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가는 ‘기업식 구조조정’을 두고 갈등이 한창이다.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학생, 동문과 이를 강행하려는 학교측이 충돌하고 있다 (보다 자세한 사례는 글쓴이 블로그 참조). 이런 기업식 구조조정은 단기적인 지표 상승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이러한 구조조정이 고등교육의 전반적인 질을 하락시킬 우려가 있다.
기업식 구조조정이란 무엇인가
기업식 구조조정이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취업을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대학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순수학문이나 예술 계열 학과에 대한 지원을 축소거나 학과 단위를 통폐합하고, 기업에 취직을 하기 유리하도록 학과 구조를 재편한다.
대학도 ‘스펙’으로 평가받는 시대, 무엇이 원인인가
이러한 경향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사회 분위기도 신자유주의 논리에 의해 무한경쟁을 추구하게 되었고, 청년층의 취업난으로 인해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 따위가 대학사회에서 중요한 지표로 자리잡게 되면서 이러한 경향이 조성되었다.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대학을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는 시스템이 활성화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대학들이 이러한 지표를 높이기 위해 학사구조를 바꾸어 온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학생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 게 된 것도 또다른 원인이다. 자녀 교육비 부담, 결혼에 대한 부담, 자녀 양육관의 변화 등으로 인해 출산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학들이 단지 ‘살아남기 위해’ 정원을 축소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될 상황에 처하기도 하였다.
성균관대학교나 중앙대학교의 경우는 또 다른 원인이 있다. 소속이 일반 교육재단에서 대기업 소유의 재단으로 변경된 것이다. 이들 대학은 경영/경제, 공학 계열 학과에 투자를 확대하면서 그 순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켰다. 그러자 많은 대학들이 이 대학들의 방식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대학의 기업식 구조조정을 위한 환경이 완벽하게 조성된 것이다.
지난 2010년, 중앙대학교가 민속학과를 폐과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후 많은 대학에서도 중앙대와 비슷한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그리하여 순수학과가 폐과되거나 유사학과와 통합되는 상황 등이 발생했다.
교육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대학의 이러한 기업식 구조조정이 벌어지기 시작했을 당시, 교육당국은 ‘대학의 자율성’을 이유로 특별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1년 등록금 문제가 정국의 큰 이슈로 부각되자, 당국은 ‘부실대학 퇴출’의 명목 아래 기업식 구조조정을 부추기는 정책들을 연이어 발표하기에 이른다.
2011년부터 시작된 ‘재정지원 제한 대학’의 선정이 그 중 하나이다. 교육당국은 이 정책을 사학재단의 전횡이나 비리에 대한 제재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보다는 취업률이나 학생충원율에 초점을 맞추어 사용함으로써 대학의 기업식 구조조정을 부추기고 있다.
대학도 ‘구조조정’되는 시대, 무엇이 문제인가
기업식 구조조정은 우선 그 전개 과정에서부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구조조정의 당사자인 학생과 교수들의 의견수렴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형식적인 절차만 밟고 구조조정안을 확정하여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심지어 일부 대학의 경우에는 구조조정 반대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징계를 내리는 매우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학문 연구보다는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순수학문이나 예술 및 체육 계열 학과가 없어지면서 그 지역의 인문, 사회,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환경이 악화되고 문화 예술 사업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악영향이 실용학문에도 미치게 될 수 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4년제 대학들, 특히 지방 사립대의 경우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서 2/3년제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는 학과들을 4년제 학부로 설치하는 경우가 있다. 2/3년제 대학들의 상황이 악화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또한 이에 소모된 비용이 학생 및 학부모들에게 교육비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어 비단 고등교육의 영역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를 낳을 소지가 크다.
정부가 나서서 관리해야
대학의 존립 목적은 취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헤아릴 줄 아는 교육당국이라면 응당 이러한 기업식 구조조정을 억제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수렴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대학측이 구조조정을 얼마나 민주적으로 진행하고 있는지 감시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구조조정과 관련한 심사도 보다 강화해야 한다. 순수학문이나 예술, 체육 계열 학과들이 이러한 구조조정으로 인해 받는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특히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재정지원제한 대학선정(부실대학선정)’의 기준의 개선이 시급하다.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보다는 사학재단의 비리와 부정, 전횡을 감시하는 방향으로 기준을 개선하는 것이 보다 실직적인 대학 교육 개선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