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VR에 대한 관심이 무척이나 뜨거워졌습니다. 그러나 관심의 열기에 비해 실제 시장이 열렸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죠. 간만에 VR 시장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VR은 차세대 PC와 TV, AR은 차세대 모바일이다
먼저 제가 생각하는 VR의 의미는 차세대 PC와 TV입니다. PC는 대표적인 생산성 기기이며, TV는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기기죠. 이 두 기기의 공통점은 디스플레이의 물리적 크기가 어느 정도 제한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VR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물리적 크기의 제한을 없애버립니다. 과거의 경험을 빗대어 설명한다면, PC는 신문이고 VR은 인터넷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신문은 한번 발행되면 변경이 어렵습니다. 헤드라인의 작은 공간이 가지는 가치도 압도적으로 비쌌습니다. 그러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네이버 메인페이지의 배너는 사용자의 그룹에 따라, 혹은 실시간에 따라, 심지어는 지역에 따라 변화했습니다. 제가 2006년 네이버에 입사했을 때 네이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루에 8억 회 열리는 네이버 메인 페이지는 축구장의 몇만 배 크기를 가지고 있다”는, 요컨대 어마어마한 지면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조차도 모니터 크기에 한정된 이야기였습니다. 이것을 만약 3D로 바꾼다면? 27인치 모니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360도의 공간감과 깊이감까지 체험할 수 있는 VR은 ‘공간’이 가지는 의미부터 재정리할 것입니다.
AR의 경우에는 실생활에 더한 경험을 하게 되므로 사실상 모바일입니다. 물론 AR은 향후에 더 커질 시장이고, 100%의 공간을 다 덮는다면 AR은 곧 VR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래서 AR이 VR을 포함한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PC 다음에 모바일이 왔듯이, 이는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게임으로 시작하여 범용 도구로 발전한 PC와 모바일, VR은?
디지털 환경에서 게임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제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플랫폼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에 바로 게임이 있었거든요.
팩 게임 때문에 사고 싶었던 MSX, AT 컴퓨터를 확산시켰던 ‘윙커멘더’, 전 국민을 인터넷에 연결한 ‘스타크래프트’, 스마트폰을 구매하게 한 ‘앵그리 버드’, 그리고 카카오톡이 돈 된다는 것을 알게 만들어 준 ‘애니팡’까지.
그리고 현재, VR에 또다시 게임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늘상 그랬듯이 과거의 유명 게임을 이식하여 브랜드로 밀어보고자 하는 시도도 있고, 새로운 환경에 최적화한 게임을 구상하고도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 보면, 전자의 방식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는 있겠지만, 플랫폼을 끌어 올리는 것은 아마도 후자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게임으로 하드코어 유저를 확보한 디지털 기기는 킬러 앱의 등장과 함께 범용 기기로 거듭납니다. 그 예시로 PC는 워드프로세서가 있었고, 모바일에는 지도가 있었죠. VR은 또 어떤 기기가 될까요?
기술이 정말로 성숙했나?
기술이 정말로 성숙했는가? 누가 제게 묻는다면, 전 아직 ‘아니오’라고 말하겠습니다.
물론 MS의 ‘홀로렌즈’나 구글의 ‘매직리프’가 UFO를 고문한 수준으로 뚝 떨어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초기의 스마트폰은 포켓PC에 가까웠는데, 아이폰이 어느 정도 기술을 성숙시키는 역할을 했죠. 하지만 분명한 건, 현재 느껴지는 체감으로는 아이폰의 출현을 앞두고 터치폰들이 출현하던 시대 즈음이 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콘텐츠 시장은 아직 빠른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플랫폼이 확산되는 게 우선이며, 기술 성숙도 또한 더 필요합니다.
늘 그렇지만 개발자들이 만드는 첫 버전은 거지 같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이폰이 무르익은 건 3g였고 갤럭시도 2부터였죠. 1을 사면 마루타가 됩니다. 물론 얼리어답터나 본 분야에서 기회를 잡고자 하면 당연히 구매를 고려해야 합니다.
분명한 건 시간문제일 뿐, 언젠가는 간다는 겁니다.
그러나 기술문제, 생각보다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기술 미성숙에 대한 많은 이들의 지적 중 하나가 ‘어지럽다’는 지적입니다. 저도 오래 해 보니 어지럽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울펜슈타인3D>를 처음 접했을 때보다는 할 만했습니다. <울펜슈타인3D>를 처음 접했던 저는 멀미를 참아가며 플레이를 했습니다.
왜냐, 재밌으니까! 좀 지나니 멀미도 줄어들었습니다.
멀미란 것은 기본적으로 뇌에서 인지하는 부조화에 대한 거부반응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뇌가 적응하면 큰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사람의 뇌는 3차원의 인지를 후천적 경험에 의해 학습합니다.
선천적 맹인이 눈을 떴을 때, 맹인은 사진의 사과와 실제 사과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 리얼월드에서 학습된 우리의 뇌가 VR에서 느끼는 거부감은 VR이 익숙해지면 덜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인 쿠사나기모코토 소령은 갓난아이일 때 전신전뇌(몸을 기계로 바꾸는것)화 한것으로 묘사되는데, 덕분에 쿠사나기 소령은 전신의체(로봇 몸과 정신)을 다루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아직 VR이 아이들에게 부작용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의심이 많이 퍼져있는 것은 현실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현대백화점 기어 체험관에 갔는데 진행 요원이 우리 딸과 아들의 체험을 막더군요. (이미 카드보드와 코코몽 3D EYE로 익숙해진 아이들인데…)
개인적으로는 VR이 아이들에게 큰 위해를 가져올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인간의 뇌가 생각보다 더 적응력이 좋기 때문입니다. 혼란스러워 할 것 같다는 것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뇌는 유사형태의 다른 정보를 혼란스러워하기보다는 학습하는 형태로 나아갑니다. 숫자 1과 영문 I가 비슷하다고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만 각종 기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DNA를 파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더 걱정이죠.
적절한 콘텐츠가 나오면 기술적인 문제는 커버될 것이라고 봅니다. 언제부터 게임 그래픽이 게임의 전부였나요?
VR 생태계의 헤게모니를 누가 잡을까?
결국, 모든 기업과 정부의 고민은 ‘VR생태계의 헤게모니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일 겁니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나? 혹은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나? 플랫폼을 만든다고 콘텐츠는 거저 오는가? 기기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이러한 노력은 CPND의 모든 레이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디바이스에서 시작되어 콘텐츠로 이어져 가며 성장한 이후 플랫폼을 잡는 자가 헤게모니를 가져가더군요.
현재로써는 해당 시장의 선두주자가 구글과 페이스북 같더군요. 각종 VR 영상들이 이미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유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 영상을 제대로 보고 싶으시다면 유튜브에서 직접 보시는 편을 추천드립니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있는 고민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VR 영상이 킬러 콘텐츠일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기존의 형식을 조금 더 버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현재까지의 역사에 비춰보면, 새로운 플랫폼의 킬러 콘텐츠는 플랫폼이 가진 차별성을 가장 극대화하면서 꼭 그 플랫폼이 아니면 안 되는 필수적인 가치를 던져주었던 것이지요. VR에는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를 알기까지는 아마도 다양한 실험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원문 : 숲속얘기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