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엔 무조건 미역국?
“다문화 여성들이 임신했을 때 가장 먹기 힘든 음식이 뭔지 아세요? 김치에요. 출산 후에는 미역국이고요.”
결혼도 하지 않은 30살 청년 한만형 다누리맘 대표로부터 전문가 못지않은 이야기 보따리가 술술 풀려나왔다.
“한국에선 출산 후 미역국을 먹지만 베트남에선 돼지 족발을 푹 우려낸 국물을 마셔요. 가물치 조림이나 돼지고기 조림을 즐겨먹지요. 중국에선 좁쌀죽과 삶은 달걀을 먹기도 해요.”
다누리맘은 ‘다문화 가족 모두가 누린다’라는 뜻을 담은 예비사회적기업이다. 다문화 여성을 산후 관리사로 양성해 같은 국적의 산모와 1대 1로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누리맘은 산모의 출산 예정일, 출신 국가, 한국어 실력 수준 그리고 사는 지역에 관한 정보를 받아 이에 가장 적합한 산후 관리사를 연결해준다. 또 산모들에게 고급 원적외선 치료기, 유축기, 좌욕기, 찜질팩 등 다양한 산후조리용품을 무료로 빌려준다.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여성 응오프티안엉탄씨는 쌍둥이 엄마다. 그는 지난해 6월 3주 동안 베트남 출신 산후 관리사로부터 방문 산후 조리 서비스를 받았다.
“고향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았어요. 같이 대화하며 정신적으로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같은 다문화 여성이라 더 잘 할 수 있어요”
현재 다누리맘에서는 결혼이주여성의 88%를 차지하는 중국·베트남·일본·필리핀 4개국에 캄보디아를 더한 5개국의 다문화 여성 40여 명이 산후관리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공식 교육기관에서 총 60시간 이상의 산후관리사 교육과정을 수료한 전문 인력이다.
수원에서 시작한 다누리맘은 서울과 수도권의 지자체 전문교육기관과 연계해 다문화 산후 관리사를 양성하고 있다. 올해에는 100명의 관리사들을 추가로 양성할 계획이다. 이들은 본인이 희망할 경우 다누리맘에 채용된다.
“다문화여성들 대부분 비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있고 직장에서 차별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다누리맘은 다문화여성의 모국어 사용 능력과 문화적 특색을 살린 일자리를 창출해 그분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을 동시에 해결하려는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한 대표의 설명이다.
출산할 권리, 일할 권리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결혼 이민 귀화자 수는 30만 5446명에 달한다. 2007년에 비해 2배가 늘었다. 다문화가정 인구수 역시 늘어, 2050년이 되면 2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결혼이민자들은 출산 후 남다른 고민과 우울을 겪는다. 결혼이주여성의 84%가 한국에 온지 1년 이내에 출산을 한다. 적응도 하기 전에 너무 일찍 엄마가 돼버린 탓에 일반 산모들보다 우울증과 고립감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 출신 산후 전문 관리사 여선영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은 한국 문화에 적응해 불편함이 줄어들었지만, 10년 전 첫 출산 때에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정보도, 돌봐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베트남 산모들이 나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이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여 씨는 산모의 집을 방문해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을 관리해주고 고향의 전통음식으로 밥상을 차려준다. 몸 건강뿐 아니라 말이 안 통해 답답했던 산모들의 가슴앓이도 치유해준다. 한국에서 힘들었던 사연들을 공유하며 적응하는 방법도 귀띔해준다.
“처음엔 단지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도와주려고 했는데 일자리를 통해 경제적인 도움도 되고 삶의 여유가 생겨 좋아요.”
일본인 아리아 가요코 씨는 다누리맘에서 가장 오래된 산후 관리사이다.
“20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누군가에게 도움만 받고 살았는데 이제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게 고맙고 행복합니다.”
관리사들의 기본 급여는 64만 원(10일· 신생아 1명)이다. 이들은 서비스 기한이 끝나도 산모들과 끈끈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사회적 연결망을 넓혀가고 있다. 한국말이 서툰 산모들을 위해 보건소에 동행해주고, 급한 일이 생기면 기꺼이 달려간다. 때때로 산모들은 아기의 성장 과정을 담은 사진을 관리사에게 주기적으로 전송해주기도 한다.
“다문화 여성들은 취업 욕구가 대단히 높아요. 이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주었다고 봅니다. 또 출산이란 특별한 경험은 기쁨도 크지만 두려움도 큽니다. ‘잘 키울 수 있을까’하고 말이죠. 여성들이 출산 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친정엄마이고 고향의 음식입니다. 자국 여성들로부터 산후 관리를 받는 것은 정서적 안정감을 가져와 산후 우울증을 예방하는 큰 효과가 있습니다.”
양한연 은평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센터장은 다누리 맘이 다문화여성들의 일자리 창출과 심리적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정부 지원으로 가능했던 수요 창출과 일자리 창출
다누리맘은 2011년 성균관대학교 동아리 인액터스(Enactus)의 ‘맘마미아’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이 프로젝트는 다문화가정의 문제점을 모국어 사용 능력과 문화적 특성을 활용해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창의성을 인정받았고, 수원 소셜벤처 경진대회 1등을 비롯해 해마다 큰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한만형 다누리맘 대표는 “각종 대회장에서 우리의 사회적 미션을 발표하고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쏟아낸 내 말과 행동을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다”며 “이 사업으로 결혼이주여성들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 서자 포기할 수 없었다”고 창업 동기를 밝혔다.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첫 단추를 꿰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고 보니 이용자를 모집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한 대표는 ‘도움이 되는 척만 하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라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다문화가정의 89%가 전국 월평균 가구 소득보다 낮습니다. 이들 가운데 45%는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죠. 당시 79만 2000원 이란 기본 서비스 이용료는 비록 다른 산후조리원에 비해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다문화가정에게는 너무 버거웠어요. 우린 그 점을 미쳐 생각하지 못했어요.”
수요가 없으니 일자리 창출도 이룰 수 없었다. 한 대표는 산후 관리사에 대한 적정임금을 보장해주기 위해 서비스 요금을 낮추기보다는, 지원해 줄 제3자를 찾는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마중물을 부어준 건 한국수출입은행이었다. 다누리맘은 2013년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1000만 원을 지원받아 다문화 산후 관리사를 양성하는 한편, 모두 14명의 다문화 임산부들에게 평균 30여만 원의 자부담으로 방문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경력을 토대로 2014년에는 ‘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 제공 기관’으로 등록됐다. 이제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지원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서비스 이용료는 기본이 85만원(2주 기준)이지만, 결혼이주여성들은 정부로부터 산후조리비용을 최대 60만원까지 지원받기에 실제 산모들이 지불하는 비용은 20만 원대로 낮춰진 셈이다. 다누리맘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다문화 산모들에게 13만 원씩 정액으로 산후 관리 비용을 추가로 지원해주는 ‘내맘이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다누리맘의 도전은 끝이 아니다
다누리맘 이용자 수는 매년 300% 이상 늘어나고 있다. 2013년 14명에서 이듬해에는 34명으로 늘었다. 2016년에는 35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지만 산후 관리사 인력이 모자라 130명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이에 힘입어 다누리맘은 2017년에는 매출 목표액을 4억 원으로 잡기도 했다. 전년대비 400% 증가한 금액이다.
한 대표는 “회사가 성장하려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매월 정례회의를 통해 파견 나간 관리사 분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서비스 질을 높여가고 있다”고 했다. 이 과정을 통해 부족한 장비와 서비스들을 보완하고, 번역된 계약서를 작성하고, 근로계약서에 휴식시간을 명기하는 등의 변화를 일궈냈다.
다누리맘을 결혼이주여성의 손으로
한 대표가 꿈꾸는 다누리맘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그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다양한 역량을 키워 다누리맘을 그들만의 손으로 꾸려나갈 수 있도록 물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자신은, 또 다른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싶다고.
‘내맘이야’ 프로젝트 상세보기
다누리맘은 다문화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50여 명의 결혼이주여성 산모들에게 1인당 13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 기금은 GKL 사회 공헌재단의 이웃사랑 성금으로 경기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후원한다. 지원 대상은 보건복지부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지원 사업’의 수혜자에 한하며 다누리맘 서비스 신청 시 적용받을 수 있다.
해당 여부는 서울과 경기지역 관할 시·군·구의 보건소에 문의하면 된다. 소득기준에 따라 신생아 1명(12일) 기준으로 최저 12만 원에서 최고 27만 원의 본인 부담금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복지부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 사업’은 출산 예정일 40일 전부터 출산 후 30일 이내 신청이 가능하다.
원문: 이로운넷
글: 백선기
사진 제공: 다누리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