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베테랑>, <암살>,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2015년 한 해 동안 상영되었던,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들이다. 도합 50,875,790명. 대한민국 인구수(약 51,541,548명, 행정자치부)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다. 정말 많은 작품이 관객들을 찾았고, 관객들은 그만큼 영화관을 찾았다.
사람들은 영화의 이름을 기억했다. 감독의 이름을 기억했다. 배우의 이름을 기억했다. 제작사와 배급사는 기뻐했다. 작은 스태프나 엑스트라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남았다.
그리고 여기 영화의 흥행과 개봉을 전하는 뉴스에서도, 4천억에 가까운 그 영화들의 흥행수익을 알리는 자리에서도 찾을 수 없던 이름이 있다. 명찰을 달고 우리 앞에 서 있지만 영원히 보이지 않을 그 이름. 바로 영화관 아르바이트 노동자다. 그 모든 블록버스터와 흥행과 배급의 최전선에 선 이들.
나는 그의 목소리가 궁금했고, 이야기가 궁금했다. 영화관 알바 노동자였던 김민지 씨를 만난 건 지난 2월, 신촌의 어느 작은 카페에서였다. 그를 만난 기록을 여러분과 여기서 나눈다.
영화관 알바, 그냥 티켓 끊고 인사하는 게 다 아냐?
이찬우(이하 이): 반갑다. 영화관 알바는 언제 쯤에 한 건가. 혹시 지금도?
김민지(이하 김): 반갑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아니다. 작년 2월부터 7월 말까지니까 거의 6개월 정도였다. 일주일에 5일씩 일했다. 보통 빠르면 오후 다섯 시부터 열두 시까지였다. 쉬는 날에는 뻗어서 잠만 잤다. 영화관 알바를 그만두고, 지금은 홈쇼핑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이: 알바는 어떻게 하게 된 건지 궁금하다. 왜 영화관 알바였나.
김: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야 해서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했다. 채용공고를 보니 시급이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훨씬 높더라. 그때는 그게 주휴수당이 포함된 시급이란 걸 몰랐던 거다. 당시 시급이 6,700원 정도 됐다. 주휴수당을 빼면 최저시급 수준이었다. 영화관 알바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었다. 환상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는데, 끔찍했다.
이: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하다. 매점도 그렇고, 매표도 그렇고, 검표도 그렇고. 영화관 알바를 소개하는 이들은 꼭 꿀알바, 20대에 꼭 해봐야 할 알바로 묘사하지 않나.
김: 그런 소개를 보면, 일부러 당해보라고 저러나 싶다. (웃음) 우리 상영관에는 크게 네 가지의 포지션이 있었다. 수표와 매점, 매표, 카페다. 수표는 티켓을 확인하고, 안내하는 포지션이다. 영화관 입구에서 표를 검사하고 영화관까지 안내하거나 상영관에서 나갈 때 인사하는 것이 주 업무다.
고객들이 다 퇴장한 뒤 상영관을 청소하는 것도 일이다. 매시간 상영관 내부에 온도는 어떤지, 영상은 잘 나오는지, 음향은 어떤지, 화장실은 깨끗한지 체크하기도 하고, 홀이 더러우면 청소도 해야 한다.
이: 이것저것 일이 많은 포지션이겠다.
김: 매표는 손님들의 클레임을 가장 많이 받는 포지션이다. 티켓 판매가 주 업무인데 이 과정에서 할인해달라고 억지 부리는 손님, 업무처리가 느리다고 클레임 거는 손님, 영화가 재미없다고 환불해달라는 손님, 심지어는 줄이 왜 이렇게 기냐고 괜한 데 화풀이하는 손님까지 있다.
이: 스트레스가 많겠다.
김: 매점 포지션은 다른 포지션들보다 할 일이 훨씬 많다. 팝콘을 튀기고, 음료 시럽을 채워 넣고, 탄산도 갈고, 핫도그도 만들고, 주문을 받는다. 바쁠 때 가장 정신이 없는 포지션이다. 주문을 받으면서, 주문받은 것들을 준비하는 한편 비는 물건이 없는지 신경 써야 하는데 동료들과의 팀워크가 잘 맞지 않으면 힘들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영화관 알바가, 웃으면서 안내하고 그런 줄로 알았지. 그런데 사람과 사람의 일이지 않나. 고객들 대면 업무, CS가 가장 힘들었다.
이: 주로 어떤 포지션에서 일했나.
김: 매표 업무를 잘하지 못해서, 거의 수표랑 청소만 했다. 매점 일도 그랬다. 손이 많이 느려서 동료들에게 걸림돌이 됐다. 억울한 건,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도 없다는 거다. 처음에는 한 2주간 수표와 청소만 했었다. 그리고 나머지 포지션은 시간이 날 때 ‘알아서 가서 배우고’ 오라는 거였다.
그런데 친하지도 않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그러기 불편하지 않나. 그들이 체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역시 들어서 배운 거였다. 설명도 횡설수설이었다. 나중에 매니저에게 엄청 혼났거든. 너 대체 뭐 배운 거냐고. 가르쳐준 것도 없으면서.
이: 사람들 사이에서 심리적인 압박감도 많고, 힘든 일도 많았겠다.
김: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에 협동이 잘 이뤄져야 하니까, 새로운 사람에 대한 텃세가 많았다. 신입이 일을 못 하면, 뒤에서 욕을 해댔다. 안 들으려고 해도 들린다. 매니저들은 일을 못 한다고 면박을 주고, 스스로 자신감이 많이 없어졌다.
이: 매점 일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김: 많이 다쳤다. 특히 화상을 많이 입었다. 버터구이 오징어, 팝콘 기름, 뜨거운 물. 아직까지 손에 오징어 기계에 입은 상처가 남아 있다. 청소는 버터구이 오징어만 한 게 없다. 닦아도 닦아도 기름이 계속 나와. 초록색 수세미로 문지르다 보면, 나중에 수세미에 은빛이 나기 시작했다.
원래는 그 오징어를 너무 좋아했는데, 일하기 시작한 뒤로는 쳐다보기도 싫어지더라. 주문하는 것도 미안하다. 영화관 갈 때마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 영화관을 간 게 손에 꼽을 정도인 것 같다.
언제나 늘 죄송합니다. 그러나 왜?
이: 관리자들과의 충돌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
김: 관리자를 대하는 게 오히려 더 힘들었다. 지나치게 엄격했다. 업무를 하러 가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잠깐 휴식할 공간이 없어서 화장실에 가 몰래 쉬어야 했다. 그때는 악몽을 꾸면 꼭 관리자들이 나왔다.
이: 관리자들이 어땠길래 그러나.
김: 용모 검사를 받기 위해서 출근 시간보다 10분 먼저 대기해야 했다. 손톱 검사하고, 립스틱 잘 발렸는지 확인하고, 머리도 정말 단정해야 했다. 머리카락이 조금이라도 삐져나와 있으면, 엄청 혼나기 일쑤였다. “이것 하나로 고객들은 우리 상영관을 고객들은 지저분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너 하나 때문에 우리 상영관 이미지 다 망칠 생각이냐.”
그냥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다. 그런데 웃긴 건 그 시간은 근무시간에 포함이 안 된다는 거다. 바쁜 날에는 용모점검은 건너뛰고 바로 근무에 투입되기도 하는데 말이다.
이: 여섯 시가 근무 시간이면 다섯 시 오십 분까지 준비 다 해서 출근하는 건가. 그 10분씩만 합해도 몇십만 원은 더 받았을 것 같다.
김: 맞다. 더 짜증 났던 건, 단 1분만 지각해도 30분 지각한 걸로 처리된다는 거다. 29분 동안 근무한 건, 받을 수 없는 돈이었다. 만약 1분 늦게 퇴근한다 해도 그 돈을 더 받을 수는 없는데 말이다. 한번은 23분인가 늦게 퇴근한 날이 있었다. 워낙 바쁜 날이었거든. 그때 일한 것도 못 받았다. 그 돈을 제대로 받았어도 적어도 한 달에 2, 3만원은 더 받지 않았을까.
이: 옷을 갈아입고 준비하는 시간, 근무하지만 근무기록표에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 모두 ‘투명근무’인 셈이다.
김: 게다가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조차도 그렇다. 일하는 곳이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버스도 한, 두 번은 환승해야 하고. 알바가 있는 날은 일이 다섯 시에 시작돼도 사실상 세 시부터는 알바를 위해 준비하는 몸이어야 했다. 그 시간들, 너무 아까웠다.
이: 일, 이 분 걸리는 일도 아닌데 말이다.
김: 그러니까. 가면 사람들은 날 좋아하지도 않고, 일하는 거 힘들고, 진상에, 매니저에. 생각해보면 어떻게 버텼지. 영화관에서 일하지 않는 시간도 영화관에 메여 있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은 퇴근하고, 같이 일하던 언니와 밥을 먹으러 갔다. 카드를 내고, 영수증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이 나오더라.
이: 용모점검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옷은 어땠나. 어떤 멀티플렉스는 반팔만 있는 경우도 있다던데.
김: 반팔, 긴팔, 가디건이 다 있었지만 날씨와 별로 상관이 없었다. “고객들이 이때쯤이면 가벼운 의상을 원할 거야.” 알 수 없는 기준이었다. 유니폼이 얇아서 손발을 바들바들 떨면서 일해야 했다. 스타킹도 마찬가지였다. 이날까지는 검정색 스타킹, 이날부터는 갈색 스타킹. 립스틱은 사용할 회사, 제품까지 정해져 있었다. 그래도 남자는 용모에 관한 부분은 좀 나은 편이었다.
이: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나는 부분은 뭐였는지도 궁금하다. 가장 많은 차이가 나는 부분은 화장이었을 것 같은데.
김: 그렇지 남자는 화장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화장을 좀 대충하고 간 적이 있다. 매니저가 직접 파우치를 주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화장 제대로 해. 그런 얼굴은 아무도 안 보고 싶을 거다.” 거기다가 항상 웃으라고 하기까지. 그런데 일곱 시간 서 있는데 웃을 수 있겠나. 나중에는 얼굴이 그대로 굳어서 마비될 지경이었다. 내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구분이 안 갔다.
화장만 그랬던 건 아니다. 매일 렌즈를 끼다 보니 눈이 너무 아팠다. 각막염에 걸려서 시뻘게져서 눈물 나고, 눈곱 끼고. 눈이 너무 아파 뿔테 안경을 쓰고 간 날에는 미쳤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눈이 너무 아파서 썼다.”고 했더니, “뿔테가 이만한데 그게 되겠냐.”고. 남자들은 두꺼운 뿔테를 써도 아무런 제재도 없었다.
이: 관리자들도 그렇지만, 진상 고객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을 것 같다.
김: 가장 힘들었던 날이 있다. 매표를 맡은 날이었다. 영화 제목을 착각해 발권을 잘못했었다. 고객님께서 나중에 이러시더라. “야, 너 귀먹었냐?” 때릴 듯이 손을 들면서.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봤다. 너무 놀랐다. 아, 나 또 일 못 한다고 뭐라고 하겠지 싶어 쪽팔리기도 하고. 그게 트라우마가 돼서, 나중엔 매표를 아예 맡지 않게 되었다. 그런 말을 들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하다 뿐 아닌가.
김: 죄송하다 뿐이다. 웃으면서. 웃으면 또 왜 웃느냐고 욕먹고. 심지어 매니저한테 이런 얘기까지 들었다. 좀 엔딩이 슬픈 영화가 있었는데, 아직 영화 내용을 아직 모를 때였다. 웃으면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데, 슬픈 영화인데 왜 웃냐고 하는 거다. 또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천만 관객, 그 최전선에 서다
이: 마음이 아프다.
김: 고객들에게 쌍욕을 들어도 할 수 있는 건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너무 힘든데, 얼굴은 웃어야 하고. 귀먹었냐고 욕먹은 날에는 눈물이 막 터질 것 같은데 울 수가 없었다. 옆에 있는 분께 잠시 이야기하고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닦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추한 거다. 아이라인 다 번지고, 그런데 곧 사람 몰릴 시간은 다가오니 나가야겠고. 그게 너무 싫었다. 그래도 다시 웃으면서 일해야지 어떡하나. “난 기계야”라고 생각하며 일했다.
이: 인격적인 모멸감을 많이 느끼는 일이다.
김: 영화관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에, 스스로가 좀 달라졌음을 느낀다. 이상한 자격지심이랄까. 안 좋은 소리를 들었을 때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뭐라고 말하지 않으면, 깔보이는 것 같다. 너무 화가 나서 부들거리고. 전에는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성격이 참 변했다. 사람에게서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성격뿐 아니라 몸도 많이 나빠졌다. 새벽에 퇴근하고, 아침에 일어나 다시 다른 알바를 가는 생활을 반복했으니까.
이: 생활이 많이 망가졌을 것 같다.
김: 맞다. 살도 많이 쪘다.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먹을 걸로 풀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배달 음식 시켜 먹고, 늦게 자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살이 찔 수밖에 없었다. 건강도 정말 많이 나빠졌다. 그게 일을 그만두게 된 계기가 됐다.
이: 얼마나 안 좋아졌길래.
김: 생리 끝나고 일주일이 안 된 때였다. 검은 피가 엄청 흥건했다. 처음엔 치질인가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니었다. 너무 놀라서 산부인과에 갔는데, 혹이 큰 게 생겼다더라. 안 좋은 위치에 생겨서 하혈이 심하다고 했다. 혹을 제거해야 한다더라. 너무 깊숙한 위치에 있어서, 기구 넣어서 빼는 건 또 안 되고. 무서웠다.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안 좋은 경우엔 자궁을 들어내는 경우까지 있다.” 암, 수술,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미치겠더라. 아침에 피까지 봤는데. 너무 서러웠다. 그깟 돈 몇 푼 벌겠다고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울면서 직장에 갔다. 결국 그날 매니저와 상담해 퇴사했다. 매니저도 좀 고민하더니, 인원충원도 많이 됐고, 괜찮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이: 그래도 다행이었다.
김: 정말 다행이었던 건, 제일 무서운 바이저와 매니저가 안 나온 날이었다는 거다. 그날 있던 분이 제일 성격 좋은 분이 계셔서 그만둘 수 있었다. 알바해서 내가 500만원 정도 모았었다. 7, 8개월 일해서. 그 중에 120만원이 통원치료비와 약값으로 날아갔다. 지금은 문제가 없지만, 다시 무리하게 일하면 재발될 수도 있으니까.
이: 걱정되겠다.
김: 글쎄, 잘 모르겠다. 빨리 죽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1년 동안 일하고, 또 아프면서 느꼈던 건,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은 최전선에 몰려 있다는 거다.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부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말 정도는 해도 회사에서 징계할 수 없다는 법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거라도 믿고, 손님, 이러시면 몇 조 몇 항에 의하여 처벌받으실 수 있다고, 죄송하지만 진정하고 말씀해달라고.
이 정도만 말할 수 있어도 상처받는 일은 없을 텐데. 사람들이 알바를 막대하는 이유는, 이렇게 해야 ‘해준다’는 걸 알기 때문이고, 그렇게 대해도 항의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고, 기업이 알바를 그런 이미지로 만들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
이: 마음이 아프다. 영화관에 가는 게 일종의 길티 플레저일 것 같다. 나도 쿠키 영상을 기다리기가 너무 미안하더라.
김: 정말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저 밑에서 기다리는 시선이 느껴진다. 언제 나가나 하고. 사실 나도 그랬거든. 빨리 청소를 하기 위해서는 관객들이 빨리 나가는 게 좋으니까. 히어로물 같은 경우는 그냥 포기하고 들어갔다. <킹스맨>이나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상영할 때는 심지어 “왜 이런 영화를 만들어서 영화관 노동자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현실을 다 알고 있으니, 영화관에 가기가 너무 미안한 거다. 심야영화 보러 가기도 미안하고. 얼굴에 짜증과 힘듦이 서려 있는데, 그 심정을 너무 잘 아니까.
이: 요즘 <검사외전>과 <데드풀> 같은 영화들이 흥행하고 있다. 일할 때는 <어벤져스>나 <킹스맨>, <매드맥스>가 그랬을 것 같고. 일하는 입장에서, 이런 블록버스터들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
김: 짜증 난다. 그만둔 입장에서는 안 됐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영화들은 상영도 많은데. 무슨 30분 단위로 영화가 있고. 그런 것 볼 때마다 대한민국 영화계에 대한 걱정도 들고, 알바들도 안 됐고. 무슨 영화가 천만 관객이 넘고, 흥행수익이 얼마나 되고. 그 수익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알바들이 눈물을 흘리는지 싶다. 먼저 일했던 사람은 <명량>이 그렇게 힘들었다고 하더라.
이: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궁금하다.
김: 원래는 사회운동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집에 경제인구가 나뿐이어서. 내가 그만두면 안 되니까. 집을 먹여 살릴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일단은 굶는 일 없이 살다가, 부모님 돌아가시면 나중엔 고양이랑 같이 사는 게 꿈이다.
나날이 성장하는 극장, 하지만 알바 노동자의 처우는
민지 씨는 인터뷰가 끝날 쯤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실 내일 일했던 곳에 친구와 같이 <데드풀>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래서 좀 걱정이다. 사람들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일하는 사람들은 계속 일하더라. 모르는 척하고 싶다. 매니저 만나면 욕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많은 이들이 영화의 흥행수익과, 흥행성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수익과, 성적의 최전선에는 영화관 알바 노동자가 있었다. 영화관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없었다면, 과연 <국제시장>이, <베테랑>이, <암살>이, <내부자들>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길게 줄을 선 매표소 앞에 티켓을 팔 사람이, 허기진 배를 채울 팝콘과 콜라를 팔 사람이, 팝콘 부스러기가 쌓이고, 의자가 콜라로 젖은 상영관을 청소할 사람이 없는 영화관을 생각해본다. 이런 곳에서 과연 그 누가 영화를 볼 수 있을까.
배우들의 몸값은 수억대를 호가하고, 영화의 흥행수익은 수천억에 달한다. 그 몸값과 그 수익과 그 흑자의 반대편에 최저임금을 받아 일하는 영화관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있었다. 민지 씨는 월급이 얼마였냐는 질문에 120만원이라고 답했다. 야간교통비와 4대 보험료를 제하고 나면 100만원 안팎의 금액이 그가 쥘 수 있는 금액의 전부였다.
얼마 전 CGV가 시간대, 좌석별로 영화값을 달리하겠다며 개편안을 내놨다. 사실상의 요금인상이었다. 그리고 이는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다른 멀티플렉스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CGV는 늘 이 분야에서 선구자였다. 2016년, 주휴수당을 제외하면, 여전히 영화관 알바 노동자의 시급은 최저 수준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