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정부에겐 소위 3개의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북한과 이란, 그리고 쿠바입니다. 하지만 이중에서 북한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들과는 화해를 했습니다. 이 화해는 8년간의 오바마 정부 중에 가장 잘한 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의 대통령이지만 ‘힘없는 대통령’으로 비아냥을 들을 만큼 오바마 정부의 외교정책은 큰 성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쿠바는 미국과 아주아주 가까운 나라입니다. 보트로 3시간이면 맞닿을 수 있는 거리. 하지만 미국과 쿠바는 영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세계사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극도의 갈등을 빚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인식: “쿠바가 나라야?”
과거 미국인들은 쿠바를 자신들과 동등한 나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나라가 있겠지만…).
미국은 쿠바를 ‘스페인이라는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라고 표현하며 쿠바를 점령해서 미국의 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19세기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지였지요. 아바나 항에 정박중이던 미국 군함이 폭발한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스페인과 미국은 전쟁을 하게되고, 이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쿠바를 3년간 군정 통치를 하게 됩니다.
1902년 쿠바가 독립한 후, 미국과 쿠바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경제교류가 매우 활발했고 미국의 자본은 쿠바에 깊숙히 침투하여 사회와 경제를 완전히 장악합니다. 당시 쿠바 경제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던 사탕수수 산업의 60%를 미국이 장악할 정도였습니다. 미국은 자본의 힘으로 쿠바를 삼키려고 했지만, 쿠바의 정치까지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합니다.
쿠바 혁명
미 군정의 지배를 잠시 받기는 했지만,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쿠바에는 크게 3개의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 제라르도 마차도 정권- 실정 끝에 반군에 정복
- 플헨시오 바티스타 정권- 독재와 폭정을 거듭하다가 공산 반군(피델 카스트로)에 정복
- 피델 카스트로 정권 – 현재까지 수권(라울 카스트로)
나름대로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였던 미국과 쿠바는 카스트로의 공산혁명이 일어나면서 완전히 멀어집니다. 카스트로 정권이 농지개혁법과 대기업 국유화법 등을 발표하면서 쿠바에 진출해 있던 미국 기업들의 자산도 타격을 입은 것입니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은 카스트로 반군이 아닌 플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을 지원했으니까 말입니다. 1961년, 미국과 쿠바는 결국 국교를 단절합니다.
너 죽고 나 살자
1961년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였습니다. 미국과 국교를 단절한 쿠바는 소련과 친해집니다. 거리상으로 약 15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소련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우려한 미국은 쿠바를 죽이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피그만 침공사건(Bay Of Pigs Invasion)입니다. 미국에 망명을 온 쿠바인 1500여명을 훈련시켜 쿠바에 침투시키고 그를 통해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고 한 것이죠. 하지만 이 작전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갑니다. 100여 명이 사살되고 1000여 명 체포됐습니다.
미국의 공격에 쿠바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쿠바는 소련과 손을 잡으면서 미국을 압박하려고 합니다. 소련은 쿠바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비밀리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정찰기에 의해 미사일 기지는 발각되고, 전세계는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입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입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이 당시 미국과 쿠바의 관계가 얼마나 위태로웠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 외에도 미국은 쿠바와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여러가지 작전을 벌였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압박 또 압박
정책적으로 미국은 모든 방법을 이용해서 쿠바를 압박합니다. 교역과 투자, 금융 거래 등의 경제적 교류는 물론, 여행 금지와 같은 조치도 당연히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카스트로 정권은 굳건했습니다. 쿠바의 경제는 무너졌지만 쿠바의 정권은 무너지지 않는 아이러니. 북한과 함께 전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가 되었지만, 쿠바는 결코 몰락하지 않았습니다.
화해
2015년 7월. 오바마 정부는 더이상 쿠바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생각에 국교를 정상화합니다. 그의 정치적 성과이자 세계평화를 위한 좋은 일이었습니다. 물론 한계점도 있습니다. 미국은 쿠바에 계속해서 인권을 강조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쿠바가 미국의 모든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일 리는 없습니다. 쿠바는 과거의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 자본에 의해 나라가 좌지우지된 역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쿠바가 원하는 것은 국교 정상화를 통해 미국의 각종 제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쿠바의 미래
쿠바는 직업에 대한 차별이 없는 나라입니다.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가 따로 나눠져 있지 않고, 성평등의 측면에서도 훌륭합니다. 빈부격차도 없고 교육과 의료의 수준도 높은 곳입니다. 하지만 벌이의 어려움은 있습니다.투잡, 쓰리잡은 해야만 생활이 가능한 경제입니다. 대학교수가 관광가이드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이런 경제구조 때문에 아예 쿠바를 떠나는 인재도 넘쳐납니다. 너무나도 평등한 사회이지만 삶은 결코 녹록치 않아서인지 쿠바의 저출산 문제는 아주 심각합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은 활발한데 자식을 맘 놓고 키울 수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쿠바는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습니다. ‘굳이 미국이 아니더라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쿠바는 의료나 관광산업, 높은 교육수준을 통한 노동력 등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니켈 등의 지하자원도 풍부합니다. 자력구제가 불가능하더라도 유럽이나 중국에 손을 뻗으면 잘 살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게다가 쿠바 정부는 미국 식의 자본주의와 신용경제에 극도의 예민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 내에서도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가 전면 해제되지는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의회에서 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통해 보면, 미국과 쿠바의 역사적인 국교정상화는 이뤄졌습니다만 완전히 자유로운 교류와 끈끈함은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카스트로 정권은 당연히 미국의 영향력에 의해 자신의 정권이 타격을 입는 상황을 우려할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과 쿠바 사이의 완전한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이 사례를 통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혜와 시도는 필요합니다. 그 어떤 압박에도 무너지지 않은 쿠바. 북한도 그러할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혈맹이 있기에, 더욱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원문: 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