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보고 분노를 느끼면서 동시에 떠올리게 되는 인물이 있다.
제멜바이스는 19세기 헝가리 출신의 의사였다. 출산시 산욕열로 인한 사망률이 당시에 35%까지도 이르고 있었는데, 제멜바이스가 있었던 곳의 병동 한 곳은 사망률이 평균 10%(5-30%)였고, 다른 하나는 4%에도 미치지 못했다.
당시 출산을 앞둔 여성들은, 첫 병동의 악명 때문에 첫번째 병동이 아닌 두번째 병동에서 애를 낳고 싶어했는데, 싹싹 빌면서 간청을 하거나 안되면 차라리 길거리에서 출산하는 걸(오는 길에 어쩔 수 없이 출산했다고 거짓말하고) 선택하곤 했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출산한 경우 첫번째 병동에 비해 산욕열로 인한 사망률이 훨씬 낮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고심하던 제멜바이스는 디버깅에 들어간다. 당시 의료계에 만연하던 믿음은 나쁜 공기 이론(miasma theory, 포말 전염설)이었다. 하지만 정말 나쁜 공기 때문이라면 왜 두번째 병동으로는 나쁜 공기가 가지 않는 걸까.
두 병동을 하나 하나 비교하며 원인을 제거해 가다가 나중에는 중요한 발견에 이르게 된다. 첫 번째 병동은 부검을 마친 의사와 의대생들이 출입했고, 두번째 병동에는 조산사들이 출입했다. 그렇다. 부검을 마친 사람들은 손을 제대로 씻지 않고 산모와 아기를 만졌다.
당시 세균에 의한 감염 이론도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제멜바이스의 발견 덕에 해당 병동은 10%의 사망률을 1-2%대로 낮아지게 된다.
하지만 제멜바이스는 당시 내로라하는 의학자들과 병원, 연구자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는다. 소위 “과학적 설명”을 할 수 없었던 데다가, 의사들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추후 그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고(그의 정신적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알츠하이머병, 매독, 과로와 스트레스 등이 언급되는데, 그 시기 그가 모든 대화 주제를 산욕열로 끌어갔다는 걸 보면 그의 삶에서 산욕열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는지 알 수 있다.), 선생과 동료에 의해 새로 생긴 병원을 방문한다는 구실에 속아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거기에서 경비들에게 두들겨맞고 그곳에 온지 14일만에 사망한다. 당시 그의 나이는 47세였다.
내가 보기에, 이 슬픈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 제멜바이스 같은, 호기심과 의심을 갖고 관찰하는 전문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정규교육에 디버깅을 포함시켜야 한다.)
- 다수의 의견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 이론적 설명이 없다고 관찰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내 이론과 배치되는 주장을 열린 가능성을 놓고 탐구할 수 있어야 한다.
-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맺는 것, 또 주장을 어떻게 전달하는가도 중요하다.
원문: 김창준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