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웃기면서 동시에 가장 시니컬한 작가인 커트 보네거트는 무라카미 하루키, 더글러스 애덤스 등 작가들이 좋아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공학과 문학의 길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1943년 2차대전 막바지에 징집돼 드레스덴 포로수용소에 갇히는 경험을 했는데요. 연합군의 공습으로 13만명이 몰살당한 이 지옥에서 살아남은 뒤 결국 반전작가로 거듭납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소방수, 영어교사, 자동차 외판원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글쓰기를 계속해 [자동 피아노], [고양이 요람], [제5도살장], [타이탄의 미녀], [챔피언들의 아침식사] 등의 소설과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등 풍자적 에세이집을 써냅니다.
드레스덴 공습의 끔찍한 현실을 목도했으면서도 그는 평생 유머러스함과 휴머니즘을 잃지 않았습니다. 웃음은 “안도를 갈구하는 영혼의 산물”이며 “두려움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라고 말하는 그는 어떤 주제라도, 심지어 아우슈비츠 희생자들 사이에도 아주 소름끼치는 웃음이 있었으리라고 말하는 천상 휴머니스트입니다.
2007년 작고 전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에세이집 [나라 없는 사람]에는 ‘문예창작을 위한 충고’라는 챕터로 창작론이 실려 있습니다. 여기 실린, 보네거트가 말하는 문예창작의 다섯 가지 유형을 살펴보겠습니다.
1. 구덩이에 빠진 남자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끝없이 접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사랑한다. 이런 이야기에는 저작권이 없다. 어떤 사람이 곤경에 빠졌다가 다시 일어선다는 내용이면 된다. 이 선이 대개 처음 시작했던 곳보다 더 높은 데서 끝나는 것은 독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2. 소년, 소녀를 만나다
평범한 누군가가 아주 평범한 날 우연히 기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무언가와 마주친다. “이런 세상에, 억세게 운 좋은 날이군!” 그러다가 “염병할!” 곤두박질치고 그러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초반부의 일상성에서 독자의 공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3. 신데렐라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우리의 주인공은 파티에 참석하려는 두 언니와 계모를 돕는데 정작 그녀 자신은 집을 지켜야 한다. 그녀는 더 슬퍼졌을까? 그렇지 않다. 그녀는 이미 상심할 대로 상심한 가엾은 소녀다. 이때 선녀가 나타나 그녀에게 스타킹과 마스카라, 그리고 파티에 타고 갈 교통수단을 선사한다. 파티에서 시계가 열두 번 울리면 우리의 주인공은 날개 없이 추락한다. 이때 그녀는 예전과 똑같은 수준으로 떨어질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미 날개를 달아본 그녀는 다시 무한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이다.
4. 카프카
매력도 없고 잘 생기지도 않은 젊은 남자에게 쌀쌀맞은 가족과 승진 가능성이 없는 고된 직업이 있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없는데 이야기는 더 지하로 내려간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기 위해 잠에서 깨어나보니 그의 몸이 바퀴벌레로 변해 있다. 무한하게 슬픔을 강조하는 이야기다.
5. 햄릿
햄릿의 구성은 신데렐라와 똑같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진실을 말하느냐 아니냐다. 유령으로 나타난 부왕은 햄릿에게 “나는 네 아비로다. 복수를 해다오. 나를 죽인 원수는 바로 네 삼촌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좋은 소식일까, 나쁜 소식일까? 셰익스피어 사후 몇백 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그 유령이 정말로 햄릿의 아버지인지 아닌지 모른다.
그건 햄릿도 모른다. 햄릿은 어머니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휘장 뒤에 숨은 사람이 삼촌인 줄 알고 찌른다. 그런데 쓰러지는 사람은 수다쟁이 폴로니우스다. 그리고 이후 진행에서 더이상 좋은 소식도 나쁜 소식도 없다. 햄릿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다 마침내 결투를 벌이고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는 그가 천국으로 갔는지 지옥으로 갔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래프를 위로도 아래로도 그릴 수 없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좀처럼 진실을 쓰지 못한다. 사실 우리는 인생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무엇이 좋은 소식이고 나쁜 소식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햄릿에는 진실이 있다. 진실이 담긴 이야기는 수백 년을 간다.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라. 예술은 생계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샤워하면서 노래를 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추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친구에게 시를 써보내라. 아주 한심한 시라도 괜찮다. 예술을 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는가! (참고: 커트 보네거트, [나라 없는 사람], 김한영 옮김, 문학동네, 31~44쪽)
커트 보네거트의 창의적 글쓰기 8가지 비법
1. 시간을 낭비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완전한 이방인의 시간을 사용하라.
2. 독자가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을 적어도 하나는 만들라.
3. 모든 인물은 무언가를 원해야 한다. 그게 물 한 잔일지언정.
4. 모든 문장은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 캐릭터를 드러내거나 혹은 행동을 진행시키거나.
5. 가능한 한 엔딩과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라.
6. 새디스트가 돼라. 주인공들이 얼마나 달콤하거나 순수한지에 관계없이 그들에게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게 하라.
7. 단 한 사람만 만족시키면 된다. 창문을 열고 세상을 향해 사랑을 나누려 한다면, 당신의 이야기는 폐렴에 걸릴 것이다.
8. 독자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최대의 정보를 던져라. 독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끝낼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벌레가 갉아먹더라도 아쉬워하지 않도록 말이다.
(참고: 8 Creative Writing Tips from Kurt Vonnegut, Screencraft)
원문: 유창의 창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