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이 현대 축구다 ①: 지역방어와 대인방어」에서 이어집니다.
압박의 기본은 ‘조직적’ 움직임
요즘 축구팬들은 선수들이 공을 뺏긴 뒤에 곧바로 달려드는 모습을 당연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대부분의 축구 팀이 이런 압박 전술을 일반적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압박 전술이 보편화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아리고 사키가 이끄는 AC 밀란이 압박 축구로 세계를 제패하면서 압박을 도입하는 팀이 부쩍 늘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압박의 원리는 무엇이며, 어떤 효과를 낼 수 있길래 오늘날 대부분의 팀이 압박 전술을 도입하게 된 걸까?
압박을 단순히 ‘어떤 선수가 강하게 상대를 제지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물론 틀렸다고 볼 순 없으나 그렇다고 맞다고 볼 수도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해당 행위는 압박이 아닌 포어체킹이다. 그렇다면 압박은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축구에서 압박이란 ‘공 주변에서 상대에게 숫적 우위를 점하며 공을 뺏으려 하는 행위’라고 일반적으로 정의된다. 즉 포어체킹이 개인 단위로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라면, 압박은 팀 단위로 상대를 ‘조직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다.
때문에 포어체킹은 압박 전술의 부분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여러 명이 상대를 포어체킹하게 되면 그것이 곧 ‘팀으로서의 압박’이다. 가령 공격수가 상대진영에서 상대에게 공을 뺏겼다고 가정하자. 상대에게 속공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공을 뺏긴 공격수는 곧바로 상대에게 달려들 것이다. 만약에 이때 혼자서 상대에게 달려든다면 이는 압박이 아닌 포어체킹이다. 반면, 주변에 있는 동료와 함께 공을 가진 상대를 포어체킹한다면 해당 행위는 압박이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압박은 팀으로서 행해지는 조직적인 행위다.
압박 전술의 효과
그렇다면 압박은 어떤 효과를 가져다주는가? 압박은 모든 전술에 영향을 끼친다. 차후 공수 전환의 원리, 볼 포제션 축구의 원리, 빌드업의 원리편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압박은 이 모든 과정에 관여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압박이 태동하기 이전과 이후의 경기 템포를 한번 살펴보라. 후자가 전자에 비해 경기 템포가 훨씬 빠르다. 왜냐하면 공을 뺏고 뺏기는 과정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즉 압박의 태동은 공수 전환이 잦아짐을 의미하고 이는 곧 경기 템포가 매우 빨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압박 축구로 인해 볼 포제션 축구가 완성되었다. 압박은 기본적으로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전술이다. 공을 뺏길 때마다 공을 탈환하기 위해 상대에게 달려들다 보니 체력이 금방 소진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때문에 경기 중에 체력을 보전하기 위해 볼 포제션 축구가 탄생하게 됐다. 볼 포제션 축구는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점유율 축구다. 즉, 아군이 공을 지속적으로 소유하는 축구를 뜻한다. 공을 지속적으로 소유하면 상대를 압박하는 경우도 줄어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체력 소모도 감소할 것이다.
압박이 탄생하기 전에는 아군의 수비 진영에서부터 빌드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압박이 태동하면서 빌드업에 관한 선택지도 많아졌다. 가령 상대 진영에서부터 상대를 압박할 때 아군이 빌드업하는 거리는 매우 짧다. 생각해보라. 상대 진영에서 공을 뺏어냈으니 당연히 공격을 시작하는 지점 역시 상대 진영일 것이 아닌가? 공을 뺏어낸 직후부터 공격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유념해두자. 상대 진영에 가까워질수록 빌드업을 하는 거리는 짧아진다. 만약에 압박을 거의 하지 않는 팀이라면 빌드업을 하는 거리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또한 압박은 상대를 방해하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예를 들어 상대를 공략하기 위해 상대 진영에 아군의 선수들을 다수 투입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과정에서 만약에 공을 뺏기게 되면 영락없이 한두 번의 패스로 위기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전방에 위치한 공격수가 다시 공을 재탈환하는 데 성공하면 정말 좋겠지만, 공을 뺏는 데 실패한다 하더라도 아군은 공격수의 압박 덕에 큰 이득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공격수가 상대를 압박하는 동안 아군에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공을 뺏어서 공격을 전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위기 상황을 내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압박 전술이 사용됨을 알아두자.
압박의 메커니즘
팀으로서의 압박이 구체적으로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이뤄지는지 알아보자. 앞서 압박은 상대에게 공 주위에서 숫적 우위를 점하는 행위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단순히 상대에게 수적 우위를 점하는 것을 압박 축구라고 할 순 없다. 왜냐하면 축구는 공간 싸움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공을 지배하는 것을 넘어 필드 위의 공간을 상대보다 효율적으로 통제해야지만 경기를 지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가령 아군의 왼쪽 측면에서 공을 가진 상대 오른쪽 윙어를 압박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를 마크하기 위해 아군의 왼쪽 윙어와 왼쪽 중앙 미드필더가 공 주변에서 상대 선수를 둘러싸며 압박할 것이다. 이때 공을 따내는 데 성공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에 상대가 탈압박하는데 성공한다면? 상대에겐 세 가지의 공격 옵션이 생긴다. 그대로 측면에서 공격을 전개할 수도 있지만 중앙의 빈 공간으로 쇄도해 들어갈 수도 있다. 혹은 근처에 있는 중앙 미드필더에게 패스해 빈 공간을 효과적으로 점유할 수도 있다.
중앙에 빈 공간이 생긴 이유는 왼쪽 중앙 미드필더가 상대 선수를 압박하려는 아군의 왼쪽 윙어를 도와주기 위해 측면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중앙에서의 빈 공간은 흔히 ‘위험 지역’으로 불린다. 왜냐하면 상대에게 경기 주도권을 내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중앙을 점유한 상대는 지공을 통해 중앙을 공략할 수도 있고 다른 쪽 측면으로 공격을 전환할 수 있다. 즉, 여러 가지 공격 옵션이 생기는 것이다.
압박 전술을 보완하는 커버플레이
압박은 상대에게 공을 따내는데 큰 이점을 지니는 공격적인 수비 전술이지만 상대에게 빈 공간을 내줄 수 있다는 큰 단점을 지닌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커버 플레이다. 다시 한 번 상황을 상기해보자. 빈 공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단순히 왼쪽 중앙 미드필더가 측면으로 이동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왼쪽 중앙 미드필더가 측면 압박을 하기 위해 이동함으로써 생긴 빈 공간을 주변의 다른 동료가 메꿔줘야 한다.
이때 근처에 있던 수비형 미드필더나 오른쪽 중앙 미드필더가 왼쪽 중앙 미드필더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 오른쪽 중앙 미드필더의 역할은 오른쪽 윙어가 대신한다. 하지만 오른쪽 윙어가 커버 플레이를 위해 중앙으로 이동하면 오른쪽 공간에 무인지대가 형성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오른쪽 풀백이 전진하여 공간을 최소화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를 L자 압박이라고 한다. 상대를 압박하는 모양이 마치 L자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론 이렇게 커버 플레이를 한다고 해서 빈 공간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중앙에서의 빈 공간은 없어졌다. 하지만 비록 오른쪽 풀백이 전진한다 하더라도 오른쪽 측면엔 빈 공간이 조금이나마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앙에서 상대에게 무인지대를 내주는 것보단 측면에 조그마한 구멍이 생기는 것이 훨씬 낫다.
아군이 커버플레이를 하지 않았을 땐 상대는 단지 한두 번의 패스 혹은 한 번의 돌파만으로 중앙의 빈 공간을 점유할 수 있다. 하지만 아군이 커버플레이를 했을 땐 상대는 반대편으로 롱패스를 날려야지만 측면의 작은 공간을 공략할 수 있다. 여러모로 커버플레이를 기반으로 한 L자 압박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L자 압박은 수비에서 공격으로의 전환(포지티브 트랜지션)을 좀 더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가령 커버 플레이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왼쪽 측면에서 상대의 공을 뺏어 낸다고 해도 금방 상대에게 숫적 우위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2, 3선의 다른 선수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하지만 L자 압박을 함으로써 간격을 좁힌다면? 아군 선수들 간의 간격이 좁아지기 때문에 상대에게 재압박을 당해도 공을 뺏길 가능성이 낮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축구는 공간과 수 싸움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 압박의 기본 원리에 대해 알아봤다. 한편 압박은 상대 진영에서의 압박과 중원에서의 압박, 그리고 자기 진영에서의 압박으로 나뉜다. 물론 세 상황 모두 기본적으로 L자 압박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공 주변에서 상대에게 숫적 우위를 점하는 것 역시 모든 상황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압박을 하는 위치에 따라 압박을 하는 목적, 압박의 강도 등이 달라진다. 이는 빌드업과도 상당 부분 연결되므로 압박의 구체적인 단계별 원리에 관해선 빌드업의 원리편에서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