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성 장애인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
지난 3월 문을 연 오티스타(AUTISTAR)의 오프라인 매장을 두고 오티스타의 대표인 이소현(56)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가 한 말이다.
한때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패션의 거리로 유명했던 이화여자대학교 정문 앞 거리의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이화 스타트업 52번가’라는 세움 간판을 만나게 된다. 과거 패션의 거리로서의 명성을 되찾고, 청년들의 창업을 장려하기 위해 이화여자대학교와 서대문구가 함께 조성한 이 거리를 거닐다 보면 알록달록한 그림이 그려진 머그잔과 휴대전화 케이스, 텀블러 등이 진열된 작은 가게를 만나게 된다. 바로 ‘오티스타’다.
아기자기한 그림과 멋스러운 색감에 이끌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더 다양한 디자인을 볼 수 있다. 오티스타의 제품이 특별한 것은 모두 자폐성 장애인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그림으로 만든 제품이기 때문이다.
자폐성 장애인의 재활을 위해 탄생한 오티스타
9500명. 복지부가 발표한 2014년 기준 국내 자폐성 장애인 수다. 복지부는 국내 자폐성 장애인이 매년 6.6%씩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성인이 된 자폐성 장애인이 취업할 곳을 찾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어렵다. 이소현 교수는 “자폐성 장애인도 재능 발휘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사회적기업 오티스타는 자폐인의 재능 재활을 돕기 위해 2012년 5월 탄생했다.
시작은 연구를 통해 자폐성 장애 학생의 사회·경제활동 참여를 위한 사회공헌모델을 개발해주는 거였다. 그러면 기업의 자폐성 장애인의 고용이 확대될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논문은 논문일 뿐이었다.
“장애인의 자립 가능성을 논문으로 아무리 입증해도 그것은 종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회사를 설립해서 자폐성 장애인을 정직원으로 채용해서 함께 상품을 제작하게 됐습니다.”
이 교수가 직접 지은 ‘오티스타’라는 사명도 자폐인의 특별한 재능과 재활을 의미하는 영어 ‘Autism Special Talents And Rehabilitation’을 줄인 말이다.
이 교수는 “회사를 설립하려면 단돈 500만 원만 있으면 된다”면서 회사 설립은 참 쉽지만, 한 달 한 달 이끌어 가는 일은 어렵고 고되다고 했다. “자폐성 장애인 학생의 디자인을 제품화해 판매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하고 보니 현실은 그야말로 비즈니스였습니다.
그때까지 교육자로서의 길을 걸어온 제게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는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 그리고 직원들이 눈에 밟혀 더 힘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힘들게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앞으로 나아가자 오티스타 제품을 알아주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 교수는 자폐성 장애인 디자이너들의 그림에 담긴 특별함을 알고 공유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일이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한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저는 자폐성 장애인들이 예쁜 그림을 그려 멋진 상품이 세상에 나온 것 자체가 사회에 기여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들은 그렇게 탄생한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만족감이나 기쁨을 얻게 되는 거죠.”
이 교수가 말하는 자폐성 장애인 디자이너 그림의 특징은 순수함과 밝음이다. “사실 자폐성 장애인들은 사회성이 모자란 점을 문제로 지적받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이들이 순수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순수성이 그림에 고스란히 드러나죠. 그래서 더 그들의 디자인은 따뜻하고 밝아요.”
제품이 소비자에게 인정받으면서 자폐성 장애인을 채용하고 싶다는 문의도 들어왔다. 그 결과 현재 3명의 학생이 기업에 채용돼 일하고 있다. 한 명은 대기업의 사회공헌팀에 취업해 오티스타에 파견된 상태며, 두 명은 디자인회사에 디자이너로 채용됐다.
캄보디아 어린이에게 배달된 특별한 티셔츠… 두 번 나눔 실현
올해 설립 4년째를 맞이한 오티스타의 가장 큰 고민은 안정적인 매출을 창출하는 일이다. 2013년 예비사회적기업을 거쳐 지난해 사회적기업이 되어 인건비를 지원받고 있지만, 지원이 끊길 때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생산하기 위해서도 수익으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매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오티스타는 2013년부터 ‘두 번 나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자폐성 장애인을 돕기 위해 오티스타에 기부하고자 하는 분들이 있지만, 저희는 주식회사가 기부금 영수증 발행이 어려워 항상 고민이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번 나눔을 생각하게 됐죠. 후원금으로 저희 제품을 구매해 후원인이 지정한 기관에 다시 기부하는 것입니다.” 후원인은 한 번의 기부로 두 번의 나눔을 실현하게 되는 셈이다. 이 두 번 나눔이 더 특별한 이유는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자폐성 장애인이 디자인한 제품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기 때문이다.
2013년 여름에는 멀리 인도차이나반도 서남부에 있는 캄보디아 오지의 작은 마을 어린이들에게 티셔츠를 배달했다. 캄보디아 어린이들이 받은 티셔츠의 가슴 부분에는 자폐성 장애인 디자이너가 캄보디아 어린이들을 위해 그린 ‘믿음’, ‘소망’, ‘사랑’ 펭귄 삼 형제가 프린팅돼 있다.
이듬해 당시 캄보디아에서 자원봉사했던 분이 오티스타를 찾아와 이때의 감동을 직접 전했다고 한다. 당시 선물을 받은 어린이들은 옷을 입어보자마자 다시 벗어버렸다. 난생처음 선물 받은 새 옷이 헌 옷이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 번은 보육원에 기부하게 됐다. 오티스타는 보육원 아이들에게 갖고 싶은 물건을 직접 오티스타 홈페이지에서 고르도록 했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고른 제품은 노트나 머그잔이 아닌 텀블러였다. 기부 후 보육원에서 편지가 왔다고 한다. ‘매번 똑같은 색, 똑같은 무늬의 신발이나 티셔츠 등을 받다가 아이들이 자기만의 물건을 선물 받게 돼 너무 좋아했다’며, ‘이렇게 존중받은 느낌은 처음’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교수는 이 경험을 통해 받는 이가 만족하는 기부에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기부라고 하면 주는 사람의 만족을 먼저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받는 사람이 더 행복한 게 기부가 아닌가 합니다. 오티스타의 제품을 선물 받고 만족해하며 기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보람을 느껴요.”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달린다
오티스타는 일 년에 두 번,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자폐성 장애인 학생을 위한 ‘디자인 스쿨’을 진행한다. 디자인 스쿨은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가르치기보다는 디자이너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 자폐성 장애인은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만,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런 성향을 이겨내고 한 회사의 디자이너로서 회사의 요구를 수용하며 일할 수 있는지를 먼저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란 직업에 맞는지, 상품이 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게 디자인 스쿨의 주요 과정이다.
취업의 기회가 오면 일대일 매칭 교육을 하기도 한다. 취업할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직군에 맞는 학생이 누구인지 선정하고, 그 일에 맞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취업 후에도 자폐성 장애인 학생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한다.
이 교수는 더 많은 자폐성 장애인 학생의 취업을 위해서는 기업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니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폐도 이해가 필요합니다.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져 사회생활하기 어렵다는 것은 선입견입니다. 그들에게 배우고 변화라고 말하지 말고, 자폐 행동을 할 때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려 한다면 함께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티스타의 디자인 스쿨은 이화여자대학교 재학생이 아니어도 입학이 가능하다. 이 교수는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서 모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인원이 한정돼 있어 그때마다 기준에 따라 선정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정도로 좋아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림을 잘 그려도 그릴 때 행복하지 않은 학생이 있어요. 행복하지 않은 일을 억지로 시키는 일은 정말 어렵죠. 그래서 그림을 정말 좋아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디자인 스쿨과정을 통해 배출된 교육은 50여 명이며, 이 중 11명이 오티스타에 디자이너로 채용돼 일하고 있다.
이 교수는 궁극적으로 오티스타가 자폐성 장애인들을 지원하는 네트워킹 총괄센터로서 커 나가길 꿈꾼다. 그 길로 가는 첫걸음이 자폐성 장애인들의 시각능력을 활용한 디자이너였던 것이다.
이 세상의 시작은 차별 없이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경쟁을 시작하면서 서로 상처받고 부서지면서 서로를 나누고 구분 짓게 된 거라고 봅니다. 저는 구별 없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오티스타가 기여하길 바랍니다.
원문: 이로운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