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한국을 다녀갔다. 아니, 휩쓸고 갔다. 수차례의 대중강연, 한국의 권위 있는 학계 거물들과의 잇따른 대담, 수많은 언론 인터뷰 그리고 독자 사인회까지. 마치 세계적인 팝스타의 내한 일정 못지않게 대중적인 관심과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으니 이만하면 휩쓸었다는 표현도 그리 지나치지는 않으리라.
나도 그의 책을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6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의 대작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 숨에 후딱 읽어냈다. 학문의 경계를 날렵하게 넘나드는 그의 지적인 광폭 행보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가끔씩 튀어나오는 익살스러운 표현에 혼자 킥킥거리면서 정말 재미있게 『사피엔스』를 읽었다. 그래서 그가 한국에 와서 어떤 지적 자극을 던져줄지 많은 기대를 갖고 지켜보았다.
아쉽게도 그의 내한 기간 동안 제주에 체류 중이어서 대중강연에 직접 참석할 기회는 없었다. 그저 언론에서 연일 쏟아져 나오는 기사를 통해서나 그가 한국에서 어떤 말을 남겼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역사학자에게 인공지능 질문만 가득 던진 한국
그런데 기사를 읽다보니 갈수록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역사학자인 그가 한국에서는 대단한 인공지능 전문가처럼 간주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에서 ‘알파고 충격’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이고, 그의 책 마지막 장이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다보니 그와 대담을 나눈 학자들이나 그를 인터뷰한 기자들의 질문 대부분이 인공지능과 관련한 내용에 집중된 듯하다. 이렇게 질문이 인공지능에 집중되니 유발 하라리도 당연히 그에 대한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자연스레 기사 분량도 인공지능 관련 발언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한국에서 돌연 인공지능 전문가로 대접 받다 떠났다.
물론 유발 하라리를 굳이 역사학자라는 틀 안에 가둬 둘 필요는 없다. 『사피엔스』에서 그의 지적 행보는 역사학을 넘어 정치학, 경제학, 생물학, 공학을 자유롭게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깊이 있는 내공을 가진 인공지능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까지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미 국내 몇몇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인공지능 시대와 인류의 미래를 다룬 『사피엔스』 맨 마지막 장은 그 이전까지의 대단했던 다른 장들에 비해 빈약하고 다소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대저작의 마지막 10페이지에만 몰두한, 영양가 없는 담론
아마도 인류 문명의 탄생부터 미래까지를 빅히스토리의 관점에서 섭렵하려는 그의 야심찬 기획 속에서 이렇게 간략하게라도 미래 인공지능 시대를 언급하면서 책을 마무리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특히 인류 문명사가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을 거쳐 과학혁명에 이르렀다는 그의 핵심 논지에 비춰 볼 때, 과학혁명의 최종 단계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다루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언급한 인공지능이란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고 아주 독특할 것도 없는 책의 마무리 국면에 적합한 딱 그 정도의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이름 꽤나 날린다는 국내 학자들이 유발 하라리가 심혈을 기울여 쓴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내용에는 별 관심이 없고 마무리에 해당하는 십 여 페이지의 내용에만 온 관심을 기울이며 질문을 쏟아내는 것은 많이 민망한 상황이다. 또 유발 하라리를 마치 예언자 취급하며 인류의 미래를 점지해 달라는 식의 질문을 쏟아내는 일부 언론의 태도 역시 많이 부끄럽다.
실제로 이런 질문들에 유발 하라리가 내놓은 답변이란 것 역시 『사피엔스』에서 서술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차라리 알파고 충격 이후에 대거 소개된 국내외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진단과 전망이 훨씬 더 내실이 있다. 결국 요란했던 내한 일정에 비해 우리의 담론 영역에 그가 남기고 간 자양분은 별 영양가는 없어 보인다.
석학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석학이거나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받는 베스트셀러의 저자라는 이유만으로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과도하게 열광하는 풍조가 되풀이 되고 있다. 책을 산 사람은 엄청 많지만 정작 다 읽은 사람은 별로 없다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센델이 왔을 때도 그랬다. 십 수 년을 공부한 전문 학자들도 온전히 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슬라보예 지젝이 왔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그 목록에 이제 유발 하라리가 새로 등재됐다.
석학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마치 그들이 연예인인 양 열광적인 팬덤을 형성하거나 그들을 대상으로 집단화된 지적 허세를 과시하는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들을 마치 예언자나 메시아처럼 간주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들도 잘 모르는 심지어 크게 관심도 없을 한국의 현안에 대해 다짜고짜 묻는 것 역시 아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Do you Know PSY?”를 물으며 말춤 흉내를 내는 것이 덜 민망하다. 유발 하라리의 내한이 우리 사회에 이런 성찰이라도 남겨 놨으면 그나마 위안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