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주: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2015년 웰즐리 여대의 졸업식에서 했던 축사를 번역해보았다.
안녕하세요, 2015년 졸업생 여러분.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 멋진 환영, 고맙습니다. 저를 멋지게 소개해준 보텀리 총장께도 감사합니다.
저는 웰즐리를, 이 학교의 사명과 역사와 성공을, 오래전부터 존경해왔습니다. 그래서 저를 초대해주신 것이 무척 고맙습니다. 이렇게 탁월한 성채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졸업하는 여러분은 어마어마하게 운이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우주의 여신들과 신들이 옳은 결정을 내린다면, 여러분은 머지않아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대학의 자랑스러운 동창생이 될 것입니다. 고 힐러리!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이 정말, 정말 기쁩니다. 얼마나 기쁘냐 하면, 여러분 학년의 색깔이 노란색이라는 걸 알고는 오늘 노란색 아이섀도를 칠해야겠다고 결심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웰즐리를 아주 존경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노란색 아이섀도는 좀 너무한 것 같더군요. 그래서 대신 이 노란색, 대충 노리끼리한 이 헤드랩을 찾아서 썼습니다.
아이섀도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저는 이십대가 될 때까지는 화장에 별 흥미가 없었습니다. 이십대가 되고서야 화장을 하기 시작했지요. 남자 때문이었습니다. 목소리 크고 불쾌한 남자 때문에요.
그는 한 친구가 연 파티의 손님이었습니다. 저 또한 손님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23살쯤 됐었는데, 사람들은 저한테 12살로 보인다고 말하곤 했지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대화는 이보족의 전통 문화로 흘러갔습니다. 남자들만 콜라 열매를 깰 수 있도록 허락하는 관습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콜라 열매는 우리 이보족의 세계관에서 아주 상징적인 존재랍니다.
저는 젠더가 아니라 성취에 따라서 그 명예를 부여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저를 보면서 일축하더군요. “모르는 소리 하지 말아요, 어린 여자가 뭘 안다고.” 저는 제 주장의 내용을 가지고서 그에게 반론하고 싶었지만, 그는 제가 어린 여성인 걸 보았기 때문에 제 말을 일축하기가 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 나이 들어 보여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전 립스틱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라이너도요.
그리고 전 그 남자에게 고맙습니다. 왜냐하면 그 후로 저는 화장을 사랑하게 되었거든요. 일시적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멋진 가능성을 말이죠.
그런데, 제가 이 일화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리는 것은 제가 젠더 불평등을 어떻게 깨달았는지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굳이 목적을 찾으라면, 오히려 화장에 바치는 헌사라고 할까요. 정말로 전 그냥 여러분에게 졸업을 계기로 립스틱을 몇 개 사면 좋을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화장을 좋아하는 분이라면요. 왜냐하면 멋진 색깔의 립스틱은 우울한 날에도 늘 기분을 약간이나마 더 낫게 해주거든요.
여러분의 특권에 대해 생각하세요
아까의 일화는 정말로 제가 젠더 불평등을 발견한 계기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저는 그보다 훨씬 더 이전에 그 사실을 발견했으니까요. 어릴 때부터. 세상을 보면서 말입니다.
저는 세상이 남자들에게 제공하는 여러 작은 호의들을 여자들에게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되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차별을 당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저는 남자들이 선천적으로 못됐거나 악하진 않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남자들은 그저 특권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특권이 사람을 눈멀게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특권이란 원래 사람을 눈멀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교육받은 가족에서 자랐다는 계급적 특권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이따금 저도 눈이 멀었습니다. 저와는 다른 사람들이 지닌 미묘한 차이를 늘 예민하게 알아차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멋진 웰즐리 졸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출신 배경이 어떻든 이제 특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학위, 그리고 여러분이 이곳에서 겪었던 경험은 특권입니다. 그 특권이 여러분을 너무 자주 눈멀게 만들도록 하지 마세요. 가끔은 그것을 옆으로 치워야만 상황을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젠더는 언제나 상황과 맥락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에게 제 어머니의 축하를 전하고 싶습니다. 제 어머니도 웰즐리의 대단한 팬이고, 여기에 참석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어제 저한테 전화를 거셔서는 축사 잘 쓰고 있느냐고 물으면서, 저더러 다리가 희끗희끗해 보이지 않게 로션을 잔뜩 바르고 가라고 당부하시더군요.
제 어머니는 73세인데, 나이지리아대학의 첫 여성 교무과장으로 일하다가 은퇴하셨습니다. 당시로서는 꽤 대단한 일이었지요. 어머니는 자신이 처음 대학에서 회의를 주재했을 때 이야기를 들려주길 좋아하십니다. 큰 회의실이었는데 상석에 ‘체어맨(의장)’이라고 적힌 명판이 놓여 있었답니다. 어머니가 그 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 직원이 와서 명판을 치우려고 했습니다. 그때까지는 모든 회의를 당연히 남자가 주재했는데, ‘체어맨’이라는 명판을 ‘체어퍼슨’이라고 적힌 명판으로 교체하는 걸 깜박했던 겁니다. 직원은 사과하면서 새 명판을 준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체어 ‘맨’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어머니는 됐다고 대답했습니다. 정확하게는 자기가 체어맨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명판이 정확히 그 자리에 놓여 있기를 바랐습니다. 회의는 곧 시작될 참이었지요. 어머니는 그날 그 순간 그 회의에서 누구도 어머니가 다른 체어맨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늘 이 이야기를 좋아했고, 어머니의 단호한 페미니스트적 선택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열성 페미니스트인 친구에게 들려주었는데, 저는 그 친구가 우리 어머니에게 브라보를 외치길 기대했지만, 오히려 친구는 심란해하는 눈치였습니다.
“너희 어머니는 왜 체어맨이라고 불리길 원하셨지? ‘맨’이 붙어야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측면에서는 저도 친구의 말뜻을 이해했습니다. 만약에 ‘공인된 페미니스트 비밀 결사’라는 모임이 존재해서 매년 ‘표준 핸드북’을 낸다면 그 핸드북에는 틀림없이 여자는 ‘체어맨’이라고 불리지 말아야 하며 스스로도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지 말아야 한다고 씌어져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젠더는 늘 맥락과 상황의 문제입니다. 만일 이 일화에 교훈이 있다면, 그러니까 제가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웰즐리에서 축사를 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 말고 말이죠, 아마 이것입니다. 여러분의 표준화된 이데올로기들이 늘 여러분의 인생과 꼭 맞지는 않으리라는 것. 왜냐하면 삶은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무조건 시도하세요
나이지리아에서 자랄 때, 저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으레 그렇듯이 사람들로부터 장차 의사가 되리라는 기대를 받았습니다. 저 자신은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글쓰기라는 걸 알았지만, 저는 기대에 따라 의대에 진학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여기서 잘 버텨서 정신과의사가 될 테야, 그래서 환자들의 사연을 소설에 활용할 테야, 하고 다독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의대에서 일 년을 보내고는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제가 아주 불행한 의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제 실수가 아니더라도 환자들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의대를 떠나는 것은 특이한 결정이었습니다. 의대에 들어가기가 아주 어려운 나이지리아에서는 더욱더 말입니다.
훗날 사람들은 제게 아주 용감한 선택을 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스스로 전혀 용감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때 느꼈던 것은 용기가 아니라 노력해야겠다는 욕구였습니다. 시도해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그곳에 남아서 제게 맞지 않은 공부를 할 수도 있었고, 아니면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해볼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시도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미국 대학에 시험을 쳐서, 의학이 아닌 다른 것을 공부할 수 있는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그 시도는 잘 풀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미국 유학 장학금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 글쓰기가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가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늘 우리가 원하는 형태로 변형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도할 수는 있습니다. 결연하게, 진심으로 노력해볼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곳에서 받은 교육 덕분에 그런 노력을 할 때 사용할 도구들을 이미 많이 갖추었다는 점에서, 특권을 갖고 있습니다. 언제든 무조건 시도하세요. 세상 일은 누구도 모르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제 졸업하는 여러분에게, 앞으로 오늘의 흥분과 근심을 풀어나가야 할 여러분에게, 저는 여러분이 스스로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하라고 촉구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에 관여하세요. 진심으로, 적극적으로, 현실적으로, 직접 손을 더럽히는 방식으로, 급진적으로 관여하세요. 웰즐리는 여러분에게 문을 열어줄 것입니다. 그 문을 통과하여, 성큼성큼 확신 있게 걸어 나가세요.
여성의 강인함이 특별한 것으로 묘사되기보다 그저 정상적인 것으로 묘사되는 텔레비전 쇼를 쓰세요. 학생들에게 나약함은 여성의 특징이 아니라 인간의 특징이라고 가르치세요. 남자들에게 ‘여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내용의 잡지 기사를 실으세요. 왜냐하면 여자들에게 남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기사는 이미 너무 많으니까요.
그리고 인터뷰를 할 때는 아빠들에게도 가정과 일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지 묻도록 유념하세요. ‘부모가 죄인’인 우리 시대에, 그 죄의식이 공평하게 나눠지도록 만드세요. 아빠들도 엄마들만큼 자책을 느끼게 만드세요. 아빠들도 이 영광스러운 죄의식을 공유하도록 만드세요. 미국 어디에서나 남자들의 유급 육아휴직이 가능해지도록 운동하고 지지하세요.
여성이 적은 곳에서는 더 많은 여성을 고용하세요. 하지만 여러분이 고용하는 여성이 유별나게 탁월할 필요는 없다는 걸 명심하세요. 일자리를 얻는 대다수의 남자들처럼, 그 여성은 그저 그 일자리에 맞을 정도로만 훌륭하면 되는 거니까요.
페미니즘이 모두를 받아들이는 파티가 되도록 만드십시오
최근에 한 페미니즘 단체가 고맙게도 저를 중요한 상의 수상자로 거명해주었습니다. 어느 나라인지는 밝히지 않도록 할게요. 전 아주 기뻤습니다. 전 운 좋게도 지금까지 상을 몇 개 받아봤는데, 다 좋았어요. 특히 반짝거리는 선물이 딸려 있을 때는 말이죠.
그런데 그 상을 받기 위해서는, 어느 유럽 페미니스트 여성 작가가 제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말하는 강연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진실을 말하자면, 저는 그 페미니스트 작가의 책을 한 권도 끝까지 다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게는 그냥 와 닿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그 작가가 저의 생각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는 건 거짓말일 것이었습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저는 어떤 기념비적인 페미니즘 고전을 읽은 것보다도 제가 자란 동네인 은수카의 시장에서 일하던 여성 상인들을 보면서 페미니즘을 더 많이 배웠습니다. 저는 그 여성이 제게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강연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과 반짝거리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라는 딱지를 이토록 공공연하게 붙이고 다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자문해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문은, 제 페미니즘 강연의 일부가 여러분 중 몇몇은 누군지 알지도 모르는 어느 재능 있는 가수의 노래에 삽입되었을 때도 떠올렸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새로운 세대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이니까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중에는 학자도 많았는데요, 그 일을 어쩐지 심란하게 여기는 것이었어요. 심지어 우려스러운 일로 여기기도 하더군요.
마치 페미니즘을 소규모 엘리트들만의 컬트 종교로, 그 구성원들만의 은밀한 의식으로 여기는 듯한 태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페미니즘은 포괄적인 당파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여러 페미니즘들을 모두 받아들이는 당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2015년 졸업생 여러분, 세상으로 나가서, 페미니즘이 모두를 받아들이는 왁자지껄 큰 파티가 되도록 만드십시오.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지난 3주는 제 인생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제 아버지는 83세인데, 통계학 교수로 일하다 은퇴하셨고, 아주 사랑스럽고 상냥한 분입니다. 전 못 말리는 ‘아빠 딸’이지요.
2주 전, 아버지는 나이지리아의 집 근처에서 납치를 당했습니다. 이후 며칠 동안 우리 가족은 제가 평생 알지 못했던 극심한 감정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리는 전화로 낯설고 위협적인 이들과 통화하면서 아버지의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애걸하고 협상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기나 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몸값을 치른 뒤, 아버지는 풀려났습니다. 이제 아버지는 괜찮습니다. 몸도 괜찮고, 언제나처럼 다정하시며, 가족에게 자기는 괜찮다고 안심시키려고 애쓰십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잠을 잘 못 잡니다. 밤에 수도 없이 깹니다. 공포에 질려서, 뭔가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시달립니다. 아직 아버지를 볼 때마다 도무지 눈물을 참을 수가 없고, 아버지가 안전하다는 데 대해 깊은 안도감과 감사를 느낍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대한 그런 모욕을 겪어야 했다는 데 대해서 분노도 느낍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서 저는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제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를. 제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를.
그리고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에게도, 저는 그런 생각을 좀 해보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 정말로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해보세요. 자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게 무엇이었으면 하고 바라는지를 생각해보세요.
남들에게 자신을 맞추려 하지 마세요
어디서 읽었는데, 여러분에게는 상급생을 “언니”라고 부르고 하급생을 “동생”이라고 부르는 사랑스러운 전통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연못에 서로를 빠뜨리는 좀 이상한 전통이 있다고도 하던데, 그건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되지만요, 어쨌든 저도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명예 언니가 되고 싶습니다. 그 말은, 제가 언니로서 여러분에게 몇 가지 조언을 주고 싶다는 뜻입니다.
전 세계에서, 여자아이들은 남들의 호감을 얻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랍니다. 남들에게 자신을 맞추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랍니다.
부디, 여러분은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맞추지 마세요. 그러지 마세요. 누군가가 그런 모습의 여러분을, 즉 자신을 억제하는 거짓된 모습의 여러분을 좋아한다면, 그들은 그 변형된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지 여러분을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세상은 놀라울 만큼 다면적이고 다양한 장소라서, 어딘가에는 여러분을, 여러분의 진정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의 여러분을 좋아할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제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처지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수단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몇몇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왔습니다. 어떤 주제를 말할 때는 사람들로부터 입 다물라는 얘기도 들었지요. 제가 아프리카에서 동성애자들에게 평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밝혔을 때도 그랬고, 남자와 여자는 완벽하게 평등해야 한다는 깊은 신념을 밝혔을 때도 그랬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선동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지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은 만큼, 우리가 진정한 자신으로 존재하지 않는 매 순간,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인 척하는 매 순간, 우리가 어떤 말을 하기를 남이 바라는 것 같다고 상상함으로써 실제로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매 순간이 모두 그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뭐 거창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부디 지상에서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하지만 여기에는 물론 예외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상에서 주어진 시간을 낭비해도 좋은 단 하나의 일은 온라인 쇼핑이에요.
“너는 여자니까”라는 말을 절대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제 어머니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젠더에 관한 문제에서 의견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 단순히 ‘여자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가령 곧 죽어도 웃을 기분이 안 나는 순간에도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야 한다거나, 어떤 논쟁에서는 전략적으로 져줘야 한다거나. 특히 논쟁 상대가 여성이 아닐 때는 말이죠. 아니면 꼭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거나.
저도 이런 생각들에 대해서 상당히 그럴싸한 이유를 이것저것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는 여자니까”는 결코 그 이유가 아닙니다. 그러니 2015년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로 “너는 여자니까”라는 말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사랑을 주고 받으십시오
끝으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서 말하면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요즘 여자아이들은 사랑이란 주는 것이라는 교육을 받으면서 자랄 때가 많습니다. 여성들은 베푸는 사랑을 할 때, 좋은 사랑을 한다는 칭찬을 듣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주는 것인 동시에 받는 것입니다.
부디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사랑을 하십시오. 주고, 받으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주기만 하고 받지 않는다면, 여러분도 그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여러분 내면에서 작지만 진실된 목소리가 말해줄 것입니다. 우리 여성들은 너무도 자주 사회화에 의해 침묵에 길들여져왔다는 것을.
그 목소리를 침묵시키지 마세요. 대담하게 받으십시오.
졸업을 축하합니다. (2015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