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쌀 시장 개방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국내 쌀 소비량 증가 및 쌀 소비시장 저변확대와 직결된 쌀가공식품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고 있다.
과거 막걸리, 떡, 쌀국수, 쌀빵 등으로 쌀소비를 촉진하고자 하는 시도가 많이 있었지만, 전체 시장 규모는 연구개발에 투자되었던 비용 대비 많이 증가하지 않았다. 해외에서 꾸준히 잘 나가는 쌀 가공식품들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누구나 쉽게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쌀빵
2011년 일본 닛케이 트렌디에서 뽑은 2011년도 일본 히트 상품 베스트 30에 ‘GOPAN’이라는 쌀빵제조기가 스마트폰과 페이스북을 이은 4위로 발표되었다.
산요전기에서 2010년 7월 출시한 GOPAN은 생쌀에 물, 설탕, 소금, 쇼트닝, 이스트를 넣어주기만 하면 자동으로 쌀빵을 만들어주는 제품이다. 75만 원 가량 되는 고가의 제품이었음에도 시판 3주 만에 완판되었으며, 이후에도 예약은 필수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제품은 결국 1년 동안 20만대나 팔리면서 일본 전체 가정용 제빵기 시장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산요전기가 파나소닉에 인수되면서 파나소닉 브랜드로 지금도 계속 판매 중인데, 최근에는 먹고 남은 찬밥을 넣어 쌀빵을 만들어주는 기능을 추가하여 계속 인기몰이 중이다.
100% 밥쌀로 만드는 쌀빵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간 쌀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한 쌀 전용 제분설비에서 생산된 쌀가루라야 쌀빵을 만들 수 있는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GOPAN은 생쌀을 넣고 즉석에서 제분하여 쌀빵을 만든다. 특히 맛 품질에 있어서도 민감한 일본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만큼 굉장히 우수했다. 보통 일반적인 제분 방법으로 쌀가루를 만들면 전분 손상이 심해지고 빵 부풀기가 고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GOPAN의 제분 과정은 물을 넣은 후 약 4시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는데, 이로 인해 쌀 전분 내에 수분이 충분히 포함되어 발효 및 굽기 과정에서 빵이 고르게 부풀어 오른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후 이 제품의 성공은 쌀가루에 대한 선입관을 깨버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2012년 일본에서 발표된 쌀빵 관련 연구결과에 따르면, 쌀빵 품질은 손상 전분 함량보다는 가수량과 더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한다.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유추해보면, GOPAN의 오랜 습식 제분과정이 쌀가루의 수분함량을 충분하게 만들어 결국 적당한 품질의 쌀빵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장 글로벌한 쌀가공식품, 쌀국수
전 세계적인 글루텐프리 트렌드로 인해 쌀국수의 시장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고, 그래서 전 세계 어디에서든 맛볼 수 있는 글로벌한 식품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베트남, 태국 등지에서 만드는 쌀국수는 아밀로스 함량이 높은 인디카종을 사용하여 비교적 간단한 설비로 쉽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 주로 먹는 자포니카종은 아밀로스 함량이 낮아 쌀국수를 만들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쌀가루 성질의 차이는 쌀 전분의 차이에서 온다. 쌀 전분은 호화가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시작되며, 다른 전분에 비해 크기가 작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아밀로스는 이러한 쌀 전분의 특징이 더 강화되어 호화개시온도가 더 높고 크기가 더 작다. 그래서 쌀은 아밀로스의 함량이 높을수록 천천히 익고, 냉각 시 쉽게 수분을 잃고 노화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이 때문에 아밀로스 함량이 높은 쌀은 호화된 용액을 식힐 때 높은 온도에서 빨리 굳게 되며 강한 면발을 형성하게 된다.
그동안 국내산 쌀로 쌀국수를 만들 때는 식감 때문에 호화품질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동남아식 쌀국수 제조원리에 따르자면 오히려 신속한 표면노화가 쌀국수 형성에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표면노화가 진행된 면은 삶는 시간이 길어져 소비자 선호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상대적으로 조리시간이 짧은 라면 기준으로만 생각하는 데에서 오는 편견일 뿐, 일반적으로 파스타 삶는 시간도 충분히 길다는 점에서 정확한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쌀국수만의 특별한 조리법을 이해시킨다면 시장에 정착하기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알러지가 없는 건강음료, 라이스밀크
최근 우유 유해론이 인터넷과 SNS 등을 타고 급속히 전파되면서 우유 대체품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우유 대체품으로서 Non-Dairy Milk 또는 Milk Substitute 등의 카테고리로 제법 많은 제품이 런칭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중 식물 유래 우유 대체품의 대표적인 아이템은 두유이고, 곡물 유래 우유대체품 중에서는 미유, 즉 라이스밀크(Rice milk)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아몬드 밀크, 오트 밀크 등이 있고, 최근에는 대마에서 만든 헴프 밀크도 등장했다.
라이스밀크는 미국, 유럽, 호주 등 서양 여러 나라에서 쌀을 먹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최근 글루텐프리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쌀 우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태이며, 근래 인터넷을 통해 만드는 방법이 다양하게 공유되면서 시장 또한 점점 확대되는 중이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생쌀 또는 익힌 쌀에 물을 적당량 붓고 끓인 후 충분히 식혀서 믹서로 곱게 갈아내어 거름망으로 찌꺼기를 걸러내면 된다. 여기에 기호에 따라 소금 또는 바닐라 향을 첨가할 수 있는데, 영양을 강화하려면 백미 대신 현미, 쌀겨를 첨가해도 된다.
이렇게 만든 라이스밀크는 당을 전혀 첨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달지 않고 칼로리가 낮다. 또한, 현미의 영양성분이 함유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존에 출시되었던 쌀 음료와 다르다. 특정한 맛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거부감없이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해외에서는 시리얼용으로 우유 대신 사용하거나 커피에 우유나 프림 대신 첨가되며, 일반 우유에 들어있는 콜레스테롤이나 유지방을 피하기 위해 또는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들이 먹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라이스밀크의 가장 큰 장점은 알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식이나 아토피처럼 면역 관련 질환이 있는 어린이, 노인, 환자들에게 매우 좋은 건강식이 될 수 있다.
쌀은 밥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해외에서는 다양한 쌀 가공식품을 개발하여 섭취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계속 비슷한 유형의 제품만 시장에서 반복 출시하는 매우 심각한 답보상태이다. 이러한 해외와 국내시장 간의 가장 큰 차이는 쌀에 대한 관점에 있다고 본다.
해외에서 쌀은 여러 가지 곡물 중 하나로서 조리할 방법이 밥 이외에도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밥용 쌀만 생산하고, 밥용 쌀로 식품을 만들다 보니 개발할 수 있는 쌀 가공식품 범위에 한계가 있다. 이런 이유로 밥으로는 먹을 수 없으나 물성이 다르고 생산량이 월등히 높은 가공용 쌀 재배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또한, 쌀가루의 특성을 충분히 연구하지 않은 채로 무리하게 제품을 출시하다 보니 제대로 된 쌀가공 신제품이 나오기 힘들어 보인다.
현재 국내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쌀 가공식품 시장 확대는 필연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범국가적 흐름이다. 이에 부합하는 제품을 만들고 국내 쌀가공식품 시장을 좀 더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내 관점에 한정된 기술 개발보다 외부를 향한 눈과 귀를 열어야 할 것이다.
원문: 여러가지 식품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