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조금이나마 한 사람 가운데, 그래도 스스로를 무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처럼 조용하거나 자기 주장에 여지를 두기 마련인데… 근래에 들어 이런 글은 실로 오랜만에 본다.
덕분에 나도 용기를 얻어, 사회학을 공부한 남성으로서 박가분 씨(이하 ‘박씨’) 글의 타당성을 검증해 본다. 이 글이 한겨레 김지은 기자의 <이유있는 언니들의 분노>를 비판하고 있으므로, 두 글을 읽고 논의를 전개하겠다.
1.
우선, 박씨 글의 핵심적인 주장은 두 가지다.
첫째, 성범죄 피해자는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지만, 강력범죄 피해자는 남성이 많기 때문에, 강력범죄 일반의 성비 불균형을 근거로 여성을 표적으로 한 범죄 혹은 젠더사이드가 횡행하고 있다는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둘째, 대안적인 설명으로 9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장기추세를 살펴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고 주장하면서, 강력범죄 중 흉악범죄를 제외한 ‘폭력범죄’의 항목에서 여성의 증가율이 훨씬 높기 때문에 ‘더 넓은 범위’에서 여성의 범죄 취약성을 이야기해 볼 수 있다고 한다.
2.
첫번째 문제에 대해. 단어를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은 논의의 공전을 피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일단 확인하고 넘어갈 것은 여성가족부의 자료가 강력범죄 가운데 강력범죄(흉악)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경찰청 통계자료는 강력범죄를 강력범죄(흉악)과 강력범죄(폭력)으로 구분해서 보고 있다.
박씨는, “다시 한 번 복명복창하자. (글씨 커짐) 여성가족부 기준의 통계가 말하는 것은 강력범죄 일반의 성비불균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글씨 더 커짐) 성범죄의 성비불균형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강조에 강조를 더하면서 주장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여성가족부 기준의 통계가 말하는 것은 강력범죄 일반의 성비불균형이 ‘당연히’ 아니다. 여성가족부는 강력범죄(흉악)의 통계를 말하고 있다. (괄호를 계속 쓰는게 피곤한 일이니, 강력범죄(흉악)을 ‘흉악범죄’로, 강력범죄(폭력)을 ‘폭력범죄’로 말하기로 한다.)
이후에도 박씨는 “따라서 ‘강력범죄’의 범위에 어디까지(폭행, 상해 등등)를 포함시킬 것이냐는 쓰잘데기 없고 소모적인 논쟁”을 중지하자고 하는데, 역시나 단어를 잘못 선택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매우 의도적인 것이라고 보이는데, 아마도 흉악범죄와 폭력범죄를 구분하는 이유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김지은 기자의 기사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서 “살인, 강도, 강간, 방화가 포함된 흉악범죄는 일반 폭행사건에 비해 체감되는 두려움과 사회적 파급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인지 박씨도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어서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강력범죄의 범위를 어떻게 잡든 그것은 아무런 반론도 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젠장, 여기서도 강력범죄가 아니라 흉악범죄라고 해야 한다고!)
물론, 흉악범죄 피해자의 성비불균형에서 핵심이 성범죄 피해자의 성비불균형이라는 점은 맞는 말이다. 애초에 여성가족부가 성범죄를 대상으로 얘기를 했더라면 아무런 논쟁거리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핵심은, 그 범주를 성범죄로 잡든 성범죄를 포함한 흉악범죄로 잡든 간에, ‘두려움과 사회적 파급력’이 큰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두려움은 여성들에게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점이다.
박씨는 아마도 내가 핵심이 이렇다고 주장하면, 핵심은 두려움이 아니라 실제 범죄의 증가 문제, 즉 통계치들이 “여성을 표적으로 한 범죄 혹은 젠더사이드가 횡행하고 있다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주장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횡행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이곳저곳에서 마구 벌어지거나 나타나다”라고 하는데, 내가 언론 기사를 접한 바로 주된 논지는 이번 범죄가 여성혐오 범죄라는 데 집중되었지, 여성혐오 범죄의 양적인 증가를 강하게 주장한 곳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박씨는 앞의 인용문 앞에 “‘여성으로서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든지, ‘살女주세요’라는 등의 구호가 암시하는 것처럼(필자 강조)“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확실히 그런 주장은 ‘암시’로서만 존재한다. 역설적으로, 박씨는 여성들의 불안으로부터 그런 ‘암시’를 받았고(혹은 징후를 읽어냈고), 그런 의미에서 여성들에게 불안을 일으키는 흉악범죄라는 범주는 오히려 핵심을 포착한 범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박씨에게 이 말을 돌려주고 싶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이념적으로 틀린 주장이라 해도 적확하지 않은 수단으로 뒷받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
덧붙여, 성범죄의 증가와 여성혐오의 만연 사이의 상관관계나, 군대 내 남성에 대한 폭력 가운데 여성혐오 발언을 동반한 폭력의 비중 등을 탐구해 볼만하겠다.
4.
두 번째 주장, 박씨가 대안으로 생각하는 장기적 추세에 대해. 박씨가 2013년 여성가족부의 자료를 보고 글을 썼는지 의심가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2013년 여성가족부의 통계 자료가 1995년부터 시작하는데, 박씨 역시 1995년부터 시작하면서 장기적 추세로 보자고 한다. 김지은 기자의 자료 역시 1995년부터 시작한다. 물론 두 자료는 매년의 통계가 아니라 1995년에서 2000년으로 도약하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통계의 장기적인 추세를 보는 것이 유용하다”는 주장은 낯뜨겁다. 장기적 추세를 선호하는 사회학자로서 100여편의 논문과 책을 본 것 같은데, 가장 부끄러운 장기적 추세를 본 듯하다. 결국, 여기서도 핵심은 장기적 추세가 아니라, 흉악범죄가 아니라 다른걸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폭력범죄의 추세를 보자고 하면서, 여성에 대한 폭력범죄의 숫자가 남성에 대한 폭력범죄에 비해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주장한다. 이 대단한 발견은 얼마만큼 신빙성이 있는가. 통계수치는 각 숫자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아래의 통계는 국가통계포털에서 검색한 경찰청의 범죄통계분석 자료인데, 사건의 성격에 따라 분류된 폭력범죄 피해자의 수치다. 2000년대 이후 남성 피해자의 수는 증가 추세가 있다고 보이는데, 여성 피해자의 숫자는 뚜렷한 추세가 없다. 어떤 통계자료를 사용했는가의 문제다.
다음 표에서 보이는 것처럼 성범죄를 핵심으로 하는 흉악범죄 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추세다.
다음 표는 피해자들이 특히 신체상의 피해를 당한 경우로, 상해를 입은 경우와 사망한 경우다. 위와 같은 자료인데 2000년대 이후 감소세가 뚜렷하다.
아래 표는 흉악범죄 가운데 수치가 적은 방화와 살인을 빼고 강도 및 강간·강제추행 사건에서 상해를 입은 경우다. 1990년대의 증가세와 2000년대의 감소세가 대비되고 있다.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자뻑이 심한 분은 이걸로 무언가 대단한 걸 발견했다고 할지 모르나, 이런 단순한 통계수치를 통해서 사회적 추세를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국사회는 더 안전해졌고, 폭력은 줄어들었는가? 폭력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가설이 없으면 단지 숫자의 변화일 뿐이다.
다양한 통계자료를 교차검증해야하고 그 통계자료가 얼마나 신뢰할만한 것인지 평가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예컨대, 강간·강제추행에서 상해를 당하는 여성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흉악범죄가 급증하는 현상은 최근의 성범죄가 신체적 억압을 동반한 폭력적 행위보다 여성을 대상으로 보다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으로 벌어지는 일종의 문화현상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할 여지를 준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여성혐오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진지하게 탐구해 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단지 해석의 여지를 줄 뿐이고, 보다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와 사법당국 등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기껏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 자료를 보면서 장기적인 추세 분석을 하니 어쩌니 하는건 정말 민망한 일이다.
특히 장기적인 추세 분석을 하면서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데이터의 질적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최근 데이터만 가지고 강력범죄의 피해자 성비를 2:8이라고 말하는 것은 장기적인 추세로 보았을 때에는 거의 무의미한 주장”이라고 말하는건 정말 무의미한 주장이다. 데이터의 질적 변화가 있었다면, 장기적인 추세를 이야기할 때 최소한 현재의 변화된 범주를 역산해 보았을 때 과거의 현실이 어땠을지 추산이라도 해보아야 한다.
5.
결론은 이거다. ‘논점을 한정시켜서 토론을 해본 지적훈련이 덜 된’ 박씨와 같은 분들이 맥락적 이해마저 거부하게 되면, 그것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내뱉는 말과 자료들의 잔치가 될 뿐이다. ‘통계에 대한 기초적인 교양’의 습득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