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 호건은 오늘날 프로레슬링 ‘산업’이 존재하게 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0년 가까이 프로레슬링의 상징적 존재로, 어린이들의 우상으로 빛나는 커리어를 쌓아 왔습니다.
하지만 60이 넘은 지금 그의 말년은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선수로서 예전만큼 활약할 수 없는 건 당연하겠습니다만, 사생활 스캔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 탑을 허물고 있는 점은 안타깝습니다.
특히 그의 동영상 유출 사건은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 라디오 DJ인 친구 토드 클렘(그는 후에 이름을 버바 더 러브 스펀지 클렘으로 개명합니다!)의 부인과 성관계를 맺는 장면이 찍힌 영상이 유출된 것입니다. 2012년 각종 가십, 테크, 게임 등 분야의 여러 온라인 미디어와 블로그를 운영하는 고커 미디어라는 회사가 이 동영상을 1분 조금 넘는 정도 분량으로 편집해 자사 온라인 미디어에 올렸습니다.
1630억 원짜리 동영상
헐크 호건 (본명 테리 볼리아)은 사생활 침해로 인한 피해를 배상하라며 고커 미디어에 1억 달러 규모의 소송을 냈습니다. 고커 미디어는 표현의 자유 원칙을 내세우며 맞섰습니다.
몇 달 전 그 재판 1심 결과가 나왔습니다. 법원은 3월 18일(현지시각) 헐크 호건의 정신적 고통에 6000만 달러, 경제적 손실에 5500만 달러 등 총 1억150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당초 헐크 호건의 요구보다 많은 액수가 부과됐습니다. 이어 21일에는 징벌적 손해배상금 2500만 달러도 물라고 판결했습니다. 고커 미디어는 총 1억4000만 달러(약 1630억 원)의 배상금을 물게 됐습니다. 물론 항소하겠죠.
이 재판은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의 범위와 한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건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인기 연예인 헐크 호건의 성관계 동영상은 보도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표현의 자유의 보호를 받을 만한 사안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표현의 자유 vs 프라이버시
고커 미디어는 헐크 호건 동영상이 뉴스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인기 스타로서 대중의 관심 사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헐크 호건 동영상을 보도한 것은 고커 미디어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연예 전문 매체 등이 이미 관련 사실을 보도하면서 해당 동영상의 장면을 캡처해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고커는 그걸 동영상으로 올리는 패기를 발휘한 것이 차이였습니다.
헐크 호건은 TMZ 등의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그 동영상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는 점도 거론됐습니다. 언론 인터뷰에서 동영상을 언급했기 때문에, 그 동영상에 대한 프라이버시는 포기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인터뷰에서의 언급을 통해 그 동영상은 보도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의미인 듯합니다.
헐크 호건은 동영상이 찍히고 있는 줄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버바 클렘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헐크 호건이 영상이 찍히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발언했다는 점도 논란입니다. 고커 미디어는 토드 클렘을 법원에 불러 증언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헐크 호건 측 변호인은 고커 미디어가 뉴스 가치나 공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동영상을 올렸다고 주장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고커 미디어 직원들이 사내 채팅방에서 동영상에 대해 한 농담들을 찾아 들이대기도 했습니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이 동영상을 다뤘다는 정황 증거라는 거죠.
사실 고커 미디어 창업자 닉 덴튼은 헐크 호건 동영상의 뉴스 가치 판단에 대해 큰 관심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의 과거 행적을 보면 그는 극단적인 표현의 자유 옹호자로, 무엇이나 발언하고 공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과거 그는 ‘테슬라 창업자 피터 티엘이 동성애자’라고 고커닷컴에 올리기도 했고, ‘미국의 여성 정치인 크리스틴 오도넬과 하룻밤 정사를 했다는 익명 남성의 이야기’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어찌 보면 닉 덴튼과 고커 미디어는 미국 수정헌법 1조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의 가장 맹렬한 실천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공익성 없는 프라이버시 침해는 보호받을 수 없다
법원은 고커 미디어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헐크 호건의 정사는 개인적 프라이버시일 뿐 뉴스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 프라이버시의 손을 들어준 셈입니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표현의 자유’로 보호할 수는 없다는 판단입니다.
법원은 헐크 호건의 요구 이상의 배상액을 부과했습니다. 1억4000만 달러! 이 돈을 물어주면 고커 미디어라는 회사는 뿌리째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헐크 호건이 고커 미디어에 제대로 레그 드롭을 찍은 셈입니다. 고커 미디어는 2014년 4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고커 미디어는 곧바로 항소 계획을 밝혔습니다. 송사가 마무리되려면 아직 꽤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사이에서 어떤 결말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이 사안에서 어느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원문: 한세희의 Medi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