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요즘 몇 번의 강연 비스무레한 것을 했는데 ‘과학에 대한 글을 잘 쓰는 방법은?’ 내지는 ‘과학작가가 되는 방법은?’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왜 그런 것을 저한테 물어보시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입니다. 저 전업 블로거 아니거든효? 전업자까는 더더욱 아니고… 그런데 여튼 과학자/과학도로써 과학에 대한 글을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과학에 대한 글을 써 볼까’ 하고 한 번쯤 생각하는 업계 양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1. 님 정도면 충분히 글을 잘 쓸 수 있다
많은 과학자들에게 ‘한번 네가 하는 연구에 대해서 글을 써 보지 그러냐’ 하면 ‘ㄴㄴ 저 글 재주 없음’ 내지는 ‘그런 글 써도 누가 읽는다고’ 하고 손사래를 친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과연 글재주가 없는가? 적어도 직업적으로 먹고사는 과학자의 일의 최종단계는 연구결과를 논문이라는 형태로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일이다. 최종 단계가 논문이라고 치고, 그러면 첫 단계는? 돈이 있어야 연구를 하지. 돈은 어떻게 나오나? 돈이 나오려면 ‘내가 할 이 연구가 엄청 중요하니 돈 쫌 주세여 흐엉흐엉’ 하고 물주(?)에게 읍소(?)를 해야 한다.
읍소를 한다는 게 뭐 진짜로 부잣집 대문 앞에서 거적떼기 깔고 산발하라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연구제안서’라는 명목의 글을 써야 한다. 즉, 어차피 과학자로 먹고 살려면 글을 써야 되며, 잘 쓰면 잘 쓸수록 좋다. 과학자로써 먹고 사는 데 필수적인 어떤 글을 쓸 때 문제가 없다면, 과학에 대한 글을 쓰는 것 정도야 정말 큰 문제가 없다. 저는 아직 논문/보고서 잘 못쓰는데요…라면? 그럴수록 더 연습해야지!!
2. 자신이 잘 아는 내용부터 쓰자
그래서 무슨 글을 쓰라고? 라는 생각이 드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연한 것 아닌가? 과학자라면 전공이 있을 것이고, 자기가 지구상의 다른 인류 99.9% 보다는 다 알고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일컬어 자신의 ‘전공’이라고 칭하는데, 일단 그 내용에 대해서 글을 써보자. 일단 자기가 제일 잘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글을 써야 좀 더 글이 쉽게 써질 것 아닌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니 내 전공과 같은 것은 이 분야에서도 극히 적은 사람이 관심있어 하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 글을 써 봐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을 것인가”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근데 뭐 그게 중요한가? 일단 자신이 제일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 글을 쓰려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과학에 대한 어떤 글을 쓰든 전국민이 다 관심을 보이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기억해라. 지금 님은 전업자까로 데뷔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니깐요.
그리고 자기 전공에 대해서 글을 쓴다고 해도 무턱대고 해당 분야 연구자 전세계에서 5명만 아는 내용을 불쑥 꺼내지는 않을 것 아닌가. 아니 학회에서 발표를 해도 처음에는 해당 분야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한 Introduction부터 시작하지? 때로는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글은 그 ‘Introduction’ 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다.
여튼 자신의 주특기에 대한 글을 충분히 많이 쓴 이후에는 그 관심을 조금씩 주변부로 넓혀가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그러나 어쨌든 처음은 별도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내용부터 가볍게 써 보는 것이 좋다.
3. 많은 사람들이 읽을 것이라는 기대는 일단 접어둔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일반적인 사람들은 당신에게… 아니 과학에 큰 흥미가 없다-.-;;; 지금에야 글이 올라오지 않아도 수백명 수준의 방문객이 꾸준히 찾아오지만, 처음 블로그를 파고 나서는 하루에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아마 본인 자신의 입장기록으로 생각되는…)의 사람들이나 찾아오곤 했다. 여튼 당장 글을 어딘가 올린다고 해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서 악플을 달아줄(…) 기대를 하는 것은 성급하다.
그런 기대를 버리고 그냥 마음 편히 글을 올리자. 어차피 웬만하면 사람이 안 올거야. 어차피 당신이 하는 연구에 대해서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신경을 안 쓰는데, 뭐 글이라고 크게 틀려지겠냐.
4. 굳이 쉽게 쓰려는 생각을 버리자: 읽힐 글은 읽힌다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편한 게, ‘에이, 어차피 여기 별로 많이 오지도 않잖아? 그냥 내가 일기장 쓰듯이 써야겠다’ 하고 아무 글이나 자유롭게 쓰게 된다. 그제서야 님의 진솔한 모습에 감동받은 사람들이 하나씩 꾸역꾸역 몰리게 되는데…
따라서 과학 관련 글을 쓸때도 ‘과연 내가 이런 전문용어를 쓰면 사람들이 알아들을까?’와 같은 강박관념은 가능한 버리는 것이 좋다. 어차피 많이 안 읽을텐데 그런 거 왜 신경쓰는가. 그냥 마음대로 써버린다.
설명이 없으면 알아듣기 힘든 전문용어? 전문가만 읽으면 된다. 해당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라서 구체적인 용어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당신 글 자체에 뭔가 읽을 만한 거리가 있다고 느껴진다면 읽을 사람은 읽는다. 비전공자는 구글을 못 쓰는 것도 아니고(…) 읽다가 모르는 용어 나오면 알아서 구글에서 찾아 볼 것이다. 당신이 굳이 다 일일이 설명 안해줘도 된다!
즉, 어떻게 써도 읽힐 글은 읽힌다.
5. 이슈가 되는 내용이면 뭔가 써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자
많은 분들이 알파고가 이슈가 되면 알파고에 대해서 한번쯤은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고, 중력파가 발견되었다면 중력파에 대해서 한번쯤 거들어야 할 것 같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것 같다. 하긴 인공지능 전문가나 중력파 전문가라면 ‘물 들어올 때 노 젓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그 기회를 잘 활용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평소에 인공지능이나 중력파에 별로 관심도 없던 분들도 이런 게 이슈가 되면 관련 글(로 분류해야 할지 말지도 모를)을 쏟아놓는다. 그러나 자신이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서 이슈가 된다고 글을 쓰는 것은 그닥 바람직스럽지는 않다.
뭐 이것은 어떻게 보면 셀프 디스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현재까지 이 블로그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려왔을 때가 오보카타 사건 때의 글이었는데… 솔직히 지금은 그때 그 글을 왜 썼을까 하는 생각이다.
5. ‘걸작’을 쓸 생각 하지 말고 일단 많이, 지속적으로 쓰자
그렇게 해서 글을 쓰다 보면 좀 힘이 들어가게 되고, 짦게 끝낼 소재였던 글이 무슨 대장편이 되가는 경향이 생길수도 있다. 그런데 당신의 본업은 ‘자까’가 아니고, 본업이 바빠진다든지 하면 그런 글은 차차 완성이 늦어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글을 지속적으로 쓴다는 최초의 계획은 어디로 가고, 기껏 만들어 놓은 블로그에는 처음에 올린 몇 개의 글만 남아있는 경우가 빈번해진다…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그렇게 부담없이, 길지 않은 분량의 글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버릇을 들여보자. 완벽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일단 올리고 수정하면 된다. 논문처럼 논리에 뭔가 실수라도 보이면 ‘너님 리젝!’을 외치는 리뷰어도 없다. 당신의 과학 관련 글의 ‘편집장’은 바로 당신인데 뭐가 걱정인가? 바로 어셉트!
(아아 PNAS 멤버인 양반들은 대충 쓴 논문을 PNAS에 던질때 이런 기분이겠구나!)
6. 자신만의 영역을 찾자
그래서 지속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고 자신의 블로그에 어느 정도의 글이 올라오게 되었다. ‘무플보다는 악플’이라는 말처럼 가끔 글에 달리는 리플에 기뻐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신경써야 할 부분은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저 앞에서 한 ‘이슈가 되는 내용이면 뭔가 써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자’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적어도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고정 독자가 생기기기 위해서는 “이 사람에게서는 어떤 분야의 정보를 주는 글을 기대할 수 있다”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가령 어떤 맛집이든 대개 여기에 가면 시그니처 요리로 뭐뭐뭐가 있다고 하듯이, 당신의 블로그와 SNS를 읽으면 어떤 종류의 글들이 있으며 이러한 정보에 대해서는 ‘이 사람이 따봉입니다’하는 그런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자신의 전공에 관련된 한가지 주제의 글만을 쓴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가끔은 소재의 문제가 아닌 특유의 문체, 주제의식, 형식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당신의 글을 보는 ‘단골손님’이 생기려면 당신 이외의 사람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뭔가’가 있어야 하고, 그걸 만드는 것은 뭐 개인 재주가 아닐까.
7. 글의 ‘유통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유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잘 팔리지 않듯이 내용이 좋은 글이라도 유통이 잘 되지 않는 경우에는 많은 독자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즉 무슨 인쇄매체에 원고료 받고 쓰는 글이 아니더라도 글의 ‘유통 채널’을 고민할 필요는 있다. 즉 구석탱이의 포털에 판 블로그에 올린 내 글을 어떻게 알고 사람들이 찾아오게 할까?
최근의 본 블로그 유입을 조사해 보면 압도적으로 페이스북에서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페북 분점을 만든 것은 블로그의 글을 홍보하기 위함이었다. 비록 요즘은 페북에 짤막한 글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서 분점과 본점의 위치가 아리까리해지긴 했지만.
여튼 자신이 트잉여 페잉여SNS 사용자라면, SNS는 자신의 글을 홍보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요즘은 SNS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소식들만 접해도 하루가 훌쩍 지나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당신이 만든 블로그에 일부러 접속하여 최신 글을 일일히 확인하실 분은 생각보다 없다.
국내 포털의 블로그를 이용하면 좋은 점이라면 가끔 포털 일면에 글이 떠서 어마어마한 노출을 기록하는 횡재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대중들이 관심이 있을 맛집, 연예인, 시사 블로그에는 적합한 홍보방법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봤자 많은 사람이 관심이 있지는 않은 과학블로그라면 별로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8. ‘자까’로 먹고사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깨닫자
주변에서 가끔 ‘책은 안 쓰냐’ 내지는 ‘전업블로거냐’ 뭐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 근데 사실 대한민국에서 책, 그것도 과학책 써서 먹고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과학책 뿐 아니라 대개의 책은 한국에서 잘 안 팔리고, 책이 재판을 찍지 않고 초판만으로 끝났을 경우에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별로 안 된다. 아마 ‘초짜 포닥 한달치 월급(연봉이 아니다!)’이라고 생각하면 적절할지도.
이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현상인데, 약 10몇 년 전에 컴퓨터 관련서적 번역 (이라고 쓰고 편저라고 읽는다) 과 같은 알바로 용돈벌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책 1권 번역 후에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 현재 단행본 한 권을 내서 초판만 찍는다고 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수익과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고, 즉 책 한 권을 써서 (번역이든 집필이든) 얻을 수 있는 액수는 책이 초대박을 치지 않는 이상 15년 전과 별로 다름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가 상승을 고려한다면 그때보다 훨씬 줄어든 셈이다.
즉 전업 집필로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님이 수십만 권을 팔아제낄수 있는 초 베스트셀러 작가, 가령 ‘아프면 환자지 청춘이냐 쓰바’ 같은 책을 쓰든지 하면 가능할런지 모르겠는데 과학책과 같은 마이너 분야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님 글을 좋아하시는 팬이 얼마나 있건 간에 당신은 전업 자까로 살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은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
9.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 수련이다
‘그럼 글을 써서 별로 돈을 벌지도 못할 건데 왜 시간 들여서 과학에 대해서 글을 쓰나’ 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아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공원에 올라가 뜀뛰기도 하시고, 아니면 산에 올라가서 폭포수 물을 쳐맞으며 수련을 하기도 하는 분들은 그거 하면 일당으로 시간당 얼마씩 돈이 나오니까 하는 거냐. 그냥 재미로, 혹은 몸 관리 때문에 하는 분이 대개 아닌가.
과학에 관련해서 글을 쓰는 것 역시 그렇게 바라보자. 자신이 하는 일, 혹은 조금 관련이 있는 일, 혹은 전혀 관련이 없으나 재미있어 보이는 과학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은 그냥 ‘재미’ 라고 볼수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기수련’ 이다.
가령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고 하자. 그냥 남이 쓴 글을 읽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그런 것들을 종합하여 자신의 언어로 글을 쓸 수 있는 경지가 된다면 좀 더 제대로 공부한 것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즉, 그냥 새벽에 일어나 웃통 벗고 무예를 연습하는 이소룡의 마음으로(…) 그냥 오늘도 한번 잡글을 내질러 보자. 이런 잡글 쓰다 보면 논문 쓰는 구라력도 저절로 늘더라. (레알. 참트루. 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