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롯데월드타워를 만들고 있는 롯데물산 측에서 작년 광복절을 맞아 롯데월드타워에 가로 36m, 세로 24m짜리 초대형 태극기를 붙이면서 열었던 이벤트의 한 장면입니다. 태극기 바로 아래에는 서울시 광복 70주년 기념 슬로건인 ‘나의 광복’이라는 문구를 새겼는데 이 역시 가로 42m, 세로 45m의 초대형입니다.
후에 롯데는 초대형 태극기는 그대로 두고 엠블럼의 문구만 아래와 같이 바꿔 달았습니다.
나의 광복(15년 8월) → 통일로 내일로(10월) → 도약! 대한민국(16년 1월) → 대한민국 만세(16년 3월)
대한민국을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했다
당시 트위터를 휩쓸었던, 이 사진에 대한 촌평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보여주기식 문화’도 포함된다고 보는데, 오늘은 이 중 ‘애국심 마케팅’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롯데가 태극기를 사랑(?)하는 이유
롯데가 이런 퍼포먼스를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여전히 롯데는 ‘일본 기업’이라는 인식이 대중들에게 강하고 그에 따른 비판여론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기업 이미지 타격은 곧 매출하락으로 이어집니다.
애초에 초대형 태극기를 걸었던 시기는 ‘일본기업’이라는 비판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강했을 때입니다. 롯데는 이런 비판여론을 잠재우고자 건물에다가 태극기를 부착하며 자신들은 애국심이 투철한 한국기업임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가 일본 법인이라는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롯데의 태극기 사랑에 닥친 수난
어쨌든 말도 안되는 애국심 퍼포먼스를 벌였던 롯데는 난감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한 쪽에서는 ‘초대형 태극기를 내리라’고 하고, 또 한 쪽에서는 ‘그대로 두라’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롯데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요? 각 입장을 주로 견지하고 있는 단체와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당장 내려라!: “민간기업이 영리목적과 인지도 향상 등의 목적으로 국기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국기 훈령 18조)”(위례시민연대)
2. 그대로 둬라!: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그대로 두는게 낫다”(시민단체 “구국채널” 등),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태극기를 6월까지는 유지해 달라”(국가보훈처)
태극기가 곧 나라사랑인가
롯데물산 측은 “나라사랑 캠페인이라는 순수한 취지로 시작한 일이 의도하지 않게 태극기 철거 논란으로 벌어져 난감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언제부터 롯데가 이 나라를 위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걸까요? 저는 태극기를 가지고 이런 논란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이 나라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놔두고 태극기라고 하는 ‘상징성’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또 사랑하는 마음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태극기 그 자체가 애국심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태극기를 달지 않더라도, 마음 속에 애국심이 투철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나라는 튼튼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어떤가요?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게 하는 나라인가요?
있던 애국심도 사라진다
군 복무를 하다가 다리가 절단이 되었는데 치료비도 내어주지 않는 나라. 국가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직접 나서서 처리를 했는데 벌을 주는 나라. 내 아이가 죽었는데 피해자 가족을 빨갱이로 몰고 가는 나라. 졸업과 취업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끊긴 나라. 모든 책임은 개인의 노력으로 돌려버리는 나라. 강자를 위해 법과 정치가 존재하는 나라. 피해자의 아픔을 덜어주지 못하는 나라.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져 있지 않은 나라. 노인자살률 및 노인빈곤율이 세계 최고인 나라.
이런 나라에서 무슨 애국심을 바라나요? 정부여당의 한 최고위원이 한 말이 떠오릅니다. 씻을 수 없는 아픔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이에게 나라 경제가 어려우니 나라를 생각해서 자중해달라던… 국가와 개인은 별개의 존재가 아닙니다. 이 나라의 기득권자들은 국가와 개인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데, 개인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국가입니다. 국가가 개인보다 우선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구요. 국가, 국가거리는 사람들의 실상은 결국 자기들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의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롯데보다 국가보훈처가 더 창피하다
애국심은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태극기라고 하는 상징물을 통해서 보여져야만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롯데가 대형태극기를 건물에다가 부착한 것은 철저히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라고 만든 국기가 아닐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국가의 애국심을 위해서 계속 부착해달라고 요구하는 일부 단체와 국가보훈처가 더 웃깁니다. 그 대형태극기를 단다고 없던 애국심이 생기나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에 대해 그에 맞는 예우를 하며, ‘그래도 국가가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느끼게 해주면 애국심은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이런 기본적인 진리를 두고 그저 태극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한국.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원문: 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