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통해 소개한 것처럼 안타를 맞는다고 투수를 탓해서는 안 된다. 얼핏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잘 따져보면 맞혀 잡는 투수 같은 건 없다. 게다가 선발 투수들 평균자책에는 불운과 행운이 뒤섞여 있다. 그래서 야구 통계학자들이 주목하는 기록이 ‘Three True Outcomes’라 불리는 삼진, 볼넷, 홈런이다. 투수가 홈플레이트에서 오로지 타자와 싸워 만든 기록은 이 세 가지뿐이다. 이를 토대로 DIPS가 세상에 나왔고, 계산법을 단순하게 만들어 FIP도 나왔다. 요컨대 이 세 기록이야 말로 투수 능력을 판가름하는 척도라는 말이다.
류현진의 놀라운 4월 : 9이닝 평균 삼진 9.7개, 볼넷 2.3개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26·LA 다저스)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첫 시즌을 소화하면서 4월까지 9이닝 평균 △삼진 9.7개 △볼넷 2.3개 △피홈런 0.9개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레퍼런스닷컴에 따르면 1916년 이후 지난해까지 96년 동안 4월(3월 포함)에 선발로 5게임 이상 던져 △삼진 9.5개 이상 △볼넷 2.5개 이하 △피홈런 1개 이하를 기록한 건 28번뿐이다. 3년에 1명도 나오지 않는 기록이었다는 뜻이다.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7번이나 이름을 올렸지만 통산 303승을 거둔 랜디 존슨도 두 번밖에 이름을 올리지 못할 정도로 힘든 기록.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한 시대를 풍미한 에이스다. 이들 중 그해 올스타로 뽑힌 건 22명, 사이영상 수상자는 5명이다. 류현진처럼 데뷔 시즌에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없다.
이들은 6134와 3분의 2이닝을 던져 1924점을 내줬다. 219이닝을 던져 평균 자책 2.82를 기록한 셈. 어쩌면 류현진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도 더 대단한 투수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기대를 류현진은 배신하지 않았다.
류현진의 미쳐 날뛰는 5월 : 2.38의 월 방어율, 이닝당 0.5개의 피홈런
류현진은 LA 에인절스를 상대로 데뷔 첫 완봉승을 거두며 5월 등판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겉으로 드러난 성적은 4, 5월 모두 3승 1패. 월간 평균 자책은 4월 3.35에서 5월 2.38로 내려왔다.
투수 기록에는 ‘야수의 도움’이 상당히 많이 끼어 있다. 평범한 땅볼 타구를 야수가 잡지 못했을 때도 안타로 기록될 때가 있는 반면, 잘 맞은 라인드라이브 타구도 야수 도움을 받으면 그저 범타로 처리되기도 한다. 그래서 야구 통계학자들은 ‘세 가지 진짜 기록(TTO·Three True Outcomes)’로 투수 역량을 평가한다. 세 가지 진짜 기록은 삼진, 볼넷 그리고 피홈런이다. 결과가 나오는 과정에서 공을 받는 포수를 빼면 어떤 야수도 개입하지 않는 플레이들이다.
류현진은 4월에 9이닝 당 삼진 11개를 잡는 ‘파워 피처’였다. 그런데 5월에는 5.6개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신 타자가 때린 페어 타구를 야수들이 범타로 처리해준 비율(DER·Defense Efficiency Ratio)은 68.5%에서 76.2%로 좋아졌다. 자기가 아웃을 빼앗아낸 비율은 줄고 야수 도움을 받은 비율이 늘어난 것이다. 그래서 ‘TTO를 바탕으로 계산한 평균 자책(FIP·Fielding Independent Pitching)’은 4월 2.80에서 5월 3.65로 나빠졌다. 이는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FIP는 투수의 향후 성적을 예측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삼진을 못 잡으니 타자들이 공을 때려 페어지역으로 보내는 일이 늘어난 게 당연한 일. 4월에는 류현진이 던진 공 중 13.2%만 페어 지역으로 날아가는 타구가 됐지만 5월에는 이 비율이 19.8%로 늘었다. 다행히 이 공이 4월보다 높은 비율로 범타가 되면서 평균 자책을 끌어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행운’을 누릴 수 있던 데는 류현진의 투구 패턴 변화도 한 몫을 차지한다. 특히 속구가 늘었다. 류현진은 4월 전체 투구 중 47%가 속구였는데, 5월에는 57%로 8%포인트 늘어났다. 특히 오른손 타자를 상대할 때 2스트라이크 이후 상황에서 속구를 던지는 비율이 43%에서 51%로 늘었다. 반면 체인지업은 32%에서 21%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늘어난 속구가 향한 곳은 오른손 타자 바깥쪽. 지난 달에는 보기 힘든 코스였다. 4월에는 타자들이 ‘바깥쪽=체인지업’ 공식을 가지고 타석에 들어설 수 있었다면 5월에는 속구라는 옵션이 늘어난 것이다.
옵션이 늘어나면서 타자들은 타이밍 잡기가 더 까다로워진 게 당연한 일. 그 덕에 5월에 타자들이 때린 공 가운데 52.9%가 땅볼이었다. 4월 39.8%보다 13%포인트 늘어난 기록. 내야 뜬공도 8.1%에서 12.9%로 늘어났다. 이 두 타구 형태는 아웃 처리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
이렇게 속구를 많이 쓰자 체인지업 위력이 더욱 좋아졌다. 4월에 타자들은 류현진의 체인지업을 상대로 타율 .245를 기록했다. 5월에는 .050이다. 20타수에 안타를 딱 하나 맞은 건데 그 하나가 하필 홈런이었다.
물론 신인 투수가 두 달 동안 71⅔이닝을 평균 자책 2.89로 막은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현재 삼진 비율(9이닝 당 8.41개)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 신인 투수 이름이 류현진이라면 다시 한 번 4월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맞혀 잡는 투수’ 류현진은 너무도 낯선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