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의 반미를 빙자한 삽질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이 글은 정말 아니다. 일단 20년 전 글을 가져와서 번역한 공은 가상하지만, 안타깝게도 번지수가 틀렸다.
미국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 존 롤즈의 글을 가져와 ‘정의’를 언급하며 비판한 것은 타당하지만, 타당한 만큼 공허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시민들의 무고한 죽음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책임을 온전히 미국에만 부과할 수는 없다.
미국 정부의 수차례 경고와 항복권유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 옥쇄” 운운하며 결사항전을 주장한 쪽은 대본영을 필두로 한 당시의 일본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죄책감을 느끼기에 앞서 누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또한, 이 글의 필자는 원자폭탄 투하가 의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았으며 인종주의의 발현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원자폭탄 투하는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받지 ‘못한’ 것이다.
당시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1945년 기준으로 20억 달러(2012년 기준 255억2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되었고, 이는 당연히 비밀이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사후 대통령을 승계한 해리 S. 트루먼 역시 부통령이라는 직책에도 불구하고 이 계획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대통령직을 승계한 이후에야 이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종전을 앞두고 이 프로젝트에서 무언가 명확한 성과를 거두었음을 증명하지 않을 경우 이는 20억 달러라는 막대한 돈의 사용처에 대해 의회와 여론에서 공격을 받을 여지가 충분했다. 이에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가 전격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함이 당연하다.
만약 태평양 전선이 일찍 종결되고 유럽 전선이 장기화되었을 경우 미국은 유럽 전선에도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거다. 위력 자체를 그냥 ‘단순히 좀 센 폭탄’ 정도로 밖에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종주의 운운하는 글쓴이의 어리석음과 짧은 식견이 우스울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원자폭탄 투하가 정치적, 도덕적, 수단적 선(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폭탄 투하가 통하지 않을 경우 미군이 계획한 1,074,600 명이라는, 문자 그대로 ‘백만대군’을 원자폭탄과 화학탄을 포함한 전면적 선행 폭격과 함께 일본 열도에 상륙시키는 몰락 작전(Operation Downfall)이 펼쳐지는 것을 막은 것만으로도 이는 변호될 충분한 가치가 있다. 만약 이 작전이 실제로 펼쳐졌을 경우 사상자 숫자는 히로시마 및 나가사키와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마이클 샌델이 그의 <정의>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악과 차악이 있다면 그래도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고, 이런 면에서 생각한다면 당시 미국의 전시 지도부는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선한 척하며 군자연하는 논평하기는 쉽다. 그렇지만 당시의 그 절박한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느꼈을 고뇌와 투쟁까지 무시하면서 폄하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하물며 스틸웰을 위시한 미국의 지원으로 승전국 자격을 갖춘 중화인민공화국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결정은 도덕적 선의 추구가 아니다.
원문 : 정재웅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