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사랑싸움’ 문화에 길들여져 있었다.
어릴 때부터 접한 미디어 속 젊은 남녀의 사랑은 종종 질투에 눈 먼 남자의 집착과 폭력이 사랑과 뒤엉켜 있었다. 주위 친구들도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으레 집착과 폭력에 노출된 일이 많았기에, 우리는 그것을 심각한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싸우지 않는 관계가 심심하고 싱거운 관계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헤어지고 몇날며칠을 집 앞에서 기다리던 전 남자친구의 행동은 사랑의 척도가 되었다. 상대가 쿨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사랑을 하기는 했나’하는 서운함을 느꼈다.
‘사랑싸움’?
5년 전 학생운동을 하며 만났던 남자친구 A는 로맨틱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사귀고 한 달 쯤 지나고 처음으로 그가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정색을 했을 때, 나는 너무 놀랐지만 이후 나를 너무 좋아하는 마음에 서운해서 그랬다며 용서를 구하는 그에게 매몰차게 대하지 못했다.
처음이 어려웠지, 그가 나에게 화를 내는 주기와 강도는 점점 심해졌다. 하루는 그와 싸우고 휙 돌아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저 멀리서부터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홍승은 거기 안 서? 야!!” 엄청나게 큰 고함소리에 새벽 2시 고요한 동네가 쩌렁쩌렁 울렸다. 나는 가슴이 쪼이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고,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막 뛰어 올라갔다.
2층 방에 올라가자마자 문을 걸어 잠갔다. 당시 나는 동생과 함께 원룸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화가 나도 이 앞까지 와서 뭘 어떻게 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쾅쾅 거리며 계단을 올라와서는 부서질 듯 현관문을 두드렸다. “야 문 열어. 야!!” 동생과 함께 숨죽이며 그가 얼른 사라지길 바랐다. 벌써 5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도 그날 그가 날 쫓아오던 목소리와 발소리,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떠올리면 손에서 땀이 난다.
“헤어지자”고 말한 나에게 다시 한 번 말해보라며 그가 방에 있던 책들을 하나 둘 내 주위로 던진 일도 있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던지지 않았지만 바로 옆까지 책들이 날아왔다. 한동안 멍하게 주위에 흩어진 책들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나도 이성을 잃고 신발을 신은 채 그대로 방에 들어가서 물건들을 다 뽑아 던지고 신발로 지려 밟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제발 내 인생에서 꺼져. 다시는 내 눈 앞에 띠지 마!”
그는 나를 거칠게 밀쳤고, 나는 더 악에 차서 “니가 뭔데 나를 밀쳐. 이 **야!”라며 욕을 한바가지 퍼붓고 집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펑펑 울면서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폭력마저 사랑이라 믿고 싶은 마음
화가 나지 않은 상태의 그는 로맨티스트였다. 그렇게 언어-물리적 폭력을 가한 뒤에는 항상 나를 찾아와서 꽃을 선물하거나 사람들이 많은 길거리에서 무릎을 꿇고 빌거나, 멋지게 차려입고 와서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가자면서 “이제 다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 맹세를 바보같이 왜 믿었느냐고 한다면, 심각한 두려움과 분노와 더불어 이별의 슬픔을 느끼다가 “짜잔-“하고 꽃을 들고 나타나서 사랑을 속삭이는 그를 믿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당시 나에게 있어서 그는 ‘폭력을 행하는 사람’이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해서 실수를 하고, 그래서 진심으로 미안해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루한 ‘사랑싸움’이 반복되면서 언젠가부터 그가 소리를 지르면 나도 같이 소리를 지르고, 그가 욕을 하면 나도 같이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를 괴롭혔던 생각은 그와 내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어느새 ‘그런 대접을 받을 만 한’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여겼고, 주변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다툼을 반복하고도 헤어지지 않으니, 네가 자초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데이트 폭력 희생자를 바라보며 ‘그럴 만해서’라는 잣대를 들이대는데, 사실 누구보다 피해자 스스로 가장 많이 생각하는 부분이다.
A와 헤어지고도 오랫동안 그 생각이 나를 괴롭혔는데, 후에 함께 있어도 나를 온전하게 존재하게 하는 사람과의 만남 후 내가 겪었던 폭력이 나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작은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악에 받쳐 욕을 하고 소리 지르는 나는 없었다. 폭력이 나로부터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해방되는 건 폭력적인 상황을 벗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그것이 ‘데이트 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5년이 지나서야 깨달은 것.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이었고, 학대였다.
나는 데이트 폭력 피해자였다
모르는 사람에게 당하는 폭력보다 한 때는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람에게 당하는 폭력이 훨씬 합리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렵다. 폭력인지도 긴가민가하고, 나도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만 같고, 그가 나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게도 되니까.
알린다고 해도, 결국 바로 폭력을 고발하고 헤어지지 않은 여자의 잘못도 있다는 말이 따라온다.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 와서 폭력을 고발하느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빠지지 않는다. 최근 <그것이 알고 싶다>의 ‘데이트 폭력’ 편을 보면서 가해자가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걸 보면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빠에게 맞으면서도 바로 엄마가 헤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폭력이 아니거나 엄마가 맞을만한 사람인 건 아니다. 누구보다 믿었던 남자친구에게 맞거나 정서적인 폭력을 당하고 바로 헤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여자의 책임이 있는 건 아니다. 그에게서 벗어나고, 스스로를 학대하는 관점에서 겨우 벗어나서 뒤늦게 피해 사실을 알린다고 해서, 그녀가 “왜 이제야 말하느냐”는 추궁을 들어야할 이유는 없다.
‘사랑싸움’문화, ‘데이트폭력’문화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합리인 공식을 들이대는 것은 맥락과 배경을 절단한 간편한 생각이다. 합리적인 폭력이 없듯, 마땅히 납득될 만한 합리적인 대응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문화와 상황 속에 존재한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나는 데이트 폭력 피해자였다. 내 친구들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 대부분이 그랬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원문: 홍승은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