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태에 대한 의견’이 아니라, 추모 장소의 사진들, 포스트잇이 붙은 광경과 슬픔에 잠긴 메시지들만 보고도 “성 대결을 부추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건 이 사건을 깊이 있게 다루는 글들은 하나도 안 읽고, 읽더라도 ‘실질 문맹’의 자세로 ‘독해’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반응이겠지만, 순수하게 그 풍경에서 성 대결을 부추길 만한 요소를 ‘굳이’ 한 번 찾아보려 한다. 아마 1)추모 장소에 여성이 많은 것과, 2)’여자라서 죽었다’라는 메시지 정도일 것이다.
현장에 여성이 많은 이유는, 심플하게 여성들이 많이 가고, 남성들은 비교적 적게 가기 때문이다. 이 추모 장면을 ‘한 인간의 죽음’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야말로 여성들이다. 저 현장에 많은 연령대의 우리나라 성비는 남자가 더 높다. 젠더 문제가 빠진 ‘한 인간의 죽음’이라면 적어도 추모객의 성비가 비슷비슷하거나, 남자가 더 많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여성들이 많이 가는 이유는, 추모를 하고 싶기 때문이고, 왜 추모를 하고 싶냐면, 슬프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무고하게 살해 당한 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능력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훨씬 더 많이 간다. 그 말은 이 사건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고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성별 대결은 가해자의 게임이었다. 퀴즈를 맞추지 못한 길손들을 죽인 스핑크스처럼 살인자는 6명의 남성을 무사히 ‘통과’시킨 후 처음으로 들어온 여성을 살해했다. 6명은 0%의 확률로, 여성은 100%의 확률로 살해 당한 것이다. 살인자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이라는 기호였고, 여기서 지정성별 여성으로 태어난 잠재적 피해자는 개인의 능력으로 벗어날 방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그토록 공감하고 고통을 느끼는 것이고, 여자가 이토록 높은 확률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니, 100%와 0%를 두 성 다 누리는 100%로 바꾸자는 뜻이다.
100%를 빼앗아서 50대 50으로 나누자는 것도 아니다. 여성들이 새벽 1시, 한국 최대 번화가에서 살해 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만큼의 남성들이 대신 살해 당하나? 그렇지 않다. 모두가 100을 누리게 되면 여성들은 “조심”할 필요가 없어지고, 남성들은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여성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누군가는 또 100이란 불가능한 숫자라고 엣헴거리겠지. 알았다. 미리 말해줄게. 당연히 남자도 100% 안전하지 않다. 100% 안전한 세상은 없다. 하지만 남자만큼 안전하다면, 여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덜 조심해도 되고, 남자들은 훨씬 덜 기분나빠도 된다.)
100%가 0%에게 여성만큼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꼭 ‘여성만큼’ 공감할 필요는 없다. 공유하는 요소가 없다면 당연할 것이고,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공감의 크기나 방식은 제각각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슬픔을 못 느낀다고 해서 굳이 싸이코패스거나 차가운 현대인은 아니다. 그저 거리감각을 유지할 수 있나는 것이, 인지하지 못하는 특권일 뿐이다.)
내가 의아한 것은 억울한 죽음보다 ‘성별 대결’에 더 분노하며 ‘순수한 추모’를 하라는 말이다. 공유하는 정체성(살인자가 노린 성별)을 가진 상대의 죽음에 슬퍼하는 감정을 ‘순수하지 못하다’고 할 때, 그럼 어떤 감정이 순수한 것인가? ‘나도 슬프지만’이라고 하면서 곧바로 ‘일반화하지 말라’로 넘어가는 것?
강남역 화장실 살인자는 여자만 공격했다. 6과 1. 너무나 명료하지 않은가. 그날 그 화장실을 남자만 썼으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날 다른 여성이 다른 곳에서 죽었겠지. 다른 약자가 필요했으면 새벽 1시 강남역 수노래방 화장실에 숨어서 1시간이나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 시간 그 화장실에는 장애인도 노인도 아동도 없었을 것이다. 여자 외국인 노동자는 죽었겠지만 남자 외국인 노동자는 살았을 것이다. 남자 비정규직은 살았겠지만 여자 정규직은 죽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묻지마 살인이 아니고 ‘사회적 약자’라는 두루뭉수리한 집단에 대한 살인도 아니고, 엄연히 여성차별 살인(femicide)이다. 여성혐오(misogyny)란 여자를 동일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여자만 죽인 그 살인자는 여성혐오자다. 남자 일반화가 아니라, ‘여자를 죽인 살인자 일반화’다.
원문: 이진송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