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던 19세 김군의 죽음은 ‘하청-메피아-전관예우’ 논란까지 확장되었다. 이에 박원순 시장은 16일 ‘지하철 안전업무 직영전환 및 메피아 근절방침’을 발표하고, 이른바 ‘메피아’라고 불린 서울메트로 전직자 182명을 모두 퇴출하는 한편 앞으로 재고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한 은성PSD 청년 노동자들을 서울메트로 직원으로 채용했다.
박원순 시장이 2011년 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처음 당선되었으니 약 4년 7개월 정도의 기간동안 서울시장으로 지낸 셈이다. 이와 같은 관피아-낙하산-전관예우 구조는 당연히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야당-진보(의 언론+지식인 포함)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박근혜-새누리당-재벌이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우리 사회가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적 모순은 아예 모르거나, 알아도 관심이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는 ‘전통 진보’에 속하는 민주노총 등은 (알아도, 몰라도) 제기하지도 않는 이슈이다.
게다가 공무원, 공공기관에서 낙하산-관피아-전관예우는 단지 서울시만의 문제도 아니다. 새누리당이 잡고 있는 영남지역인 부산-울산-경남-대구-경북도 그럴 것이고, 민주당이 잡고 있는 광주-전남-전북을 포함하여 대전-충남-충북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이는 말 그대로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이기에, 개별 광역 단체장이 알아도 맞서기가 쉽지 않을 정도의 ‘관행 아닌 관행’일 것이기 때문이다.
구의역 사고로 19세 김군이 죽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 그들과 가까운 야당-진보세력이 내놓은 해답은 <위험업무의 정규직화>이다. 이런 해답도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민주노총 조합원 확대 운동>에 다름 아닐 수 있다.
게다가 ‘위험 업무의 정규직화’에 국한된 민주노총-야당-진보 계통의 대안은 민주노총-한국노총도 직간접적으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자회사-외주-하청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공공기관의 전관예우-낙하산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법이 되지 않는다.
그들 양대노총은 ‘조합주의적’ 제약조건을 뛰어넘을 수 없기에, 모르면 모르는대로 가만히 있고, 알면 아는대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조직들이다. (자기네 조합원들이 지랄할 개연성이 높고, 그럼 차기 조합장 선거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진심으로 구의역 사고로 희생된 김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재발방지를 하고자 한다면, 혼신의 힘을 다해서 구의역 사고를 발생시킨 <구조, 그 자체>와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대기업-공공부문-정규직의 시각에서 제기되는 해법인 ‘위험업무의 정규직화’는 매우 매우 제한적인 해법에 불과하다.
‘위기’는 언제나 동시에 ‘기회’이다. 모든 인간은, 모든 리더는 미래의 모든 사고를 미리 예측하며 미리 예방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사고가 터진 이후의 대책이다. 그게 진정한 <위기관리능력>이다.
오히려 박원순 시장은 이번 기회에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 첫째, 서울시 부시장 정도의 무게감 있는 사람을 책임자로 ‘진상조사 및 재발방지위원회’를 꾸려야 한다.
- 둘째, 메피아 뿐만 아니라 서울시 산하 기관의 관피아-낙하산-전관예우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참여연대-민변-청년유니온-기타 공신력있는 청년단체 등과 함께 전수조사팀을 꾸려서 입찰견적서 등을 조사하며 그 과정에서 ‘내부고발’도 받고, ‘내부고발자 포상금’도 줘야 한다. 이번 기회에 최소한 서울시만큼은 실제로 <발본색원>하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 셋째, ‘진상조사 및 재발방지위원회’에 의해 전수조사까지 마친 이후, <법-제도 개선사항>을 국회(+각 정당) 그리고 중앙정부에 공개적으로 건의해야 한다. 건의사항의 핵심에는 반드시 두 가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 <광역-기초 지자체를 포함하여, 대한민국 전체를 대상으로, 공기업-공공기관의 자회사-하청-외주업체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청해야 한다.
- 향후 (전국적인) 재발방지를 위해 ‘법-제도적 개선사항’을 제안하는 것이다. 법-제도적 개선사항에는 •퇴직후 취업이력 공시제의 전면실시 •입찰조건 공시제 실시 •내부고발자 포상금 제도 •포상금 기금 설치 •내부고발자에 대한 강력한 리니언시 제도 등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이러한 해법은 본질적으로 정보의 비대칭성, 인센티브 체계, 의사결정 구조, 반복게임 등을 분석한 게임이론을 포함한 <미시경제학 이론>에서 발달한 정책적 해법들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투명성 강화 •국민 알권리 강화 •내부고발자 보호 강화와 같은 맥락이다. (이는 평소 ‘시민운동가 시절’ 박원순 시장이 오랫동안 주장한 해법들이기도 하다.)
야당-진보 계열은 박근혜-새누리당-재벌이 한국 사회의 모순의 근원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남 탓의 정치학’이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실제 현실, 실제 구조’와 대면하지 못한다. 현실로부터 도피했기 때문이다.
나는 박근혜-새누리당-재벌로 인한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 그 자체로 인한 요인이 더 규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공공부문 개혁을 가로막는 핵심 세력 중 하나는 공공부문 관피아, 그리고 노조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구조>를 분석하고, <구조>와 싸워야 한다.
2017년 대선 및 2018년 서울시장 3선을 준비해야 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입장에서 최대고민은 굵직한 성과-업적이 없기에 그걸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민 입장에서 볼 때) 박원순 시장이 지난 4년 7개월 동안 이명박의 청계천-버스체계개편, 오세훈의 디자인서울-새빛둥둥섬과 같은 ‘외형적’ 성과로 남긴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고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경제적 구조개혁> 그 자체이다.
만일, 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서울시 전수조사 •전국단위 전수조사 •전국적인 법-제도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주도한다면 ‘이명박의 성과’와는 쨉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업적이 될 것이며, 두고두고 전국적으로 강렬한 지도자 이미지를 남기게 될 것이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