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페이스북에서 <행복하려면 이런 남자와 결혼하세요>란 제목의 카드뉴스를 봤다. 한 페친이 공유해준 것이었는데, 1)연애할 때처럼 나를 늘 한결같이 사랑해주고, 2)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꽃 한 송이를 불쑥 선물할 줄 알고, 3)자상하고(잘 화내지 않고), 4)내가 존경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면서 나를 무시하지 않)고, 5)늘 내 편을 들어주고, 6)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가정적인 남자와 결혼하라고 했다.
당연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이 없어 하며 “이런 남자가 현실에 존재하긴 하냐(비현실적)”, “결혼하기 전에 이걸 무슨 수로 아냐(식별불가)”, “이렇게 바라는 것만 많은 여자는 필요없다(작성한 여성의 반성과 성찰 촉구)”와 같은 댓글을 남겼다.
모두 온당한 반응들이라 생각되나, 개인적으로 이런 글은 다른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고 본다. 이 리스트는 독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현재 내 연인이 결혼 상대로 적절한지 체크해보기 위한 리스트나, 이상적인 결혼 상대가 갖추어야 하는 덕목표 같은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리스트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결혼생활에서 실제로 하는 것들을 뒤집은 것이다. 한국의 남성들에게 결혼은 연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애와는 다른 국면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제 아내가 생겼으니 가정과 그에 부속된 각종 노동들은 아내에게 맡겨놓고, 그것이 주는 안정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커리어에 매진하겠다고들 생각한다. (이 리스티클의 기본적인 세팅에서 아내는 가정주부다.)
때문에 많은 남성들이 결혼을 기점으로 연애 때는 하던 여러 형태의 관계노동을 줄인다. 구태여 아내의 기분을 살피거나 맞추려하지 않고, 함께 하는 시간을 특별하게 보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미 바깥 일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가 아니던가. 아내의 사소한 불만에 치미는 짜증을 굳이 억제하지 않고, 인정과 관심에 대한 아내의 요구가 귀찮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리스티클은 많은 여성들이 실제 결혼생활에서 자신이 연애할 때만큼 존중받거나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가정을 돌보는 일이 온전히 자신에게 내던져져 있다는 사실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거꾸로 보여준다. 이 여성들의 목소리는 자신의 불행을 반죽하여 행복하려면 ‘이런 남자’와 결혼하라고 말하지만, 기실 ‘이런 남자’는 실제 높은 확률로 존재하는 남자들의 여집합들의 교집합이니 한없이 이상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바탕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어떤 남자를 피하면 좋을지 얘기해볼 수 있겠다. 일단 연애와 결혼이 분리돼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를 피하면 좋다. 같은 말인데, 가정을 돌보는 것이 여성(만)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나를 위해 가정을 돌볼 사람으로서 아내를 구하고 있는 남자도 피하면 좋다. 이런 남자들의 경우 뭔가 가정을 중시하는 것 같아 종종 가정적인 남자로 오인되기도 하는데… 아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의 구현을 여성에게 강요하는 남자다. 여성의 희생을 당연하게 전제하면서.
덧. 물론 남성 버전(‘이런 여성 만나라/피해라’)은 관계에 있어 남성들이 여성들의 어떤 모습에서 불만을 가지는지 보여주며 남성들이 바라는 이상 of 이상적인 여성상을 드러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키트리에 올라온 ‘남자가 결혼상대로 피해야 하는 여성 유형 8가지‘를 살펴봤는데, 할 말이 있어도 참고 자기 일 있어도 1순위는 가정이며 돈 아끼고 아침밥 잘 차려주는 여자라더라. 남성들은 아내가 할 말을 하는 것과, 자기 일을 중시하는 것, 돈 쓰는 것을 싫어하며 밥을 꼭 차려주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원문: 심야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