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뉴욕타임즈의 기사 <Streaming TV Isn’t Just a NewWay to Watch. It’s a New Genre>에 간략한 코멘트를 달아 구성했습니다.
선 3줄 요약.
- 스트리밍 TV 시청은 기존 텔레비전 드라마 시청의 또 다른 방법이라기보다는 게임이나 독서같은 새로운 장르의 콘텐츠 소비로 간주해야 한다.
- ‘몰아보기’는 일반적인 TV 시청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주기 때문이다.
- 새로운 장르에는 그에 꼭 맞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이 필요하고, 스트리밍 TV는 이제 그 길을 찾아가려는 중이다.
스트리밍 TV는 이 글에서 ‘넷플릭스나 아마존 같은 회사들이 제작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 전 회차를 한꺼번에 풀어, 시청자가 한 번에 몰아볼 수 있는 온라인 동영상 콘텐츠’로 정의합니다.
몰아보기라는 새 ‘장르’ — TV 시청이 아니라 게임이다
넷플릭스는 <카드 오브 하우스> <나르코스> 같은 자체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 회차를 한꺼번에 풀어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한 시즌 전체를 한번에 몰아서 시청합니다. 이것을 ‘몰아보기’, 영어로 binge-watching이라고 하죠.
이를 보다 보면 정해진 날짜, 정해진 시간에 주기적으로 한편씩 방송되는 에피소드를 보는 전통적 시청 방식은 이제 굉장히 ‘인내심을 요하는’ 방식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몰아보기는 단순히 인터넷 기술 발달에 따라 텔레비전을 보는 새로운 방식이 하나 더 늘어난 것에 불과할까요? 지금 소개하는 뉴욕타임즈 기사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연속극을 시청할 때 우리는 TV의 리듬에 우리의 리듬을 맞춥니다. 반면 넷플릭스 자체 제작 드라마 같은 스트리밍 TV를 볼 때 우리는 전혀 다른 리듬에 따라 삽니다. 밤을 새워 20회가 넘는 전체 회차를 한번에 봐 버립니다. 완전히 몰입한 상태로 10시간 이상 시간을 집중적, 연속적으로 투자한다는 점에서 스트리밍 TV는 게임과 비슷합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친구가 ‘밤새워 15화까지 봐 버렸어. 짱이야!’ 등등의 글을 올립니다. 묘한 경쟁심이 생기고, 얼마나 빨리 완결을 보느냐가 마치 게임 레벨업처럼 느껴집니다.
혹은 장편소설을 읽는 것과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방송사의 스케줄이 아니라 자기가 정한 스케줄에 따라 자기 페이스대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요.
이런 소비 방식의 차이는 시청자가 내용을 받아들이는 데도 차이를 일으킵니다. 필자는 평범한 사람이 범죄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를 예로 듭니다. 각 에피소드를 시간을 두고 본 사람은 주인공이 ‘천천히 악의 길로 타락해 간다’는 느낌을 받는 반면, 몰아보기 시청자는 ‘주인공 내면에 이미 악이 항상 잠재해 있었다’는 인상을 받는다는 것이죠.
보통 TV 드라마가 첫 회 파일럿 방송분에서 시청자를 확 사로잡아야 한다면, 몰아보기를 하는 스트리밍 TV는 좀 더 여유가 있습니다. 한 시즌 전체를 파일럿으로 간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캐릭터 설명이나 배경 설정에 보다 많은 시간을 두고 충실히 구성할 수도 있겠죠.
지금의 방송 프로그램은 잊어라
이렇게 포맷이 달라지면 내용, 혹은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끝날 때 다음 화를 궁금하게 하는 내용을 집어넣고, 중간 광고를 염두에 두고 스토리 전개를 만들어 가는 기존 드라마의 문법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TV가 영화의 문법을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듯 스트리밍 TV도 자기만의 성공 방정식을 찾는데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마치 웹툰이 ‘만화’를 벗어나 독자적인 스토리텔링이나 연출 기법을 발견해 나가는데 시간이 걸렸듯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웹툰을 통해 디지털 미디어의 몰아보기 욕망을 이미 경험해 봤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내일 시험이 있어도, 출근해야 함에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정주행의 욕망’! 그리고 우리는 과거 연재분, 혹은 미공개 상태의 다음 회차에 가격을 붙여버리는 방식으로 유료화까지 성공해 버렸지요.
우리나라는 아직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사와 무관한 곳에서 대규모 온라인 방송 콘텐츠를 만든 사례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은 스마트폰, 토렌트, 웹하드로 방송 시간의 굴레를 벗어 자기의 리듬대로 방송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72초 드라마나 몬캐스트처럼 기존 방송의 문법을 탈피해 모바일에 맞는 방식을 제시하는 영상 콘텐츠가 나오고 있습니다. 나영석 PD 같은 엘리트 방송인이 인터넷 전용 방송 <신서유기>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더 가까이하는 새 미디어, 새 기기, 새 포맷에 맞춰 새로운 콘텐츠(와 새로운 수익 모델)를 만들어 내야 하는 폭풍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길이 안 보이는 듯하지만, 어느 날 불현듯 정신을 차려보면 승자가 나타나 있지 않을까요?
후 3줄 요약
- 스트리밍 TV 시청은 기존 텔레비전 드라마 시청의 또 다른 방법이라기보다는 게임이나 독서 같은 새로운 장르의 콘텐츠 소비로 간주해야 한다.
- ‘몰아보기’는 일반적인 TV 시청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주기 때문이다.
- 새로운 장르에는 그에 꼭 맞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이 필요하고, 스트리밍 TV는 이제 그 길을 찾아가려는 중이다.
결론. 새 술은 새 부대에.
원문: 한세희의 Medi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