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한 일본 부부는 주말마다 온천에 간다. 온천에 간다니까 대단한 일인 것 같지만, 실은 일본에는(아니 적어도 동경 주변에는) 온천이 워낙 많다. 그 대부분은 말로만 온천일 뿐 물 자체가 온천수같이 효험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동네 목욕탕에 주말마다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목욕탕에 가면 간단한 외식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휴식 공간을 쓸 수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찜질방 가서 가족들이 노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에는 또 워낙 공원이 많다. 내가 가진 네비게이션에는 주변 검색 기능을 이용해 가까운 공원들을 검색할 수 있는데, 반경 10km 안에 있는 크고 작은 공원이 수십 개다. 일본 사람들은 주말이면 그런 공원에 가서 텐트를 치고 바비큐 기계를 설치한 후 하루를 보내곤 한다.
나는 딱히 일본사람이 한국 사람보다 노는 데 익숙하다던가 하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의 우리 가족보다는 그런 것 같다. 어릴 때는 그런 걸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어 삼 형제가 결혼하고 따로 살다가 가끔 가족모임을 가지다 보니 확연히 알게 된 것이 있다. 우리 가족에게는 놀이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돈 문제도 있고 시간 문제도 있다. 사람 수라던가 그 구성의 다양함 때문에 이런저런 제약이 붙는다. 그래도 노력하면 뭔가 조금은 더 재미있는 것을 할 수도 있을 텐데, 노는 법을 모른다. 재미있는 대화를 할 줄도 모르고 그저 티브이를 보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가 때 되면 여자들이 해주는 밥을 먹고 내키면 술을 마신다. 대화는 극히 제한되며, 정치 이야기 같은 게 잘못 나와서(…) 분위기 험악해지는 수도 있다.
집 근처의 공원에 산책을 간다든가, 모두들 수영장에 간다든가, 펜션에 놀러 간다든가 기차여행을 해본다든가 이도 저도 아니면 영화라도 재미있는 걸 본다든가 할 수 있을 텐데, 대단히 수동적으로 산다. 내가 아는 한, 한국의 많은 가정이 실은 이것과 비슷하다. 특히 아이들에 관련되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마땅히 노는 법을 가르치기보다는 공부하는 법, 지겨운 걸 참고 견디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놀면 보고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부모들은 피아노 음악을 즐기는 법이 없으면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치라고 하고, 부모들은 학술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법이 없으면서 아이들에게 그런 걸 공부하라고 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다.
노는 법이라는 것은 컴퓨터 게임 같은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가르치고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책을 읽으면서 억지로 읽는 것 같은 모습만 보여주면 아이들도 책이 지겹다고 생각할 것이다. 요리하는 것도 실은 아주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다. 부모가 요리를 즐겁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요리도 즐거움이며 심지어 청소나 체조도 놀이가 될 수 있다.
일과 놀이의 구분은 사실 ‘실제로 뭘 하는가’보다 상당 부분 ‘태도의 문제’다. 일하는 태도로 생활을 채우면 생활은 지겹게 견디는 부분과 그저 아무것도 안 하는 부분으로 채워진다. 산책은 몸에 좋다. 산책하는 것도 의무 삼아 일처럼 할 수 있다. 하지만 산책은 무엇보다 즐겁다.
동네를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가게를 둘러보고 간식거리라도 하나 사 먹는 것은 훌륭한 놀이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삶 자체의 되도록 많은 부분을 ‘하고 싶어서, 즐거움 때문에’ 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가 아닐까? 아니 교육 이전에,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좋은 것 아닐까?
부모는 자식을 키울 의무가 있고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의무가 있으며 우리는 부모님에게 의무가 있고 일할 의무 공부할 의무가 있다. 이렇게 삶을 모두 의무로만 채울 때 사는 것은 재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남편들은 잔소리를 듣기 전에는 집에 잘 안 들어오고 아이들은 작은 일만 시켜도 툴툴거리고 아내도 신바람이 안 나고 부모님도 의무적인 방문에 의무적인 반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뿐이다.
즐거운 것을 하려면 생각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즐거울까 뭘 하면 즐거울까. 아이에게 가르치고 보여줘야 하는 것은, 즐거운 삶이란 이렇게 적극적으로 창의적으로 창조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저 수동적으로 컴퓨터, 게임기, 케이블TV 앞에서 주어진 것을 흡수하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아이는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없을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잔소리 속에서 인생의 즐거움과 신기함과 기쁨을 전부 없애버리고 인생이란 결국 의무와 의무로 이어져서 그러다가 늙으면 죽을 뿐 좋은 거 하나 없는 곳이란 것을 가르쳐서는 안 되겠다. 부모가 아이에게 꼭 가르쳐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삶을 살아볼 만하다는 사실이다. 페라리를 몰고 수십억짜리 아파트에 살고 지구 반대편까지 비행기 타는 것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의무를 강조하고 노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이란 실은 그렇게 되기가 아주 쉽다. 수학문제를 푸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수학을 잘한다고 흔히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수학문제를 세상에서 가장 지겨운 것으로 만들어 놓고 풀라고 한다. 이런 태도는 잘못된 것이 아닌가.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