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어스>에 출연한 장동민을 보며 호감을 느꼈다. 직업에 대한 편견과 괄시를 능력으로 깨부수는 서사는 꽤 울림 있었고, (가부장적) 리더십과 개인의 영민함으로 우승에 이르는 모습은 쾌감을 주었다.
프로그램 바깥의 장동민에겐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았다. <지니어스>는 승리와 생존이 최우선인 세계관의 프로그램이지만 우리 사회는 (겉으로나마) 승리나 생존만을 강조하지 않는 문명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매너나 PC함을 ‘연기’라도 하는 것이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덕목일진데 그는 현대 사회 속 일원으로 전파를 탈 때도 내내 위악적 태도를 보였다. 가부장주의를 근간에 두는 성차별은 대표적인 예다(“설치고 말하고 생각하고!”).
위악적 개그의 좋은 예
어떤 위악은 필요하다. 나는 루이스 C.K.의 스탠딩 코미디가 엄청나게 위악적임에도 좋아한다. 표면으로 전하는 내용 아래, 표면과는 다른 어떤 뼈다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잔인하고 엉뚱하고 못된 이야기의 끝에, 찰나의 번뜩이는 지성을 목도하게 된다. 그는 위악적 농담을 통해 아슬아슬한 긴장과 반전을 선사하다가, 돌연 예측에서 빗겨나는 전개를 통해 인종 차별, 성차별, 종교적 맹신 등 대중적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논란이 되는 해당 회차 <코미디 빅리그>를 (굳이) 찾아봤다. 논란이 된 많은 부분 중 아동을 성적대상화했다는 부분은 내게는 오히려 풍자로 느껴졌다. 다수의 노인 분들이 어린 애들 성기 볼 권리가 있는 것처럼 구는 것을 싫어해왔다는 개인적 이유 때문인지(그런 문화 싫은 사람은 나뿐?), 장동민이 분한 ‘세상 물정 일찍 깨우친 어린 아이’가 용돈 받기 위해, 혹은 상대를 위로하기 위해 성기를 보여주는 설정은 봉건적 문화에 대한 풍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쁜 예: 약자를 조롱하는 전형적인 한국적 풍경
반면 이혼 가정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어른이 놀려서 울게 만든 연출이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이혼 가정 아이 ‘당사자’가 천진난만하게 스웩을 보이는 연출이어야 사회적 편견을 비트는 풍자가 됐을 것이다. “생일 때 선물을 양 쪽에서 받아서 좋다”, “아버지랑 결혼한 아주머니, 나한테 잘해주고 그 분이 낳은 동생이랑도 사이좋다,” “부모님이 과도한 잔소리 안 해서 좋다” 등의 말을 이혼 가정 아이가 했다면 어땠을까? 편견에 쩔은 상대의 공격이 진심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충청도의 힘’이 재현한 것은 약자를 조롱하는 한국적 풍경이다. 게다가 놀림 받는 아이를 연기한 코미디언은 왜 하필 플러스사이즈인 건지? 외모에 대한 편견이 작용한 것은 아닐지 의심한다. 한국 코미디에서 놀림의 대상이 되는 이들이 주로 ‘못생기고 뚱뚱한’ 사람, 그 중에서도 여성일 때가 많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위악은 대상을 낯설게 보게 하여 잊힌 진실을 환기할 때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이혼 가정 아이에 대한 편견도, 외모 차별도 한국사회에 발에 채이게 흔한 일들인데 그에 대한 성찰 없이 못되게 굴면 뭐하나. 너무 뻔하고 고질적이다. 게다가 그는 비슷한 성격의 사건을 이미 여러 번 일으켰다. 불과 1년 전에 반성하고 자숙하겠다고 했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혹자는 장동민이 작가가 써준 대본을 연기한 것에 불과하다며, 캐릭터를 연기한 ‘인물’을 과도하게 비판하는 것이 아니냐는 옹호를 한다. 그러나 1년 전 공개 사과를 한 인물이라면,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 대해 공부하여 주어진 대본의 문제점을 관객에 앞서 발견하는 것이 사과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길이었다고 본다.
지성 없는 위악은 ‘악’일 뿐
영혼 없는 반성과 기존과 동일한 가치관으로 안일한 코미디를 지속할 것이라면, 그냥 <더 지니어스>, <정글의 법칙>, <진짜 사나이> 등 문명사회의 장력에서 벗어난 무대에서만 활동했으면 한다. 토크쇼나 꽁트쇼에 나오고 싶다면 좀 더 지성적인 위악에 대해 고민한 뒤이기를 희망한다. 사실, 지성 없는 위악은 그냥 ‘악’ 아닐런지.
원문: 최서윤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