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보고를 안 해줘서 일 돌아가는 걸 모르겠다.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 본인이 저런 말을 자주 한다면, 인프라가 부실한 스타트업에 있기보다는 크고 번듯한 회사에 가기를 권한다. 스타트업의 특성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IT나 스마트 콘텐츠를 다루는 스타트업이라면 더더욱 자신이 이 조직에 맞는지 신중해야 한다. 본인도 힘들고, 주변도 정체시킨다.
남들은 별 탈 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도 본인 혼자 일이 돌아가는 걸 모르겠다면, 본인에게만 일 얘기를 안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저 본인이 다음 두 가지의 이유 때문에 업무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단챗방도 돌아가고 있고, 서류나 진행되는 파일도 클라우드에 착착 올라가고 있는, 그런 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가정 하에서다.)
- 스마트워크 적응력이 떨어진다.
- 관련 업무의 전문성이 떨어진다.
오늘은 쓸데없는 보고 회의가 스타트업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말해보고자 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내가 얼마나 이를 싫어하는지 토해내 보고자 한다.
회의를 안 하면 상황을 모르는 첫 번째 이유: 스마트워크가 뭔가여?
오프라인 회의를 통해 진행 상황을 듣지 않으면 일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통 스마트 툴에 취약하다.
(1) 카톡방을 스마트워크로 착각하는 유형
난 직원들하고 카톡 단챗방 하는데?
해봤자 소용없다. ‘카톡도 하는 젊은 나'(…)에 뿌듯해하지 말라. 카톡으로 기껏 회의하고서는, “그럼 지금까지 말한 걸 누가 정리해서 전체 메일로 뿌려달라”고 말할 거라면 말이다. 그걸 누가 정리하는가? 신입사원?
스타트업에서는 자잘한 업무를 따로 미룰 사람이 없다. 각자 혼자서 자기 업무에 따라오는 행정일부터 잡일까지 처리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냥 ‘스타트업을 하면 대기업 가는 것보다 빨리 대표 소리 듣고 임원 소리 듣고 하니까’란 생각이라면 부탁인데, 스타트업과는 맞지 않으니 좋은 데 취직하시라. 스타트업을 시작하려면 본인이 청소하고 컵 씻고 커피 탈 생각으로 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힙한 게 아니다. 대체로 구차한 거다.
카카오톡은 대화 기록이 사라지고, 다양한 확장명의 문서들을 보낼 수 없다. 기본적으로 업무에 취약한 툴인데도, v소통v을 해야 한다며 카톡방을 만들고 흡족해하는 조직을 많이 본다. 스마트워크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고 준비도 안 된 사람들끼리 소통 시늉만 하는 셈이다.
카톡방이 생긴 이후로는 윗사람이 저 하고 싶은 말을 아무 때나 하면서, 덤으로 군기까지 잡을 수 있게 됐다. 회사 카톡방?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일방향 군기를 ‘소통ㅋ’으로 착각하고 있거나, 그저 퇴근 시간 이후에까지 카톡으로 지분 지분 거리며 업무 기분을 연장시키고 있을 뿐이라는 데에 500원 건다.
(2) 보고 회의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여기는 유형
옛날에 다녔던 회사 중 하나는 운영진들의 연령대가 높고, 변화에 둔하며, 생각마저 고루해서 스마트워크 같은 걸 할 줄 몰랐다.
조사는 발로 뛰어다니며 하는 거지, 어? 인터넷에서, 어? 찍찍 찾아다 짜깁기한 게 무슨 조사야.
홍보는, 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찌라시 돌리고, 어?! 그렇게 힘든 거야. 무슨 인터넷에서 찍 글이나 올리는 게 홍보고 마케팅이야?
경영진들이 ‘인터넷’을 막연히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전산화니 업무 자동화니 하는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경영진들이 뭐하는지 알려달라고 보챌 때마다, 실무자들은 일하다 말고 수시로 정리해서 보고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때마다 경영진들이 하는 워딩이 똑같다.
보고를 안 해줘서 일 돌아가는 걸 모르겠으니까 회의한다.
진행 상황을 교류하기 위해 워크샵을 간다.
그리고는 내부 보고 회의니 워크숍이니 하는 데에 와서는 문장 지적하고 단어 지적하고 포맷 지적한다. 무슨 슈퍼직원 K여?
우리들끼리 효율적으로 일하려고 소통하려는 회의인데, 심지어 발표자의 태도나 발표 준비성까지 평가하고 앉았다. 그래서 그 보고하는 일을 하기 위해 누군가는 또 밤을 새야 한다. 주객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됐다. 보고 회의는 스마트워크를 할 줄 모르는 경영진을 떠먹여 줘야 하는 일종의 보육 서비스 같은 것이 되어 갈 뿐이다.
대기업이라면 좀 비효율적인 진행 보고 시스템이나 워크숍도 이해가 된다. 워낙 태스크가 많고 부서가 많으니까. 하지만 스스로 알려고만 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조직에서도 그게 무슨 대단한 필수 프로세스인 줄 알고 꼭 하려고 든다. 스타트업은 실행력과 속도가 생명인데, 스스로 ‘업무를 하는 듯한 느낌적 느낌’을 중요시해서 자기 날개를 꺾는 셈이다.
(3) 이메일의 대안을 상상하지 못하는 유형
이렇게 업무를 구시대적으로 만드는 것에는, 기존의 이메일 워크를 버리지 못한다는 것도 한몫했다. 맙소사, 그들은 이메일을 너무 사랑한다. 이들은 모든 일은 이메일로 와야 일이 일 같고 안심이 되는 것 같다. 그냥 내부 진행 파일조차도 꼬박꼬박 이메일로 보내야 한다! (클라우드 모름?!) 심지어 어떤 계정의 메일을 다른 계정으로 자동 전달하는 서비스도 설정할 줄 모르면서. 메일이 오면 스마트폰으로 알림이 오도록 하는 것도 몰라서, 문자로 알림까지 꼭꼭 보내게 만들면서.
작은 조직이라면, 내부적으로 교류하는 파일을 모조리 다 이메일로 보낼 필요 없다. 슬랙이나 잔디, 텔레그램, 트렐로, 마이크로소프트 365, 각종 클라우드 서비스 등 조직 성격에 맞는 걸 추천한다. 이런 걸 조금만 적극적으로 이용할 줄만 알아도, 남에게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게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정리해 달라. 내 앞에 프린트해다 놔 달라. 모든 메일을 나에게 참조해주고, 근데 메일은 내가 일일이 못 읽으니 일단 회의를 잡자. 지금 일하고 있던 애들 다 소집하라고 해. 다 보는 데서 네가 뭘 하는지 나한테 설명 점.
나는 저런 태도를 ‘늙은이들의 어리광’이라고 부른다.
(4) 스마트를 집어치우고 구식으로 일하는 방법
그래도 스마트워크가 싫다면, 구식으로도 일하는 방법이 있다.
-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모르겠으면 먼저 그간 쌓인 클라우드나 단챗방을 뒤적여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왜 자신이 모르도록 놔두냐고 원망하면서, 요새 젊은것들은 일을 못한다고 비난하면 좋다.
- 효율적인 시스템을 건의하는 사람에게 원래 조직은 그렇게 일하는 게 아니라고 고나리질을 한다. 개선할 부분을 놔두고 일부러 비효율적인 대기업 시스템을 고수하며, 큰 조직의 생태계에 걸맞은 나의 모습에 흡족해하면 좋다.
- 진행 보고하는 회의의 빈도가, 실무자들의 아이디어 회의 빈도보다 월등하게 높은 상태면 좋다.
- 진행 상황을 보고해달라고 지시한 다음, 온갖 세세한 것을 지적하며 자신의 전문성에 아랫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볼 것이라 상상하면 좋다. 이로써 자신이 조직을 장악하고 있다는 그립감도 충족시켜 줄 것이다.
두 번째 이유: 관련 업무의 전문성이 떨어질 때
만약 스마트워크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는데, 그래도 나 혼자 못 알아듣겠다면 그건 내가 관련 업무에서 충분히 선수가 아니어서 그렇다. 나 혼자서 별도의 설명을 계속 요구한다면 내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선수들끼리 ‘너도 선수라면 이 정도는 알겠지’하고 가정하는 기본 레벨에 못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자기가 모르는 이유를 자기 전문성이 떨어져서는 아닐까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남들이 ‘안 알려줘서’라고 생각하고 원망한다. 즉 잘 알려주기만 한다면 자신은 충분히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다고, 경영진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이건 정말 헬이다. 따로 설명해줘야 하는 사람의 시간과 노력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다른 업무에서는 충분히 전문가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전문성을 더더욱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이들은 대체로 자신의 경험 범위를 외부로 확장시켜, 해보지 않은 일도 ‘미루어 짐작’하는 상태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런 이들은 아무리 설명해준다 한들 자꾸 쓸데없는 질문을 하거나, 의미 없는 아이디어를 낸다. 아이디어를 발산하다가도 실행 단계에 와서는 예리하게 수렴해야 하는데, 이들은 그저 끝없이 발산만 하며 스스로의 아이디어력에 감탄한다. 아니 그걸 누가 개발해? (애초에 개발 단계에 들어섰는데도 아이디어를 무한정 확장해 내놓기만 한다는 점이 그들이 선수가 아니란 증거다.)
이들은 이 일이 그렇게 결정되어 올 수밖에 없었던 히스토리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이미 예전에 검토되었지만 기각된 아이디어를 자기만의 생각인 양 쏟아내며 업무를 정체시키는 것도 다반사다.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지 않은가? 이런 짓 반복하지 않으려고 전문성이 희석되어 있는 큰 조직을 박차고 나오지 않았던가? 우린 가족 아이가?
회의를 위한 회의: 친해져야지, 싫다고? 조직 부적응자구나
그냥 회의하는 행위 자체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일하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회의를 안 하면 불안한 것이다. 혹은 회의를 통해 얼굴을 마주 보고 끈끈한 정을 나누며 낯을 익히고 싶어한다. 이런 사람들은 일도 친한 관계에서 주고받고자 한다. 회의가 끝나면 술을 마시면서 서로의 흉허물을 나누는 사이가 되는 것도 필수다.
나 자체는 이런 타입에 가까운 것 같다. 회의하고 술 한 잔 기울이며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눠서 친해졌다는 기분을 즐긴다. 나는 보통 2차, 3차로 이어지는 헤비한 술자리에서도 술이 모자란 걸 아쉬워하며 끝까지 남는 사람 중에 하나다.
하지만 ‘친해지기’ 같은 소셜 절차를 밟지 않는 사람과도 일을 잘할 수 있고, 충분히 어색하지 않게 지낼 수 있다. 또한 사생활의 일부를 함께 나눠서 결속력을 다져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향하여 ‘조직 논리’ 운운하며 사회 부적응자라고 비난하는 걸 강하게 반대할 뿐이다.
물론 일의 종류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얼굴도 모르고, 성별도 모르고, 성격도 모르고, 정치적 가치관이나 종교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는 상대와 온라인 회의로만으로도 충분히 일 할 수 있다.
전화를(라도) 꼭 하고 싶다: 노 텍스트! 목소리를 들려줘!
나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닌, 전화와 오프라인 회의를 꺼린다. 전화나 오프라인 회의처럼 즉시 동기화되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순간은 물론 있다. 시급한 일이거나, 운전 중이거나. 약시, 손의 부상 등으로 문자가 힘든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라면, 상대가 원할 때 확인할 수 있는 문자를 선호한다. 상대가 스스로 정한 스케줄대로 우선순위의 일을 처리하거나, 회의를 하거나, 한참 집중하고 있는 흐름을 깨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전화보다는 문자가 훨씬 더 예의에 맞다고 느낀다.
전화를 걸어 진짜 목소리를 들려줘야 예의라는 사고도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띡 전화 거는 것보다 직접 찾아뵙는 게 예의지. 낯선 것을 무례로 퉁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늙는 거다.
텍스트로 정리할 능력이 없거나, 문자 치는 속도가 느려서 답답한 것이면서 ‘예의’ 운운하며 징징대지 말고 문자에 익숙해지길 권한다. 젊은이들에게는 ‘외국어/성격/외모/진취성/개성/창의성/건강/열정/애사심’까지 능력이라고 요구하면서 왜 자신은 고작 할 말을 텍스트로 정리하는 능력 하나 못 배양하는가.
결론: 모두가 일당백이어야 하는 스타트업에 어리광은 민폐다
물론, 멤버들이 인정하는 ‘생산적인 회의’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자주 있어도 괜찮다. 생산적인 회의라고 함은, 복잡한 의견이 교류되어야 하는 개발 토론라던가, 그 자리에서 결정이 나서 일을 부러뜨릴 수 있는 회의다. 또는 스터디라던가. 즉 회의를 통해 모두가 윈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워크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줄이려는 노력을 말한다. 일 돌아가는 걸 모르겠다고, 본인만 소외되었다고 원망하며 자주 호소하는 사람은, 자신이 받으려는 보고가 누군가에게 민폐로 작동한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모르겠다고 누구에게 묻는 순간, 대답하는 이에게는 ‘새로운 업무’가 된다. 답하는 사람의 시간은 시간이 아닌가? 그들의 본업의 흐름은 끊겨도 괜찮단 말인가? 자신의 게으름과 무지에 대해 상대방이 배려해주고 해결해줘야 한다고 믿는 것에 불과하지는 않은가?
일을 위한 일은 하지 않도록 시스템은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 배우는 걸 미뤄선 안 된다. 경영진이 새로운 툴, 새로운 인간 유형,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조금만 늦으면, 그 고통은 실무자에게 돌아간다. 스스로 배우는 걸 잠시 등한시하고, 자신이 해오던 방식대로만 해달라고 어리광 부리면 시스템이 개선될 기회는 영영 잃게 되는 것이다.
물론 위의 것들은 다 집어치우고 고루하게 일할 방법도 있다. 조직이 조금이나마 갖춰져서 일을 배우려고 하는 신입사원들이 있고 행정요원들이 있고 지원팀들이 있을 때이다. 즉 체계가 있을 때이다. 그럴 땐 이메일이 아니라 우편물로만 일을 해도 누가 뭐라하지 않는다. 체계가 있다는 건 모두가 한 발짝씩 그 뒤에 숨을 수 있다는, 행복한 것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임원이든 아니든 일당백을 해야 한다. 인력이 적고 체계가 없다버니 서로가 각자의 실무만으로 과중하다. 스타트업에서 조직 논리 들먹거리며 임원이라고 떠먹여 달라고 할 거면 그냥 큰 회사를 가는 게 낫다. 우아하고 간지나게 일할 수 없는데 대체 왜 스타트업에 와 있는 것인가.
원문: 괴벨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