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이 돌아왔다
변기에 앉았습니다. 좁은 공간 탓에 잔뜩 쭈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오른쪽 엉덩이가 간지럽습니다. 처음엔 ‘엉드름(엉덩이에 난 여드름)이 올라왔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생각은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엔 3번의 비데 샤워만이 필요하였습니다. 변기에서 일어나자 보이던 비만 모기. 본능적으로 그 녀석을 압사시킨후 제 손바닥에 남은 피의 흔적. 이렇게 모기의 계절이 왔음을 느꼈습니다. 34분의 가려움을 시작으로.
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곤충은 말벌입니다. 그리고 가장 싫어하는 곤충은 모기죠. 더운 여름날 밤, 끈적끈적한 열대야로 인해서 겨우겨우 잠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 귓가를 스치는 기분 나쁜 소리.
‘애앵~’
그 녀석이 돌아왔습니다.
작년에야 모기약을 뿌리거나 모기향을 피우면서 모기를 쫓아낼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옥시 사태로 불거진 케미포비아로 인해서 ‘우리는 모기약을 과연 써도 될까’ 하는 불안감에 빠져 있습니다. 모기를 쫓다가 우리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입니다. 이런 불안감 때문에 올 여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험난한 모기와의 전쟁이 예상됩니다.
그 녀석이 미치는 해악
모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기와의 전쟁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모습입니다. 모기는 세계보건기구가 선정한 ‘인간을 해치는 동물 1위’입니다. 매년 70만 명 이상이 모기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모기에 의한 질병 발생은 무려 2억 건이 넘는데, 그 질병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말라리아
2. 황열
3. 뎅기열
4. 지카바이러스
5. 일본뇌염 등
작은 침으로 빨아대는 찰나의 순간을 통해서 인간은 각종 질병에 걸리고 목숨까지 위험에 처합니다. 몸길이 약 4.5mm의 이 미물 때문에 말입니다.
그 녀석을 박멸하기 위해
모기를 박멸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습니다. 모기는 1억년 이전부터 지구 대부분의 대륙에서 살아왔습니다. 모기는 3,500여종에 이르며 이 중 6%인 200여 종이 인간을 물고 질병을 옮깁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에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과 기업가들이 모기 박멸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모기를 죽이기 위해 인류가 기울인 노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모기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살충제 발명
2. 지카 바이러스와 뎅기열을 옮기는 모기의 수컷에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연구
3. 모기 유충을 잡아 먹는 잔물땡땡이 유충을 모기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지역에 방류
4. 해충 방지용 LED 램프 개발
5. 모기를 유인하는 자외선을 쏴 모기를 끌어들여 살상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도 모기 박멸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구호재단인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재단’을 통해서 10년 이상 다양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말라리아 연구와 박멸을 위해 영국 정부와 손잡고 약 5조 1175억원의 자금을 마련하기로 하는 등 매우 적극적입니다.
“2020년까지 새로운 살충제가 나오지 않는다면 상황이 더 악화해 사망자가 급증할 것이다.”
그는 많은 정부와 시민단체 등에게 적극적인 모기 박멸 운동에 나서줄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과연 없애도 되는 걸까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모기와의 전쟁. 하지만 모기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리고 모기가 완전히 사라진 세상에 대한 의견 또한 양분되고 있습니다. 아래는 <네이처> 지에 실린 모기 없는 세상에 관한 과학자들의 의견입니다.
- 인간에게 완전 땡큐다: 인간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질병을 옮기는 모기가 사라지면 당연히 인간에게 좋은 것. 말라리아로 인한 의료비만 세계적으로 약 14조 5천억원, 뎅기열에 의한 의료 경제적 손실만 미국에서만 매년 약 727억원. 이를 아껴서 질병통제 예산에 들어가는 돈을 복지 예산으로 전환할 수 있음. 말라리아 매개 모기 박멸로만 한해 1백만 명의 사람 목숨을 구할 수 있음.
- 모기가 사라지면 생태계도 없다: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는 많은 포식자들의 먹이, 그 먹이가 사라지면 포식자의 생명도 사라짐. 물지 않는 모기는 꽃가루 수분 역할을 하므로 모기가 사라지면 수천 종, 수만 그루의 식물 역시도 멸종될 가능성이 있음. 모기나 장구벌레를 먹이로 하는 곤충이나 동물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음(이는 일시적인 영향일 뿐이라는 의견도). 생태계에서 다른 곤충이 모기의 역할을 대신하면 생태계는 더 큰 쇼크를 가져올 것.
인간이 모기를 없앨 수 있을까, 그래도 되는 걸까
이 모기를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도 모기가 너무너무 싫지만, 그래도 모기가 완전히 사라진 세상은 위험하다고 보입니다. 생태계가 무너지면 생태계 먹이사슬 중 가장 위에 포진하고 있는 인간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꿀벌만 소중한 게 아닙니다. 모기가 인간에겐 정말 없애고 싶은 곤충이지만, 어떤 생물에게는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본질. 과연 인간에게 어떤 종을 멸종시킬 자격이 부여되었을까요? 인간이 무슨 권리로 모기라고 하는 한 종을 마음대로 없앨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이는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기가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이는 본능에 따른 것입니다. 모기 보고 피 빨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전쟁을 통해서 같은 인간을 죽이고, 자연파괴를 통해서 다른 생물을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인간이 모기마저도 맘대로 없앤다? 이건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밉고 싫어도 모기라고 하는 하나의 종을 인간 맘대로 없애는 일은 있어서는 안됩니다. 매우 건방지고도 위험한 행동이기에 말입니다.
인간은 모기와의 전쟁 그리고 질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지, 대량살상무기 등을 통해서 모기를 완전히 없애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모기만 죽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죽는 것이기에.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은 올 여름 모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원문: 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