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 동아일보가 단독이라며 ‘[단독]멀쩡한 컴퓨터 3000대 몽땅 바꾸는 20대 국회’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기사의 요지는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국회사무처가 컴퓨터 3,000대를 모두 바꾸는 혈세를 낭비한다는 내용입니다.
국회를 비판하는 기사가 나오자, 댓글에는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 없이 멀쩡한 컴퓨터를 바꾼다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전형적인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기사입니다. 왜냐하면 기자가 의원실에서 업무를 봤거나 보좌관들과 얘기를 해봤다면 이런 기사를 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컴퓨터? 6년이 넘은 망이 분리됐던 컴퓨터’
국회사무처가 국회 컴퓨터를 바꾸는 가장 큰 이유는 2010년에 교체된 컴퓨터이고, 내부망·외부망이 분리됐던 컴퓨터이기 때문입니다. 요새는 보통 컴퓨터를 3~4년에 한 번씩은 바꿉니다. 2010년에 국회에 들어왔던 컴퓨터는 컴퓨터 교체주기로 본다면 오래된 컴퓨터입니다. 당연히 OS도 윈도우 비스타처럼 오래된 버전입니다.
국회 보좌관들이나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컴퓨터가 너무 느리다는 항의와 불만이 계속 있었습니다. 여기에 핵심은 기존에 사용했던 컴퓨터는 망이 분리된 컴퓨터였습니다. 즉, 업무용으로 쓰는 컴퓨터 따로,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가 별도로 있었습니다. 문서 작성하다가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인터넷용 PC를 사용해야 합니다.
내구연한이 오래되고, 내·외부망이 분리됐던 컴퓨터를 국회사무처가 바꾸는 일이 무조건 낭비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국회사무처가 자기들 마음대로 컴퓨터를 바꾼 것도 아닙니다. 행정자치부 고시에 따른 업무에 불과합니다.
2015년 11월 행자부는 ‘행정자치부 고시 2015-39호’를 통해 컴퓨터와 모니터, 프린터, 스캐너 등의 행정업무용 다기능 사무기기의 표준규격이 지금 상황과 맞지 않아 성능향상과 유지보수를 위해 표준규격을 일부 바꿉니다.
CPU는 Dual Core 이상, 주기억 장치(메인 메모리)는 2,048MB 이상, 하드디스크는 320GB이상 , SSD는 30GB 이상의 사양을 갖추도록 했습니다. 국회의 LCD 모니터도 이런 표준규격에 맞춰 교체된 것입니다.
국회사무처는 행자부의 고시와 그동안 잦은 고장과 느린 컴퓨터의 불만을 감안해 조달청을 통해 PC와 노트북,프린터 등을 교체했습니다.교체 대상은 국회의원 300명과 국회의원실 사무실(보좌관과 인턴 등 포함 최대 9명)의 컴퓨터입니다. 국회의원의 컴퓨터만 바꾼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의원실에서 근무하는 보좌진에게 꼭 필요한 교체라고 봐야 합니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무조건 국회를 비판하다니’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면 ‘망 분리’ 컴퓨터나 행정자치부 고시에 따른 컴퓨터 교체라는 얘기는 없습니다. 오히려 책상을 의원실 입맛에 맞게 선택하거나 도배를 무조건 한다는 식의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의원실마다 프린터 5대, 노트북 1대 교체 예정’이라고 보도했지만,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의원실별 프린터 3대와 노트북 1대는 기존 장비를 수리해 재사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아이엠피터는 오히려 프린터 재사용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국정감사등을 준비하기 위해 출력되는 어마어마한 양을 보면 재사용되는 프린터는 조만간 또 고장이 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의원실마다 책상 3세트를 교체하며 선택도 의원실에서 한다’는 보도도 사실과 다릅니다. 우선 의원실 책상 중 교체 대상은 10~17년을 사용한 책상과 의자들입니다. 조달청이 고시하고 있는 내용연수 8년을 두 배나 초과한 비품들입니다. 10년이 넘은 책상을 교체하는 것을 세금 낭비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책상세트는 의원실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조달청 입찰을 통해 결정된 동일 모델입니다. 국회의원이 마음대로 더 좋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배를 일괄적으로 해준다는 보도와 모 보좌관의 인터뷰도 잘못됐습니다. 사실 4년에 한 번 입주하는 사람을 위한 도배는 당연한 상식입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원하는 국회의원실만 해줍니다. 그냥 쓰겠다는 의원실은 놔두고, 도배를 새로 해달라는 곳만 해주는 것입니다. 이사를 하면 도배를 새로 해주는 풍습으로 본다면 과연 낭비라고 봐야 하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국회가 아닌 조달청을 비판했어야’
동아일보 기자가 국회 컴퓨터 교체를 비판하고 싶었다면 국회사무처가 아닌 조달청을 비판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조달청을 통해 공급받는 컴퓨터 등 일부 제품들이 비싸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달청에 나온 일체형컴퓨터를 보면 100만 원부터 170만 원이 넘는 금액대입니다. 사양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일부에서는 비싸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산업체 입장에서는 정부의 규격을 맞추다 보면 비싼 금액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동아일보 기자가 국회 컴퓨터 교체를 비판하려면 과연 조달청에 납품되는 컴퓨터 사양이 적정한 금액인지를 먼저 조사했어야 합니다. 만약 조달청에 납품된 컴퓨터 가격이 비싸면서 사양이 낮다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사무처는 행정자치부에 고시된 표준 규격에 따라 조달청에 올라온 제품을 구입했습니다. 진짜 국회의원의 세비가 낭비된다는 비판을 하고 싶다면 국회의원 회관의 건축이나 리모델링뿐만 아니라 왜 국회의원실에 보좌관이 9명까지 있는지도 다뤘어야 합니다. (2012년 국회의원 회관이 넓어진 이유는 과거 4명이었던 보좌진이 9명으로 증원됐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단독’이라며 거창하게 국회 컴퓨터 교체를 비판했습니다. 동아일보 기자는 컴퓨터가 멀쩡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멀쩡하다면 동아일보 기자가 국회에서 사용됐던 컴퓨터를 갖다가 쓰면 될 것입니다.
‘민생은 정책에서 나오고 정책은 정치에서 나온다. 정치는 여론을 따르고, 여론은 언론이 주도한다. 언론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 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언론이 먼저 선진 언론이 되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입니다.
멀쩡한 국회 컴퓨터를 교체한다는식의 왜곡된 기사를 쓰는 기자와 언론사가 있는 한, 무조건 국회를 없애야 한다는 댓글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 혐오를 조장해 정치에 관심을 끊고, 투표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한 선동과 의회 민주주의를 위한 국회 비판은 분리해야 할 것입니다.
원문: The 아이엠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