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개발자로 해외 취업을 한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할까. 주위에 이런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는 주위에 들려오는 ‘카더라’ 통신 만으로 짐작할 수 밖에 없다. 겪어보지 못한 경험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함께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현실적인 생활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막연히 모든 게 좋을 거라는 환상은 위험하다. 따라서 이미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개발자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테다.
호주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개발자와의 대화
이 인터뷰는 호주에서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개발자와의 대화이다. 개인의 경험을 말 하는 것이므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다를 수도 있고, 이것이 일반적이라고 말 할 수도 없다. 다만, 앞서 경험한 사람으로부터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듣고, 단 한 가지라도 배우는 게 있다면 유익한 만남이라 할 수 있다.
편의상 평어로 짧게 서술하였으며, 인터뷰어를 익명으로 처리하는 관계로 신분이 드러날 수 있는 상세한 내용은 건너뛰는 점 양해를 부탁드린다.
호주에는 왜 갔는가?
신혼여행을 호주로 왔었는데, 그 때 아내가 여기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뭔가 잘 해줘야 한다는 중압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여기 와서 살게 됐다. (옆에서 아내 왈: 진짜로 올 줄은 몰랐다)
호주, 막연히 좋지만은 않아… 개인주의 문화 적응 어렵더라
호주에서 SW개발 회사를 다니니 어떤가? 막 해피해피 즐거운 나날일 것 같은데?
막연하게 꿈 꾸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5시 땡 하면 바로 집이다. 그래서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당연히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언어의 문제도 좀 있다. 아무리 잘 해도 걔네 문화적 늬앙스를 파악할 수 없을 때가 있으니까.
여기 사람들의 개인주의적 문화도 내겐 좀 안 맞는 것 같다. 회사 동료들끼리 밖에서 만나도 인사도 잘 안 한다. 회식이 1년에 단 한 번, 크리스마스에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도 참석 안 하려고 꺼린다. 저번 회식에서는 태국인, 중국인하고만 놀다 왔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 회사에서 동료애라는 게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처럼 못하는 사람 도와주고 그런 것도 거의 없다.
회사에서 개발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시니어와 주니어다. 개발 능력 레벨에 따라 나누어진다고 보면 된다. 주니어가 낮은 레벨, 시니어가 높은 레벨이다. 그런데 주니어들은 크리티컬(critical)한 문제들을 시니어하고만 얘기한다. 주니어들끼리는 일을 잘 봐주지 않고, 도와주지도 않는다.
한국에서 경력도 거의 십여년 있었으니, 거기서 시니어로 일 하고 있는가?
아니다. 여기서 주니어로 들어왔고, 아직 주니어로 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쌓은 경력은 제로보다 조금 많이 인정받았다. 거의 인정받지 못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일하다보니 여기선 내가 아무리 잘 돼봤자 시니어 개발자까지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도 PM(프로젝트 매니저)이 있긴 한데, 회사 내외부 다니면서 농담도 잘 하고 해야 하는게 문제다. 영어로 농담해서 웃길 자신이 없다.
일찍 퇴근할 수 있고 휴가 많다는 건 역시 장점
초반에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로 장식한 것 같다. 뭐 그래도 별 상관 없지만. 그래도 장점과 함께 여러가지 특징들을 좀 알려달라. 이왕이면 구체적인 금액으로.
가장 큰 장점이라면 일찍 마친다는 거다. 그리고 휴가도 많다. 1년에 30일 휴가를 쓸 수 있는데, 토요일 일요일까지 끼면 거의 6주간 휴가를 낼 수 있다. 한꺼번에 몰아서 45일간 휴가를 쓰는 것도 본 적 있다.
내 입장에서는 급여가 한국하고 비슷하다. 6만 달러(한화 6천 5백만 원 가량) 정도 받는데, 세금으로는 약 20% 정도 뗀다. 나도 호주가 세금 많이 뗀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떼 가지는 않는다. 소득공제나 연말정산 같은 걸로 환급을 많이 해 주기 때문이다. 거의 한국하고 비슷하게 떼 간다고 보면 된다.
애가 2명 있으니까 국가에서 육아 보조금을 한 달에 1,100달러(약 120만 원) 주더라. 월세는 방 2개 짜리에서 사는데, 한 달에 1,500달러(약 170만 원) 정도다. 기름값은 한국보다 싼 편이고, 과일도 싸다.
한 가족 생활비가 한국에서도 100만 원 조금 넘는 수준이었는데, 여기서도 1천 달러(약 110만 원) 정도 쓰고 있다. 식비는 한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아마 외식을 안 해서 돈을 적게 쓴 것 아닌가 싶다. 여기선 외식 한 번 하려면, 운전해서 30분 나가야 하기 때문에 귀찮아서라도 갈 수가 없다.
집은 좀 있다가 20년 할부로 사려고 생각 중이다. 월세를 20년 동안 내나, 20년 할부로 집을 사나, 그게 그거더라.
IT업계의 위상이 한국과는 많이 달라
시드니는 아니지만 이름만 들으면 알만 한 도시에서 사는 것 치고는 적게 드는 편인 듯 하다. 좀 의외이기도 한데, 그 나라 경제 상황은 어떤가? 특히 IT 경기는 어떤가?
호주는 이민자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 경기가 좋다. 한 번 살면 몇십 년 사는 편이다. 그래도 아직 아파트보다는 1층 짜리 집들이 많다. 전체 경기는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IT업계에 대해서 말하자면, 한국과는 좀 다른 편이다. 한국은 IT가 수출 아이템이다. 메이저 업종 중 하나로, 없어서는 안 되는 업종이다. 하지만 호주는 그냥 편하려고 만든 거다. 없어도 되는데 있으면 편하다라는 식이다. 따라서 이쪽이 메이저 업종이 아니다. 전체 사회가 보수적인 편이고, 컴플레인이 잘 없는 편이어서, 소프트웨어 산업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물론 없어지기까지야 하겠냐만은.
95% 이상 영주권자만 채용
회사 입사는 어떻게 했는가?
인터넷 구인 사이트 뒤져서 여기저기 지원했다. 입사하기 전에 인터뷰 보고, 프로그래밍 시험도 봤다. 피씨 하나 덜렁 주고는, 자신이 가진 라이브러리로 데이터 가져와서 화면에 뿌리라더라. 기존에 짜놓은 소스에 코드를 추가하는 테스트도 있었다.
호주는 거의 95% 이상이 영주권자만 채용한다. 스폰을 해줘서 채용하는 경우도 있긴 있지만, 아주 극소수다. 그리고 여기는 거의 대부분의 인력을 해드헌터를 통해서 뽑는데, 채용했을 경우 연봉의 20%를 그쪽에 줘야 한다. 그래서 사람을 신중하게 뽑는다.
이력서를 넣을 땐 일단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있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쪽 요구조건을 충족시켜줘야 거들떠라도 본다.
아 맞다, 호주는 먼저 비자를 획득하고 그 후에 취업을 하는 거였다. 요즘 미국에 취직한 사람들을 좀 만났더니 미국과 좀 헷갈렸다. 호주는 영주권을 먼저 따야 하는데, 그게 좀 어려울 것 같은데?
나는 기술비자로 영주권을 땄는데, 자세한 내용은 검색하면 알 수 있다. 정보 많다. 나이가 들수록 어려우니, 결심했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도하는 게 낫다.
참고로, 경력사항 같은 경우, 얘네들은 삼성, 엘지도 어느 나라 회사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훌륭한 대학 나오고, 좋은 회사 경력 있고 해봤자, 얘네들에겐 그냥 한국 대학이고, 한국 회사일 뿐이다. 이름 있는 곳을 다니지 않았다 해도 겁 먹을 필요 없다.
회사 분위기는 어떤가?
입사 하자마자 4시간 후에 바로 일을 주더라. 여기는 가르쳐서 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주니어들이 문제에 부딪히면 시니어에게 물어본다. 시니어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을 하는 건데, 그래서 연봉을 더 많이 받는다. 주니어들끼리는 묻거나 도와주거나 하기가 어렵다. 야근이 없어서 업무시간에 일을 다 해야 하니까 그렇다.
여기는 기본적으로 경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뽑지 않는다. 대학 갓 졸업한 애들은 무급 인턴으로 일 한다. 한국에선 대단한 일인 것처럼 말하지만, 여기선 아주 당연한 거다. 회사를 가려면 경력이 필요하니까.
매우 안정적인 고용… 거의 평생 직장이 가능
미국 쪽은 고용불안이 단점 중 하나라던데, 호주는 어떤가?
수습기간에 일을 잘 못하면 자르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회사 경영 사정이 심각하게 악화되거나 하지 않는 이상, 노동조합 때문에 막무가내로 그냥 자를 수는 없다. 한국보다 훨씬 자르기 어렵다. 페어 워크라고, 한국의 노동부 같은 정부 부처가 감시를 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두 사람이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한 사람은 17년 째 이 회사에서 일 하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19년 째 다니고 있었다. 건강 문제로 지금은 퇴사했지만, 70살 먹은 개발자도 있었다. 지금도 전화 안내는 손주가 있는 할머니가 하고 있다. 한 번 고용하면 잘 자르지도 않고, 고용되면 잘 나가지도 않는다. 정말 평생 고용이라는 개념 그대로다. 그래서 첫 번째 회사를 잘 구하면, 자기가 싫을 때까지 안 나가고 있을 수 있다.
그대신 1년마다 평가를 하긴 하는데, 연봉은 잘 안 올려준다. 연봉을 올리려면 딴 데로 옮기는 게 보통이다. 옮겨서 연봉을 만족하면 그걸로 쭉 가는 거다. 링크드인에 프로필을 올려놨더니, 호주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연락 오는 데가 많아졌다. 생각 있으면 이렇게 연결해서 기회를 잡아볼 수도 있겠다.
해외 취업 한 사람들은 다들 링크드인 얘기를 하긴 하던데, 한국에서는 그거 올려놓고 있어봤자 해외 업체들에게서 연락이 잘 안 온다고 하던데?
간혹 한국에 있는 사람에게도 연락이 오기도 하지만, 해당 국가에 가 있는 게 좋다. 그래야 면접 보기도 용이하고 그러니까.
일 하는 건 어떤가? 거기도 방법론 칼 같이 적용해서 일하고 그러나?
애자일(agile)을 쓰고 있다. 대체로 방법론을 써서 계획하고 일을 하는 편이다. 일을 잘게 쪼개서 회의하고 결과 보고하고 그런다. 하루에 한 번씩 짧은 회의를 하는데, 아침에 주어진 일은 8시간 안에 다 해야 한다. 거기서 중압감을 느끼기도 한다.
회의 때 돌아가면서 말을 하는데, 2~3분 남짓하는 그 발표시간 외에는 하루에 한 마디도 말을 안 할 때가 많다. 사람들 모두 대화 없이 일만 하는 분위기다. 업무시간에 2~3시간 정도 일을 보러 갈 때도 칼같이 휴가를 써야만 한다. 2~3시간 짜리 휴가 말이다.
동료애라는 게 별로 없다 보니, 점심도 다 알아서 먹는다. 나는 도시락 싸 와서 내 자리에서 혼자 먹는다. 이런 상황이라서 회사를 이끌어간다는 느낌이 없다. 소속감도 별로 없고, 고객도 본 적이 없다. 그냥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갑갑할 때가 있다. 게다가 여기는 ‘한 방’이 없다. 이 회사, 거의 20년 된 회사지만 상장을 안 한다. 거의 공무원 같은 느낌이다. 그냥 안정적으로 평안하게 먹고 사는 분위기다. 정말 재미없다. 한국 가고 싶다. 엉엉.
한국은 스카이 출신이어도 먹고 살기 힘들지만 호주는 중간 정도만 해도 살기 괜찮은 곳
지금 한국 돌아와도 아는 사람도 많고, 경력도 많으니 일자리 구하기 쉬울텐데, 왜 안 돌아오나?
마누라가 가기 싫단다. 그리고 애들 때문에 나도 힘들어도 여기 계속 있고 싶다. 내 자식들이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상위 1% 안에는 못 들 것 같다. 걔들 행복을 위해서 여기서 살고 싶다.
솔직히 한국에선 스카이(SKY) 출신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들다. 겁나게 잘 나도 먹고 살기 힘든 곳이 한국이다. 하지만 여기 호주는, 한국에서 중간정도 하는 사람들이 살기 괜찮다. 뭘 해도 잘 먹고 살 수 있다. 돈도 없고, 별로 똑똑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먹고 살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도 안 당하고, 결혼 안 하냐, 돈 얼마 모았냐, 집 안 사냐 이런 소리 안 들으며 살 수 있다.
사실 취직이 안 되면 한국 돌아가려 했다. 와보니 IT 직종으로 비자 따서는, IT쪽으로 취업하는 사람은 30~40% 정도 밖에 안 되더라. 나머지는 건축이나 사업 등 다른 일 하더라. 그건 싫고 해서 안 되면 돌아가야지 했는데, 돼 버렸으니 계속 살아야지 뭐.
뭔가 불쌍한 듯 하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다. 그래도 좋아 보인다. 해외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남길 말 있는가?
호주도 좋긴 하지만, 자신의 취향이나 성향에 따라서 미국이나 싱가폴, 홍콩 같은 다른 나라들도 기회가 있으니, 다른 쪽으로도 한 번 도전해보라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