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VR, 당연히 야동은 되겠지
VR시장을 이야기하다 보면 늘 농담처럼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성인콘텐츠 시장은 쉽지 않겠는가?’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최근 일본의 성인콘텐츠 VR에 대한 행사가 성황리에 진행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소식을 접한 많은 한국인들의 “성진국” 혹은 “변태국가” 라는 비하적인 발언들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다.
2. “역시 성진국…”
그러나, 나는 이러한 반응이 불편하다. ‘성인콘텐츠’는 마치 손만 뻗으면 딸 수 있는 열매인데 우리는 고고해서 그것을 따먹지 않는다는 인상과, 일본인들을 마치 원초적인 변태들로 모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일본의 성인콘텐츠들을 제법 접했다. 그것도 비교적 어렸을 때, 최근 줄줄이 망한 Elf나, Illusion 같은 회사의 콘텐츠를 안다. 그리고, 일본 아마츄어들이 제작했던 동인 게임이나 동인지들도 접한 적이 있다.
일본을 비하할 때 교복을 밝힌다고 뭐라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오히려 한국 아이돌들이 교복을 연상하게 하는 옷을 입고 나와서 섹시한 춤을 추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한국 역시 일본과 다를 바 없이 성의 상품화는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높은 성인콘텐츠 소비율은 두 말 하면 잔소리고,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아도 성 시장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걸 누구나 안다. 심지어는 한 번도 안 가본 나 같은 이도 어디 있는지는 다 안다(…)
3. 제대로 보자
성의 상품화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성의 상품화는 비단 여성의 성만 포장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섹슈얼 코드들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가공되어 판매되고 있다.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것에 섹슈얼 코드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들어간다. 섹슈얼 코드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성은 시각적인 정보에 약하다’는 내용이 학교의 성교육 자료에 쓰일 만큼 한국은 성에 대한 문화와 표현에 대해 무지하고 이해도가 낮은 것이 내가 보기에는 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성인콘텐츠에 대한 기대는 지나치게 높고,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비하되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성인콘텐츠도 콘텐츠다. 다양한 코드가 존재하며, 변화하며 소비된다. 무조건적인 강한 자극이 효과적일 거라는 믿음은 게임을 중독 물질로 치부하는 여가부 수준의 생각이다. 실제 콘텐츠 제작자들이라면 무조건적인 자극이 효과적이지 않음을 아주 잘 알고 있다.
4. 일본이 부러운 이유: 금기를 해제하고 양성화함으로써 나오는 문화적 다양성
그나마 일본의 성인콘텐츠 시장이 내가 부러운 이유는 이에 대한 담론이 두텁게 생산될 만큼 굉장히 다양한 코드와 소비 계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학 시절 플래시 동인지로 접했던 어떤 만화는 넘길 때마다 가볍게 풍경의 소리가 들어 있었다. 수영장의 물의 찰박거리는 소리, 바람소리… 지금 네이버 웹툰의 효과툰을 보면 느낄 수 있는 바로 그 효과가 내가 대학시절 일본의 동인지에서는 사용되고 있었다. 물론 h신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 연출이 얼마나 신선하던지 내게는 충격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장점은 그러한 성인동인지 시장이 유료마켓이라는 점이다. 이는 창작자들의 자유로운 창작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레진코믹스가 성인콘텐츠 유료시장을 열어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사실 약간 위태위태한 콘텐츠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표현의 범위가 성인물로서 야한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넓어졌다.
중동의 어느나라에서는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섹슈얼 코드가 될 수 있고, 열대의 어느나라에서는 가슴을 드러내는 것 정도는 섹슈얼 코드가 아닐 수 있다. 사실 자극의 정도와 코드는 그것을 소비하는 집단의 문화와 연출에 의해 결정된다. 표현상 하나도 안 야해도 연출로 야하게 보일수 있고, 표현상 야한데 연출로 인해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여성들이 남자들이 보는 야한 콘텐츠에 불쾌감을 일으키지만, 사실 여성향 콘텐츠도 사실 남성들이 보면 불쾌할 수도 있다. 둘 다 없애고 혐오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적합한 데서 적합한 콘텐츠가 소비되는 것이며, 자신이 향유하는 콘텐츠가 다른 이들에게는 불쾌한 콘텐츠일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하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의 성인콘텐츠에 대해 우리가 비하할 필요도 없으며, 생각만큼 성인콘텐츠도 콘텐츠인 만큼 만만한 시장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은 성인콘텐츠의 저작권을 무시하면서 음성적으로 소비하기 때문에 콘텐츠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제대로 된 성인콘텐츠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본다.
5. 만만치 않은 성인콘텐츠, VR이라고 다르지 않다
VR에서도 내 의견은 마찬가지다. 성인콘텐츠에서 중요한 것은 몰입감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 몰입감을 불러 일으키는 요소는 2D냐 3D냐가 아니다. 그것이 중요하다면 사람은 만화나 그래픽에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
만화나 그래픽이 가진 강점은 상상의 요소이다. 몰입감은 현실성이 아니라 상상에서 온다. 상상은 스토리나 연출을 통해 극대화되는 것이지, 여배우의 잡티까지 보이는 UHD 영상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VR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VR 성인콘텐츠는 오히려 디스플레이보다 스토리를 만드는 데 더 제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VR게임이 실험 중인 것처럼, VR의 성인콘텐츠도 아직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
물론, 호기심에서 유리한 VR 성인콘텐츠는 유입 효과 면에서는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VR을 구원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포르노를 실감나게 보기 위해 100만 원짜리 기계를 구매할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호기심이 유인수단으로는 가능하겠지만, 그것이 VR을 구원할지는 미지수란 얘기다. 성적 호기심 이상으로 지속적으로 VR을 요청할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6. 인간을 위로하는 기술로서의 VR
가상의 성은 사실 외로운 이들과의 호흡이고, VR은 가상 공간이 가지는 가치다. 조금만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에로틱한 성이 아닌 플라토닉한 사랑도 VR에는 적합하며, 이러한 요소들을 VR의 게임과 많은 콘텐츠들은 풀어내려 할 것이다. 많은 외로운 사람들에게 VR 기술이 세상과의 연결점이 되어 주고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 번쯤 보면 좋을 만한 애니 하나 놓고 간다.
어쩐 일인지 유투브에 전화가 올라와 있음… (야한 거 아닙니다.)
원문: 숲속얘기의 조용한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