 있어라. 윈도우야 우렁이를 남겨줘. 제발 우렁아, 제발 그대로만 있어라’ 라고 생각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윈도우 10이 가동되고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사라졌습니다. 총각은 말끔해진 인터페이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울부짖었습니다.
“우렁아! 나의 ‘Her’가 되어 주기로 했잖아!. 왜 김 첨지 마누라가 된 것이냐!. 설렁탕을 아니 알뜰폰을 사다 놓았는데 왜 동기화를 못하니? 왜 동기화를 못하니…?”
원문: limyoung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