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 힘든 중증 장애인
김OO는 지적장애 1급의 진단을 받은 16살의 여학생이다. 지능검사에서는 IQ 측정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적응행동 검사상의 프로파일에서는 발달연령이 36개월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녀는 간질과 감각처리장애도 가지고 있다. 가끔 경련을 보일 때가 있으며 눈과 손의 협응이 잘 안되어 손으로 세밀한 동작을 하기 어렵다. 공간지각력이 부족해 계단이나 좁은 공간에서 걸어다니는데도 어려움을 보이며, 글을 읽지 못하며, 글씨를 쓰거나 컴퓨터를 사용하지는 못한다. 밝은 빛이나 큰 소리같은 외부자극에 매우 민감하며, 거친 재질의 옷감이 피부에 닿는 것도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녀는 말과 글같은 의사소통 수단을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얼굴표정이나 발성(무의미한 소리)을 사용할 수는 있다. 주어진 일이나 상황에 실망하거나 좌절을 했을 때는 갑자기 뛰거나 가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때리기도 한다.
이 정도의 중증의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비장애인들의 일상에서 쉽게 마주치기도 어렵다. 학령기에는 특수학교에서 비장애 학생들과 분리되어 특수교사와 생활하고, 성인기엔 주간보호센터에서 복지사와 지내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그냥 집에서 가족들과만 지내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재활치료 기관에서도 이 정도의 심한 장애가 있는 학생들은 잘 받아주지 않는다.
‘최소 위험 추정’의 중요성
그런데 이런 장애 상태에 있는 학생들을 보고 ‘아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심지어 이들과 함께 일하는 특수교사나 치료사, 복지사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 지능이나 실생활에 필요한 적응기술이나 의사소통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검사 결과에서 나타난 프로파일만 놓고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지능검사와 적응행동 검사, 언어와 의사소통 능력 등에 대한 평가는 그녀가 할 수 없는 것만 측정한 것은 아닐까? 현재 이런 중증의 발달장애인의 능력과 무능력을 가려낼 수 있는 정확한 방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낼 방법이나 도구를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1984년에 앤 도넬란이라는 연구자가 처음 사용한 ‘최소 위험 추정'(least dangerous assumption) 이라는 말은 최중도의 중복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능력을 판단할 때,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그가 ‘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판단 준거를 뜻하는 말이다.
즉, 그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적합한 방법이나 수단을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므로 할 수 없다고 단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심한 장애로 인해, 그가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는 능력을 우리가 찾아내기 어렵다해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능력을 무시하는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좀 쉽게 설명하면, 마치 형사법에서 피의자의 유무죄를 판단할 때, 재판을 받고 최종적으로 확실한 증거에 의해 유죄가 판명되기 전에는 그를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과도 같다. 최소 위험 가정을 이와 비슷하게 다시 쓰자면 중증 발달장애아에 대한 ‘능력추정의 원칙’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잠재력마저 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억울하게 무죄인 사람이 누명을 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듯이, 혹시라도 중증, 중복 장애 학생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능력을 확실한 증거 없이 무시하여 그 능력을 활용할 수 없게 만드는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어떤 능력이 없는데도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해서 교사나 그 학생에게 해로울 것은 없지만, 반면, 능력이 있는데 그것을 없을 것이라 치부해 버리는 것은 그 학생 입장에서는 얼마 남지 않은 잠재력마저 사장시키는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십대 중반까지 말을 하지 못하던 무발화인 자폐와 지적장애를 중복으로 가진 소녀가 아이패드와 의사소통 지원 앱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불과 1년만에 가족들과 기본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이 소녀와 가족의 이야기는 뉴스에 보도되기까지 했다. 소녀의 아버지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이가 저 정도의 생각을 하고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 때까지 전혀 상상도 못했다며 기적같은 일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가 혼수상태가 아니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이는 없다. 단지 모든 능력의 판단 기준이나 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수단이나 방법이, 장애가 없는 우리들이 만든 수단과 방법뿐이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못찾아 주고 있을 뿐이다. 그의 능력은 우리가 발견해 내어야 하는 미지의 땅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원문: 행복한 마음 발달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