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총론은 빈약하며 각론은 부족하고 비민주적이기까지 하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현행 헌법 119조 2항에 ‘경제의 민주화’라는 말을 넣었다고 해서 ‘경제민주화의 아버지’로 대접받는 사람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그가 내세우는 ‘경제민주화’란 도대체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그의 ‘경제민주화’ 담론에 있어서 정책 대안, 즉 각론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의 정의, 즉 총론이 제대로 되어 있다면 각론 부족은 어느 정도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을 다 읽은 뒤 내가 내린 결론은 김종인의 ‘경제민주화’가 총론과 각론 모두에 있어서 문제가 많으며 심지어 비민주적인 측면도 꽤 있다는 것이다.
김종인의 경제민주화와 독일의 질서자유주의
우선, 경제민주화의 총론-정의가 가지는 문제이다. 저자는 경제민주화의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지나친 탐욕을 억제해 특정 거대경제세력(=대기업, 혹은 ‘재벌’)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를 차단함으로써 시장 전체의 효율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소득 분배는 경제민주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독과점 규제로 자유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자는 전형적인 ‘반독점’의 논리이다. 저자가 경제 부처 중 공정거래위원회를 특히 중요시하는 것, 미국 역대 대통령 중 반독점 정책에 앞장섰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최고로 꼽은 것 등이 다 일맥 상통하고 있다.
저자의 경제민주화가 독일의 질서자유주의(Ordoliberalism)에서 왔다는 주장이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영문 위키피디어를 찾아보니 Ordoliberalism의 정의가 이렇게 나와 있었다.
“Ordoliberalism is the German variant of social liberalism that emphasizes the need for the state to ensure that the free market produces results close to its theoretical potential.” (social liberalism이 무엇인지 하는 논의는 생략하기로 하자. 나도 잘 모르니.)
저자가 내린 ‘경제민주화’의 정의에 ‘국가’라는 주어를 추가하고 ‘특정 거대경제세력’이라는 목적어를 빼면 위키피디어에 나온 ‘질서자유주의’의 정의와 아주 비슷해진다.
‘경제민주화’의 헛점들
나는 저자가 내린 ‘경제민주화’의 정의가 빈약하고 헛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첫째, 한국 경제의 모든 문제를 대기업(‘재벌’)의 책임으로 돌리는 ‘재벌 환원주의’의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단적으로 말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원하청 구조만 개선하면 한국 경제가 완벽해지는가? 콜버스 논란에서 보듯 정부의 여러 규제가 한국 경제의 효율성을 낮추는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경제적 약자에 대한 불공정 계약(‘갑질’)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자영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대부분 중소기업이며, 자영업자가 고용한 노동자야말로 법의 보호에서 가장 크게 벗어나 있다. 해외의 경제 주체, 즉 ‘다국적 기업’과 ‘국제 투기 자본’에 대한 시각도 정리되어 있지 않다. (이들이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경제민주화’의 헛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둘째, 경제의 효율성 제고라는 그 목표 자체가 ‘민주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경제민주화’라고 할 때 사람들은 보통 형평성을 떠올린다. 자산 및 소득 분배의 불평등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그 실천 원리인 평등(1인1표)에 있다.
그런데, 저자는 형평성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경제민주화’의 목표는 효율성 제고에 한정된다. 그렇다면 왜 ‘민주화’라는 이름을 붙였는가? 경제의 효율성은 민주화를 통해서만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재 정권도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충분히 효율적일 수 있다. 60~70년대 박정희 정권, 그리고 최근의 중국 정부가 그 좋은 예라 하겠다.
셋째, 그렇다고 ‘절차의 민주화’를 주장하지도 않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민주적으로’ 즉 법에 기반하여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의 지배(rule of law)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아닌가! 다시 영문 위키피디어의 Ordoliberalism 항목에서 찾아본 다음 구절도 내 생각을 뒷받침한다.
“Ordoliberal theory holds that the state must create a proper legal environment for the economy.”
질서자유주의는 ‘법적 환경’을 중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분명 민주적이다. 그런데 저자의 ‘경제민주화’ 정의에는 이러한 절차적인 논의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너무 당연해서 빠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과거 자신이 주도하여 성공한 대기업 정책의 예로 주력업종 제도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 조치와 같은 ‘초법적’인 것들을 주로 예시하는 것을 보니 민주적, 법적 절차 얘기를 뺀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저자가 내린 정의에 생략된 ‘국가’가 ‘(직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민주 국가’이기 때문에 경제민주화인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실제로 그는 ‘경제민주화의 뜻은 어느 특정 경제 세력이 나라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쉽게 말한다면 ‘재벌’에 대한 규제가 ‘금권 정치’를 방지하기 때문에 ‘경제민주화’인 것이다.
정말 이것 뿐인가? 솔직히 빈약하다. 사실 이것도 호의적인 해석이다. 삐딱하게 본다면, 그는 유학 시절 접한 독일의 질서자유주의를 지난 수십 년 유행했던 ‘민주화’라는 단어로 포장한 것뿐이며, 그나마 민주주의의 기본인 절차의 민주화, 법의 지배를 경시한 흔적도 보인다.
무의미한 정책 제언들
이제 이 책에 나열한 정책 제안을 따져볼 차례이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하다. 그나마 좀 구체적인 것들은 대부분 자신이 과거 제안했던 정책들이며, 최근 상황에 대한 이해는 정말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대기업들이 공정거래법만 제대로 지켜도 경제민주화는 상당 정도 이루어진다”는 주장에서 나는 공허함이 느껴진다. 공정거래법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 경제의 요술방망이, 만병통치약인가? 경쟁 촉진으로 라면값, 통신비가 싸지면 과연 우리의 살림살이는 눈에 띄게 나아지는가? 공정거래법만으로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격차, 원청-하청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가?
구체적인 정책 제안 중 가장 황당했던 것은 노조 정책이다. 일단 “노조가 강하지 않으면 소득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 점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기업 안에 노조를 두는 것은 전근대적이고 어리석은 짓이다” 이건 무슨 소리인가?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사이의 임금 격차가 우리나라의 노조가 산업별이 아닌 기업별 체제인 것에 일부 기인한다는 주장은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노조 사무실을 기업의 사업장 바깥에 둔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산업별 노조가 만들어질까? 산업별 노조 결성 및 ‘연대임금제’가 얼마나 힘든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노조를 기업 밖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파업 시) 기업의 생산시설 보호였다. 경제민주화는 무슨…
‘양극화 해소’에 있어서 저자는 말만 많을 뿐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그 브랜드를 활용해 중소 하청기업들이 일어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가? 하다못해 이익공유제나 하청업체의 협동조합 결성 얘기도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양극화 해소 방안이랍시고 정부의 매칭에 의한 벤처펀드 조성을 꺼내는 것은 너무나 구태의연했다. “청년층이 노년층에게 스마트폰 활용 방법을 지도하는 1인 기업 창업 장려”에 이르러서는 한숨밖에 안 나온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김대중 정부와 그 밑의 관료들이 구조조정을 잘못했기 때문에 양극화가 심화되었다고 자꾸만 얘기하는 데에서는 짜증도 났다. “1970년대 사고방식으로 접근해서, 169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오히려 재벌 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는데,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했어야 한다는 것인가?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공적자금으로 부실채권 매입 및 금융기관 자본확충·예금 대지급을 진행한 당시의 구조조정은 내가 볼 때 아주 교과서적인 수순으로 진행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담당한 김대중 정부보다는, 외환위기에 이르는 경제의 구조 악화를 방치한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 책임을 묻는 것이 더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외환위기의 원인 중 하나인 과잉투자는 기본적으로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호/신도시 건설로 시작되었고, 저자는 그 때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많은 연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확대, 제조업 고용의 감소 등 한국 경제의 여러 가지 문제가 실은 외환위기 이전인 80년대 말~9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저자의 책임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거대경제세력’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거대경제세력’의 개혁에 있어서도 저자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대기업집단에 대한 순환출자 및 출자총액 제한 제도는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고 하지만, 그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라고는 “시대정신과 시장 변화에 맞춰 (대기업) 스스로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과정을 바꾸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재벌의 지배구조에 민주적인 운영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기업의 의사결정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이사회 운영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사외이사 제도는 유명무실하다” 그러면 도대체 뭘 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이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재벌의 탐욕을 억제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두 세 차례에 걸쳐 ‘대통령의 의지’를 반복한다.
그렇다면, 그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무슨 조치를 해야 하나? 저자가 예로 든 것은 자신이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있을 때 실시한 주력업종 제도였다.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대통령의 자의적인 기업 경영 간섭인 셈이다. 솔직히 기업(주식회사)의 지배구조나 의사결정구조는 ‘민주적’일 필요가 없다. ‘1원1표’의 원칙만 지키면 된다. 반면, 대통령의 기업경영 간섭이야말로 나는 ‘법의 지배’에 위배되는 ‘비민주적’인 조치라고 생각한다.
복지 정책에 있어서 일단 저자는 “보편적 복지는 말이 안 된다”, “생애주기적 맞춤형 복지도 교과서에서나 하는 얘기다”라는 지극히 보수적인 얘기로 논의를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그가 사민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 그가 주장하는 ‘경제민주화’의 뿌리인 질서자유주의가 독일 우파의 본류인 기독교민주당(CDU)의 핵심 정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자연스럽다.
자꾸만 “교육과 보육은 복지로 보지 말자”고 반복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중도 우파’임을 드러낸다. 정부가 교육과 보육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그는 중도이며, 복지를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파인 것이다. 국민연금에 있어서 그는 부과방식을 지지하고 있다. 과거 유신 시절 그는 (현재와 같은) 사실상의 적립식 국민연금 시행을 반대하고 대신 의료보험 시행을 찬성한 적이 있다. 다만, 박근혜 정부가 실천에 옮긴 기초연금의 증액 말고 어떻게 더 구체적으로 ‘부과식 연금’을 시행할 것인가 하는 제안은 보이지 않는다.
예산(재정)을 구조조정하면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조세감면제도의 일몰시한이 다가오면 더 연장하지 말아야 한다 등의 얘기는 누구나 다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다만 그 실천이 어려울 뿐이다. 국민연금을 출산율 장려에 ‘투자’하자는 제안이 알고 보니 이 책에 나와 있었다. 물론 임대주택을 건설한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제안은 없었다. 굳이 다시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출산율을 높이는 확실한 투자”는 없다는 것만 덧붙여 둔다. 출산율은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최근의 주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구 고령화 문제가 덜하다는 미국도 ‘비 히스패닉 백인’들의 인구구조는 전형적인 종형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질서자유주의’의 기본 명제 중 하나이며 무엇보다 1차대전 직후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저자가 최근 강봉균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이 발표한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은행의 외환시장 개입, 즉 ‘고환율 정책’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리 중요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금산분리 원칙에 대해서도 반대는 하지만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상 국내에서 은행을 소유할 만한 기업도 별로 없다”는 얘기는 금산분리 찬성론으로 들리기도 한다. 솔직히, 우리은행 민영화를 국민주 공모 방식으로 하자는 주장은 황당하게 들렸다. 국민주 공모 방식 민영화가 과연 성공한 정책이었는가? 그렇게 민영화된 대표적인 두 기업인 포스코와 KT의 CEO를 사실상 정부가 임명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리가 불거지는 현상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한국의 현실에서는 ‘대주주가 있는 기업’이 지배구조상 더 낫다고 결론이 내려졌으며, 그래서 우리은행 민영화도 국민주 공모 방식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무조건 “내가 관여했던 정책이 최선이다”라고 고집하는 듯이 보이는 것은 내 오해일까.
부동산 정책은 있다
“부동산 정책은 없다”는 주장을 접하고는 솔직히 좀 황당했다. 저자도 분명 부동산 가격 상승이 우리나라의 분배 구조를 악화시킨 것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부동산은 그냥 시장에 맡겨 놓는 것이 정답이라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이 사람의 주장이 질서자유주의가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잘 읽어 보니 저자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케인즈주의적인 거시 안정 정책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질서자유주의의 기본 입장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경기순환상 호황은 스스로 가라앉는다”, “경기가 자연스럽게 상하향 곡선을 그리도록 그냥 놓아두면 된다”, “경기가 하강하면 금리가 하락하고 자연스럽게 부동산에 투자하면 된다”는 언급은 경기 부양책이나 과열 억제 정책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인플레이션 방지 뿐인 것으로 보이며, 프리드먼의 ‘준칙주의’가 연상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지난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진행되고 있는 여러 경제학 및 경제정책에 대한 논의를 깡그리 무시한 얘기로 보인다.
저자 자신도 강조한 그 ‘탐욕’ 때문에 호황이 스스로 가라앉기는커녕 금융 위기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통화/금리 정책은 물론 ‘부동산 정책’으로 표현될 수 있는 거시 건전성 정책이 각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부동산 정책을 따로 쓰는 나라는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래서 잘못된 것이다.) 금융 위기 이후는 또 전 세계가 ‘구조적 저성장’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정말 “경기가 자연스럽게 상하향 곡선을 그리도록 그냥 놓아두면 된다”면 도대체 우리가 저성장 기조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저자는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임명되기 이전에 도입된 토지공개념 제도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경제수석 취임 직후 추진한 30대 재벌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 조치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켰다고 주장한다. 일단,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매각하게 한 것이 시장 원리에 어긋날 뿐더러 법에 기반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비민주적이기도 하다. 당시 부동산 가격의 안정이 과연 기업의 부동산 매각 때문이었는지도 의심스럽다. 나는 주택 200만호/5대 신도시 건설이라는 주택 공급 확대 조치와 한국은행의 통화 긴축 정책이 합세해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켰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말 경제’민주화’인가?
마지막으로, 저자가 양극화 해소를 주장하면서 은근히 드러낸 비민주적인 모습을 지적해 본다. 양극화 해소가 빈곤층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빈곤층에게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 발동해 집단행동에 나서면 제어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독재자인 박정희나 전두환 앞에서 할 이야기이지 민주 정부의 지도자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다. 하물며 4선 국회의원이며 유력 대통령 후보의 선거 운동을 주도하는 정치인이 책을 통해 국민 대중에게 할 얘기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두 가지만 더.
첫째, 저자는 이 책에서 70년대 박정희 정부에 대한 정책 제언과 노태우 정부 때 직접 참여했던 여러 정책 방안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고 있지만, 전두환 정부 때의 경험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찾아보니 그때도 분명 민정당 소속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있으면서 정부의 ‘경제 브레인’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왜 전두환 정부 때의 경험은 책에서 뺐나? 전두환이 워낙 인기가 없어서? 1982년 그가 금융실명제 유보를 강력히 주장하여 관철된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당시 신문에는 ‘금융실명제 보완을 주도’했다고 나온다.) 금융실명제 유보와 경제민주화의 연관을 주장하기는 곤란할 테니.
둘째, 1980년 국보위에 참가한 경제학 교수 두 명이 바로 김종인과 한승수이다. 김종인은 우리나라 유일의 비례대표 5선 국회의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승수는 상공/외교장관, 부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주미대사, 국무총리, 3선의원을 역임하여 ‘한국 최고의 관운’을 자랑한다. 둘 다 권력욕이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원문: 새나의 창고
※ 이미 한참 전에 마감되어 딱히 홍보할 필요가 없지만, 어쨌든 겸사겸사 하는 글쓴이 오석태 님의 어벤져스쿨 특강!
암울하지만 꼭 알아야 할 세계경제 전망
왜 이 강연을 만들었나요?
다들 세계경제 이야기를 하지만, 자신의 정치성과 소속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강연은 그런 한계를 벗고, 정말 객관적인 세계경제 전망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강연을 들으면 뭘 알 수 있나요?
세계 경제의 ‘구조적 저성장(secular stagnation)’에 관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왜 ‘고용 없는 성장’이 아닌, ‘성장 없는 고용’이 됐는지, 유럽과 일본은 왜 마이너스 금리에도 경제 활력이 없는지, 중국의 구조조정은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 또 이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상황인지, 전체적인 큰 그림을 2시간만에 그릴 수 있습니다.
왜 오석태 선생님이지요?
오석태 선생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유학에 이어 시티은행, SC은행, 소시에테제너럴은행에서 꾸준히 세계 경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화려한 스펙(…)은 논외로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로 현업에서 거시경제를 분석한 분은 드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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