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여성숭배가 여성혐오의 한 양상이듯, 호남숭배도 호남혐오의 한 양상이라는 글을 보고 뭔가 뿌옇던 시야가 한 차례 걷힌 느낌이다. 지역 차별 역시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처럼 기울어진 지형의 문제인데, 영남 출신인 나로서는 이 문제에 대한 자각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1.
최초로 어떤 ‘느낌’을 받은 것은 열아홉에 대학 합격장을 받아들고, 이 좁고 안락한 소도시 바깥의 친구, 전라도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을 때이다. 그 친구의 말에 홀린듯이 양귀자의 <희망>을 사서 읽으며 내가 지금까지 보고 들었던 모든 것들이 일부, 그것도 지극히 왜곡된 축을 바탕으로 한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그 전까지는 나도 아무렇지 않게 “아 요즘 지역 차별이 어디 있어”하는 말을 했다. 전라도 지역으로 대학을 가게 된 친구들이 (역)차별을 걱정할 때, ‘내 주위에’ 지역 차별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없고, 나 역시 호남이라는 지역에 대한 어떤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우 천진하고 게으른 착각으로, 이는 자기가 기득권인 줄 모르는 이가 저지르는 대표적인 실수이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편견이 없는, 차별하지 않는 공평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비-영남인들을 완벽하게 투명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남혐오’를 내 몸으로 겪어본 적도 겪을 필요도 그리하여 그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거나 생각해볼 필요가 없는, 시혜자였기 때문에.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오랫동안 무심했다. 역시 나에게 당장 급한 문제가 아니었기에, 심지어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지방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모두 약자”라고 생각했기에. (나중에 강원도 출신 친구를 만나 역시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에 대해서 들었을 때도 나는 무심했다.)
2.
이번 ‘호남혐오’의 특징은 지금껏 이들을 ‘홍어’라고 비하했던 측이 아니라, 소위 ‘깨시민’님들로부터 만개했다는 사실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사고와, 호남인들을 표 셔틀로만 보는 태도는 다르지 않다. 선거 이후 ‘호남에 대한 부채의식을 버린다’는 등의 선언을 보며 그것이 찍어낸듯 여성운동에 대한 ‘잠재적 지지 철회’와 닮아 있음에 놀란다. ‘나’가 어떤 짓을 해도 받아주는 ‘엄마 같은 성녀’를 바라는 천박한 마인드는 ‘어떤 짓을 해도 야당에 표를 몰아줄’ 호남에 대한 환상과 짝을 이룬다. 우스운 일이다. ‘성적 대상화’에 버금가는 ‘텃밭 대상화’?
성지라고 추어올리다가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자 광주 정신이 죽었느니, 하면서 단번에 깎아내릴 때, ‘지역’이라는 표상만 존재할 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완벽하게 지워진다. 스스로 생각하고, 욕망하고, 어떤 목적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는다.
여성이 성녀/창녀 프레임에 갇혀 어떻게 해도 욕을 먹듯, 호남도 성지/홍어의 틀에 갇혀 어떻게 해도 ‘주적’으로 타켓팅된다. 거기에 있는 것은 ‘내 심보를 거스르면 나쁜 사람’이라는 지극히 유아적이고 편협한 아집뿐이다. 정치도 정의도 대의도 아니다. 폭력이고 혐오고 차별이고, 당신이 그토록 깨부수고 싶어하는 부조리한 ‘사회적 구조’를 지탱하는 데 벽돌 한 장 더 하는 적극적인 동조 행위이다.
3.
혐오는 낭중지추, 지금까지 숭배의 탈을 쓰고 있었을 뿐 결국에는 비어져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는 ‘없는 것’이었던 지역차별, 구체적으로는 호남혐오 문제가 비로소 인식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왔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더 많이 공부하고 치열하게 탐구해야 하고, 그보다 더 많이 실수할 것이다. (젠더 문제에 대해서도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으로서 실수인 줄도 모르는 실수를 아주 많이 했다. 그래서 더 많이 배우고 들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주제파악일 것이다.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 연대와 말하기를 박탈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치에는 더 많은, 비-당사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그러나 시혜자로 평생을 살아온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나는 이 문제에 갓 뛰어든 햇병아리고. 이런 정황으로부터 나의 뚜렷한 한계를 인지하고, 키를 잡으려고 나대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기.
이번 선거를 기준으로 또 다시 일상 정치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오래 걸렸고 늦었지만, 앞으로 더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지만, 이런 수고가 아니라면 인간의 삶과 세계는 한없이 빈약하고 난폭하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원문: 루짐송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