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그렇게 굳어져온 지 한참이고 그 사회의 비뚤어짐이 강남역 살인사건의 원인이자 과정이니 하루 아침에 뭐가 바뀔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녀대결의 갈등으로 번질까봐 걱정’ 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남성들 가운데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그간 ‘김여사’, ‘된장녀’, ‘김치녀’라는 표현이 섞인 대화나 글을 접했을 때 단 한번이라도 “그런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여성을 매도하는 것입니다”라고 제안하거나 항의해본 분이 얼마나 될까? 김여사, 된장녀, 김치녀는 일부 문제 있는 여성을 가리키는 것일 뿐 전체 여성을 가리키는 게 아니니 괜찮다고 여긴 사람이 오히려 태반일 것이다. (심지어는 여성분들 중에도 그렇게 여긴 분들이 적지 않을거다. 당장 그 당시의 기분은 안 좋았어도.)
그게 괜찮다고 받아들여진 사회 도심 한복판에서 강남역 살인사건은 발생했다. 피의자는 정신상태가 어떻든 간에 화장실 앞에서 자신을 무시했던 여성들에 대한 증오심을 품은채 ‘가장 비슷한 여성을 찾아 찌르자’ 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여성을 미워하지 않아, 날 무시한 특정 여성들이 미워.’
‘강남역에서 유흥을 즐기는 여성들이 그랬어.’
‘그 중에서도 노래방에 들락거리는 여성이면 내 칼을 받아도 마땅해.’
‘게다가 새벽 1시까지 술을 먹는 여성이라면 날 무시한 그 여자와 똑같아.’
그리고 그 칼을 받은 사람은 고된 근로 중에 평일 이틀이 휴일이라 남자친구와 그 시간밖에 여유가 없어서 노래도 부를 수 있고 즐겁게 한 잔도 할 수 있고 음침하지도 아주 비싸지도 않으며 사람들 많은 공간을 찾은 그저 아주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렇게 여자라는 이유로 죽은 이 살인사건으로 인해 남녀갈등이 번지고 사회의 대립이 일어날까봐 두려워하는 당신은 어쩌면 매우 선하고 올바른 사람이며, 이런 범죄와 거리가 먼 사람일 것이다. 단지 여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살고 있는지를 보지 못했을 뿐인.
더 이상 여자들이 밤길이 무서워 술을 입에 대지 못한 채 집에 일찍 들어가고, 외진 길에서 뒤에서 나는 발소리에 경기를 일으키며 선량한 당신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보를 해야하는 풍경을 일상으로 받아들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강자인 당신은 인식하기 어려울 두려움을 말이다.
몇몇은 이 상황에 상식적인 의문을 던지곤 한다.
‘한국의 치안이 세계 제일 수준인데 그럼 어디가 안전하단 말인가?’
‘눈높이의 문제라면 과연 우리가 찾아야 하는 더 안정된 치안의 나라는 어디인가?’
‘딸 가진 부모들은 어느 나라로 이민가면 되나?’
지금 이 문제는 어느 나라가 더 치안이 좋으냐, 혹은 지금 어떻게 치안을 개선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 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문제다. 여성들이 이렇게 많이 불안해하고 안 좋은 경험을 해온 사회라는 인식을 하는 게 첫 번째이고 가장 큰 해답이다.
그 튼튼하다는 치안을 더더욱 개선하고 안전한 시설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노력이 부질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장치나 시설의 논의보다 다른 것이 필요해보인다. 당장의 인식을 전환하기만 해도, 길에서 서로 스치는 방향, 대중교통에서 마주하는 모양새, 직장과 학교에서 건네는 인사가 모두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어휴 그러게 왜 밤늦게까지 ㅠㅠ’
‘어휴 술 마시면 위험해요 ㅠㅠ’
‘제가 지켜줄게요 ㅠㅠ’
라는 선의의 걱정을 두려움에 찬 여성들에게 말하기보다 밤 늦게 술 마시고 짧고 매력적인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초면에 즐겁게 술 한 잔을 해도 아무런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그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강력한 지문인식과 신분증을 요구하면서 24시간 감시카메라가 달린 안전한 술집, 화장실, 대중교통 이용시설의 건립으로도 어쩌면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더 쉽고 간단한 방법은 위와 같은 말을 해서 여성들의 행동을 제약하기보다, 그 여성들이 행동을 제약받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인식을 먼저 하는 것이다. 여성이 밤 늦게까지 다녀도 이상하게 보지 말고, 여성이 술을 마셔도 이상하게 보지 말고, 여성이 유약해보여도 지켜주겠노라고 나서기 전에 그가 이상한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인식부터 전환을 하고, 그게 일상적인 사회가 되면 다들 조금은 굳어진 얼굴을 풀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지 않을까?
원문: 노모뎀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