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지금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어프렌티스>라는 미국 예능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얻은 부동산 개발업자에 불과했다. 따라서 2016년 대선 레이스 초기에는 아무도 트럼프를 진지한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대선후보 선출이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트럼프는 거의 확정된 공화당의 대선 후보다.
정치적인 공정성과는 담을 쌓은
그의 인기는 대다수의 양식 있는 사람들에게 우려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그가 내뱉는 언행 하나하나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계급차별로 점철된, 정치적인 공정성과는 담을 쌓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 미국사회가 추구해왔던 모든 가치의 정 반대지점을 향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이고, 버니 샌더스가 당선되면 최초의 유대인 대통령이 될 것이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의 마지막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농담까지 떠돌 지경이다.
꼴통이라는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는
그는 꼴통이다. 물론 21세기 최악의 전쟁범죄자 조지 부시 주니어와 딕 체니 커플도, 그다음 대선의 부통령 후보였던 사라 페일린도 꼴통이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그들과 다른 점은, 자신이 꼴통이라는 사실을 전혀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더 놀라운 건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들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지지층에는 이전에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아닌) 제3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겹쳐있다. 이에 더해 사실 트럼프를 제일 싫어하는 건 전통적인 공화당 사람들이다. 엄밀히 말해 그는 정통 공화당의 가치관까지 깔아뭉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자타공인 꼴통인 셈이다. 그런데 그 꼴통이, 미국 대선판도를 흔들고 있다.
그러나 인류역사를 돌이켜보면 꼴통이 대중을 끌어모은 건 이번만이 아니다. 히틀러를 생각해보라. 그가 대중 앞에서 하던 연설 대부분은 그저 뒤틀린 망상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당시 독일 대중은 그의 연설에 최면처럼 빠져들었다. 요컨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꼴통들에게는 무언가 강렬한 매력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같은 꼴통들에게만 발휘되고 마는 그 매력이 가끔 때와 장소를 잘못 만나면 다음과 같은 사태들이 일어나고 만다.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종학살을 자행하거나, 2) 수십조 원을 들여 텅 빈 유정을 사거나 강바닥을 파고, 3) 혹은 머리카락과 이마의 경계선마저 불분명한 부동산업자가 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 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꼴통의 매력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꼴통적’ 매력의 실체
첫 번째는 공감능력이다. 고통받는 자와 같이 눈물 흘리고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바로 그 능력 말이다. 그가 지금까지 내세운 여성혐오, 이민자 혐오, 동맹국 배척의 발언들은 사실 공감의 결과다. 다시 말해 트럼프의 언행은 최근 미국의 정치적 행보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공감한 결과다.
그가 지금 앞뒤 안 가리고 막 나가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자기 지지자들의 감정선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내가 지금 길거리에서 총으로 사람을 쏴 죽여도 내 지지자들은 나를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건 실제로 총을 쏘겠다는 말이 아니다. 내 지지자들의 감정이 바로 그 직전까지는 허용할 거라는 확신을 표현한 것이다.
두 번째는 솔직함과 자신감이다. 사실 차별은 인간의 본성이다. 성차별, 인종차별, 약자에 대한 배척과 같은 본성은 인류의 문명화 과정에서 정치적인 공정성으로 순치됐다. 그런데도 이것들은 여전히 인간의 뇌 깊은 곳에 남아있다. 이 세상에는 지금도 차별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지금까지 숨죽이며 살아왔다. 그런데 억만장자 한 명이 대선후보로 나와서 그것들을 속 시원히 떠들어대는 거다.
남들이 차마 못 하는 말을 대놓고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용기를 의미한다. 그가 대선후보로 나와 이렇게 ‘용감한’ 차별적 언행을 하는 건 ‘이래도 내가 이긴다’는 자신감 때문인데, 실제로 후보경선에서 계속 승리함으로써 그 자신감이 가짜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게 된다. 더구나 이렇게 공식 석상에서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막말을 솔직하게 함으로써 그는 매력의 다른 요소인 솔직함을 덤으로 얻는다. 그는 인종차별주의자 꼴통일지는 몰라도, 비겁자나 거짓말쟁이는 아니다.
세 번째는 다름 그 자체다. 트럼프는 지금까지 등장했던 그 어떤 대선후보와도 같지 않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업가이고, 고등교육을 받았으면서도 입은 거칠다. 그가 내세우는 모든 주장과 그가 연설 중에 드러내는 모든 표정이나 제스쳐들은 2차 대전 전의 독일인이라면 익숙하겠지만, 전후 세대 많은 미국인들에겐 (비록 술자리에서는 익숙할지라도) 대통령 선거전에서 듣도 보도 못한 종류의 것들이다.
요컨대, 그의 매력은 매력의 보편적인 요소인 공감능력, 솔직함, 자신감, 새로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단지 그걸 얻어낸 방식이 다를 뿐이다. 그는 지금까지 미국에서 억눌려왔던 감정을 대놓고 내뱉으며 성공함으로써 자신의 자신감이 허상이 아님을 증명했고, 본인이 용감하고 솔직한 사람임을 보여주었으며,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참신함으로 그동안 미국사회에 숨어있던 진성 꼴통들의 심장에 불을 댕겼다. 나는 지금 미국 이야기를 한 거다.
원문: 싸이코짱가의 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