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씨가 “피의자의 정신질환 경력 등 ‘여성혐오 범죄’로 단정짓기 어려운 것은 분명합니다”라는 워딩이 포함된 발언을 하여 많은 이들이 항의하고 있다.
항의의 내용은 일반론의 측면에서 봤을때 타당한 내용이다. “여성에 대한 분노를 갖고 1시간 동안 기다리며, 살해할 대상을 선택해 여성을 살해한 것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면 무엇이 여성혐오 범죄냐”는 것. 일단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프로파일러씩이나 되는 사람이 왜 저런 워딩을 삽입하는지, 도저히 답답하면 이 사회에 ‘혐오범죄에 관한 법률’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여성혐오 vs. 조현병
여성혐오라는 건 맥락이 존재한다. 그 맥락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부분적으로 납득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이해 자체를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여성혐오적’이라는 말에는 맥락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여성을 성녀라고 대우하는 것도, 창녀라고 취급하는 것도 똑같은 여성혐오라고 누군가 설명해낼 때는 맥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나? 우리는 그 맥락에 따라 여성혐오를 비판하거나 비난한다.
그런데 조현병이라는 건 왕왕 밑도 끝도 없는 언행을 일삼는다. 맥락이 없는 거다. 이를테면, 어느 아재가 “여자들이 나를 무시한다”고 발언했다면, 그건 그 아재가 가부장주의에 쩔어있는 여성혐오자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 발언은 한명의 사회적 개인이 정신작용을 통해 산출해낸 값이다. 우리는 그 멘털리티가 왜 부당한지 맥락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조현병 환자의 경우 그런 정신작용 자체를 설명해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저 자가 나의 재산을 갈취하고 있다’는 말을 막 일삼기도 하는 게 조현병 환자들이다. 그게 부당한 건 앞서 말한 아재처럼 뒤틀린 멘탈리티에 의한 정신작용이 아니라, 뇌 자체가 고장이 나 버렸기 때문에 온당한 정신작용을 못하는 거다. 아울러 그렇게 발화된 진술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그 ‘동기’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부적절한 멘탈리티에 의한 정신작용의 결과값인 여성혐오’라는 부당함과 ‘뇌 자체가 고장나서 드러나는 여성혐오’라는 부당함이 설령 겉으로 표출된 모양새가 똑같다 한들 그걸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여성혐오라는 것은 보편적 맥락으로 엮어낼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언어로 평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보편적 메커니즘, 이를테면 구조에 촉촉히 젖어서 드러나는 여성혐오적 발언과 달리, 말 그대로 뇌가 고장나서 툭툭 튀어나오는 여성혐오적 발언은 일반 사회에서 유통되는 그것에 비해 압도적으로 탈맥락적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전자는 사회적, 윤리적 언어로 설명해낼 수 있지만, 후자는 차라리 임상의 언어로 진단해야 하는 것이다.
표창원이 하는 이야기가 그런 거다. 다시 돌아가서 ‘혐오범죄에 관한 법률’이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자. 사회적, 윤리적 언어로 여성혐오적이라고 판별할 수 있는 범죄와 정신작용의 핵심이 임상의 영역에 있는 여성혐오적 범죄를 (설령 양태가 같더라도) 같은 법률로 다룰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 사회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똑같은 살인이라도 맥락을 꼼꼼히 따져 법률을 달리 집행한다.
정밀 수사결과 이 살인범의 범죄에 영향을 미친 핵심이 사회적 맥락에서 논해지는 그 ‘여성혐오적’ 정신작용이 아니라 병증이라면, 여성혐오는 주변부나 탈맥락적 표피에 불과하다면, 이 자에게 적용할 법률은 ‘혐오범죄에 관한 법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실제로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왜 중증 정신장애가 있는 범죄자를 교도소가 아니라 폐쇄병동으로 보내겠는가. 취급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이고,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위의 가정대로라면, 이 살인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모종의 유의미한 운동이 진행되고 그 결과 ‘혐오범죄에 관한 법률’이 입법된다 하더라도,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이 살인범은 그 법률에 따라 처벌받지 않을 확률이 농후하다. 그리고 원칙적으로도 그래야 한다. 그러니까 법률에서 이 살인범을 다룰 때 사회적 맥락을 따르는 여성혐오보다 임상의 진단을 따를 확률도 있다는 거다.
분노의 초점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 분노해야 하는가? 살인범이 ‘혐오범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취급되지 않고 정신장애에 의한 범행으로 취급된다고 여성혐오 자체가 무시되는 건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살인범의 수사결과와 별개로, 이 살인범이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그 여성혐오 담론에 비해 과도하게 일레귤러인 정신작용에 의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마치 사회적으로 만연한 여성혐오가 심각하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발언하는 당위로 끌어다 쓰면 안 된다는 걸 합의해야 한다. 그러니까 법률적 결과가 어떻든 이거 갖고 미친놈만 문제라고─따라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난 건 부당하다고─주장하는 당위로 쓰면 안 된다는 거다.
뇌의 기능이 붕괴된 정신작용으로 내 뱉었던 그 말,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라는 말에 뇌의 기능이 붕괴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조응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뇌의 기능이 붕괴된’ 사람이나 떠드는 그 멘털리티와 발언이 이 사회에 너무나 ‘일반적으로’ 팽배해있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단순 싸움질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적인 맥락에서 해석해야할 의미가 있다는 걸 깊이 숙의해야 한다.
원문: 하헌기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