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 통찰과 느린 직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수십 년을 두고 차근차근 구체화되고 뚜렷해지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처음엔 어떤 가능성이 엿보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아이디어가 쏟아집니다. 그러면 그 순간엔 꼭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 지구상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더 있으니까요. 과학저술가인 스티븐 존슨은 이를 ‘느린 직감(slow hunch)‘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직관적 통찰(lightbulb moment)’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발명은 피할 수 없는 것
예컨대 백열전구, 전신, 전지, 증기기관, 디지털 음악, SNS 같은 것들은 수년간의 간격을 두고 다수의 사람이 독자적으로 발명했습니다. 그래서 1920년대 컬럼비아 대학교의 연구팀은 “발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무언가가 발명됐다는 것은 ‘그것이 나타날 때가 되었다’는 방증이라는 거죠. 연구팀은 서로를 베끼지 않고 동시에 발명된 사례 148건을 찾아냈는데, 그 발명은 시간 간격이 10년을 넘지 않습니다.
하나의 기술이 만들어지면 그 기술과 다른 기술들이 묶여 또 다른 새로운 기술을 낳습니다. 인간의 편의와 관련된다는 전제 하에서, 그것은 필연적으로 누가 먼저 조합하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쉽게 말하면 ‘만들어질 것은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는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동시에 발명한 것과는 다릅니다. 두 천재는 순전히 자신의 능력에 의해 무에서 유를 창조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발명은 똑똑한 개인에 의해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천천히 현실이 됩니다.
아이디어는 환경의 산물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다른 사람도 그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던 경험, 아마 많이들 있을 겁니다. 결국 그 아이디어가 나왔다는 것은, 주위에 그 아이디어를 위한 조건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어폰이 나오기 전에 휴대용 기기가 이미 만들어져있을 테고요. 지우개가 만들어졌다면 그전에 연필이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좀 더 확장해보면, 냉동식품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공기의 냉각 원리를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의 발명, 식품을 운반할 수 있는 철로의 발달 때문입니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담은 문학 작품이 쓰이기 시작한 때는 거울이 발명된 시기와 겹치며, 여성들의 누드화가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사고방식이 자유로워진 르네상스 시기 이후입니다. 동남아가 천혜의 휴양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에어컨의 발명이 분명히 포함돼있고, 시험관 아기 시술은 정자와 난자를 순식간에 냉동해 보관하는 기술 덕분에 가능해졌습니다.
아이디어는 결국 환경의 산물입니다. 또한, 누가 먼저, 그것을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혁신을 좌우합니다. 그런데 그 혁신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처럼 한 명의 천재에 의해 단숨에 우리 앞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범인들의 느린 직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에어컨의 탄생하기까지
오늘날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에어컨의 발명 과정을 통해 느린 직감의 예를 살펴볼까요?
에어컨을 처음 만든 사람은 윌리스 캐리어입니다. 공학자인 그가 1902년 만든 기계는 ‘공기를 다루는 장치’였습니다. 25살의 캐리어는 뉴욕 브루클린의 인쇄 공장에서 일하며 여름에 잉크가 번지지 않을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인쇄실의 습기를 제거할 뿐만 아니라 공기까지 시원하게 하는 장치를 발명합니다.
그런데 그가 냉동기술을 발명하기 전 얼음의 중요성을 인식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뉴잉글랜드 지역의 영주로 보스턴에 사는 프레더릭 튜더입니다. 그는 오늘날 ‘아이스킹’으로 불리는 고집센 사람인데, 서인도제도 사람들이 더운 날씨로 인해 얼음은 구경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얼음 무역을 고안했습니다. 1805년 호수의 얼음을 잘라서 보스턴항에서 범선을 띄워 서인도제도로 보낸 것입니다.
초기엔 얼음의 존재도 몰랐던 아바나 사람들은 낯선 얼음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그로부터 몇십 년 후엔 서인도제도 뿐만 아니라 인도까지 무역이 번창해 열대지방 사람들도 아이스크림을 즐길 정도에 이릅니다. 당시 무모한 도전이라고 튜더를 비웃던 사람들은 그가 백만장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얼음이 ‘핫 아이템’이 되자 다음 순서는 뭐였을까요? 사람들은 얼음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의사였던 존 고리는, 1842년 플로리다주에서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온도를 떨어뜨릴 방법으로 인공 제빙 기술을 개발합니다. 하지만 존 고리의 것을 제외하고도 그와 동시대에 비슷한 인공 제빙 기술이 쏟아졌습니다. 또한 이 때의 인공 제빙 기술은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온도가 충분히 내려가지 않아 냉동식품을 먹은 사람들이 배탈에 걸리고 맛도 신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1916년 캐나다에서 얼음 낚시를 즐기던 사업가 클래런스 버즈아이는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냉동 물고기와 달리 얼음 낚시로 잡은 송어는 수개월이 지나도 맛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어찌 보면 그저 생활의 지혜 정도로만 머무를 수도 있었지만, 버즈아이는 이를 계속 연구해 결국 백만장자 사업가가 됩니다. 현미경으로 분석해 동결 과정에서 형성되는 얼음 결정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지요. 둘다 냉동 상태인 것은 같지만, 맛을 잃은 식품은 얼음 결정이 훨씬 커서 식품 자체의 분자 구조가 깨진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가 발견한 것은, ‘순간 냉동’이 식품을 훼손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인간을 먼 우주로 실어나르기 위한 냉동 인간 프로젝트까지 발전한 급속 냉동 기술의 시초입니다.)
버즈아이는 10년 동안 머릿속으로 꼼꼼하게 실험 과정을 기록한 뒤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듭니다. 얼음 낚시로 잡은 신선한 송어와 썩어가는 대구를 비교해가며 현장의 신선한 물고기를 어떻게 간편한 용기에 포장해 가정주부에게 전달할지를 궁리합니다. 그러나 당시는 냉동된 식품은 먹을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시기였습니다. 냉동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균이 많고 맛도 없었습니다.
버즈아이의 사업이 성공하려면, 이런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했습니다. 버즈아이는 헨리 포드의 공장식 산업 모델을 도입해 ‘이중벨트 냉동기’를 만듭니다. 이 방식으로 얼린 과일과 육고기, 채소의 신선도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10년 뒤 버즈아이 로고가 선명한 상자들이 미국 전역의 슈퍼마켓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버즈아이는 급속 냉동이라는 아이디어를 한 번에 떠올린 것이 아닙니다. 얼음 낚시에서 신선한 생선에 대한 영감을 얻고, 저인망 어선의 더러운 보관실에서 상한 고기를 관찰하고, 영하 40도를 만들어낼 과학적 지식을 갖추고, 생산라인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산업 지식을 갖춘 끝에 실행한 것입니다. 버즈아이가 성공한 배경에는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발달한 전문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것들을 조합해 또 다른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자, 이제 에어컨을 만들 조건이 확보되었습니다. 얼음, 인공 제빙, 급속 냉동을 넘어선 단계는 공간 자체를 시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캐리어는 본격적으로 공간 자체를 식히는 기술 발명에 나섭니다. 1902년 당시 그가 습기에 의해 인쇄기의 글자가 번지는 정도로만 문제를 인식했다면, 이런 발명품이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당시에 냉각 기술이 발전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그 과정에서 더 대범한 착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1925년 캐리어는 맨해튼의 한 극장에 공기조절 시스템을 설치합니다. 그 때까지 극장은 여름에 갈 곳이 못됐습니다. 숨이 막힐 것처럼 더운 곳에 사람이 가득 들어찼다고 생각해보세요. 지금처럼 여름 블록버스터 전략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습니다.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창립자 아돌프 주커는 캐리어의 중앙냉방장치를 극장에 처음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리볼리 극장에 공기정화 시스템이 설치되자 사람들은 단지 에어컨 때문에 티켓을 사서 극장에 몰려들었습니다. 그 후 1925년부터 1950년 사이에는 미국 주요 도시의 극장, 백화점, 호텔, 사무실 등에 에어컨이 설치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전쟁이 끝난 1940년대 말부터는 가정에도 에어컨이 설치돼 캐리어 에어컨은 매년 100만대 이상이 팔렸습니다.
에어컨은 미국의 지도도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때까지 사람 살 곳이 못되었던 텍사스,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등 남서부 지방이 살기 좋은 곳으로 변모한 것이죠. 1920년대 플로리다주의 인구는 100만 명도 안됐지만 1970년대에는 10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북부에서 사람들이 이주해오면서 미국의 인구 지도가 바뀌고 정치 지형도 바뀌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동남아나 중동, 아프리카의 주요 도시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도 에어컨의 힘 덕분입니다.
참고: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스티브 존슨 저), <What Technology Wants>(케빈 켈리 저)
원문: 유창의 창작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