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썼기 때문에 전문가다
1인 기업 또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블로그를 쓰라고 하면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서 못 쓰겠다는 분들이 많다. 아직 전문가 반열에 들지 못해서, 아직 공부하는 중이라서… 쓰지 않는 이유도 여러 가지다.
하지만 여러 번 얘기했듯이, 전문가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썼기 때문에 전문가라 불리는 것임을 잊지 마시라. 1인 기업이 블로그를 쓰는 궁극의 목적은 바로 ‘전문성 드러내 보이기’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은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차이는 단순한 ‘Difference’가 아니다. 바로 ‘Distinction’을 말한다.
소재와 주제는 다 거기서 거기다
소재와 주제는 글쓰기 교재의 단골 메뉴인데, 블로그 쓰면서 이걸 너무 심오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소재와 주제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소재가 새로워야 하는 사람들은 드라마 작가 정도다. 논픽션 분야의 거성인 말콤 글래드웰의 소재 선택을 보자.
티핑포인트, 블링크, 1만 시간 법칙, 다윗과 골리앗 얘기는 글래드웰이 최초로 다룬 소재가 아니다. 나는 그의 저작이라면 모두 여러 차례씩 반복해서 읽는 글래드웰의 광팬인데, 그중 어디에서도 그가 최초로 다룬 소재는 등장하지 않는다. 기자 출신인 글래드웰은 그 사실을 숨기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가 ‘1만 시간 법칙’을 발견했다고 착각하는가? 바로 그가 소재를 바라보는 관점이 남들과 다르며, 서술하는 방식이 참신해서다. 아예 제목을 ‘1만 시간의 법칙’으로 달고 따라 나온 책이나 ’10년 법칙’으로 제목만 바꿔서 같은 소재를 다룬 책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는다.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같은 소재를 다루는 글은 쓸 필요가 없다. 그냥 먼저 나온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면 된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남들이 다 썼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다. 관점까지 남들과 같다는 얘기를 하면서 언감생심 전문가는 무슨…
관점이 다르면 같은 소재를 재탕, 삼탕 해도 매번 새롭다. 독자는 신선함을 느낀다. 전문가는 그 신선함을 노리고 글을 쓴다. 신선함은 차별화의 시작이며, 차별화의 핵심은 남다른 관점이다. 유려한 문장도, 신박한 표현도 아니다.
내 블로그를 세상에 널리 알린 글 「전문가가 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역시 소재만 따지자면 매우 진부한 것이었다. 요컨대 직장인이 평범하게 40대 중반이 되면 갈 데가 없다, 그러니 전문가가 되어라. 뭐 이런 식상하기 딱 좋은 얘기.
그런데 직장의 연령대별 보직 구조를 삼각형으로, 실제 인력구조를 사다리꼴로 겹쳐 그린 다음, 수요가 없는 삼각형 바깥쪽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잉여인간’이라고 불렀더니… 난리가 났다. 분석의 관점을 조금만 다르게 해도 고객/독자는 좋아한다. ‘차별화’를 중심에 두고 좀 더 구체적인 글쓰기 전략을 보자.
들은 얘기가 아니라 경험한 얘기를 써라
공학도 출신의 연구원에서 전업 작가로 변신한 임승수 작가는 글쓰기에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환경보호를 위해서 일회용품을 쓰지 말자’처럼 객관적으로 주장하는 글을 쓰지 말고 ‘내가 텀블러를 쓴 지 1년이 되었다’처럼 담담히 시작하는 주관적인 글을 쓰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자신이 겪은 일이 아니면 주관적 관점을 투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구체성이 떨어진다. 거꾸로 남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일을 겪었음에도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본인의 기억에만 두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좀 쓰시라.
경험한 얘기를 블로그에 쓰라고 하면 무슨 행사장 다녀온 이야기, 강의한 이야기, 혹은 강의를 들은 이야기, 여행기, 먹방 등을 쓰는 사람도 있다. 일상사를 기록하는 블로그라면 그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전문가의 콘텐츠 마케팅 수단으로서는 ‘영 아니올시다’다. 단순히 개인적 경험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뭘 했다는 사실만 나열할 뿐 어떤 분석도 의미부여도 주장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파견이나 출장, 교환학생이나 연수 경험을 마치 여행기처럼 쓰면서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려고 하는 블로그가 많은데, 오히려 더 아마추어 같아 보일 뿐이다. 현지에서 무엇을 관찰했으면, 그것을 자기 분야 전문가 관점에서 분석하고,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서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진격의 전기밥솥: 아프리카 식생활 트렌드 변화와 시사점」을 보자. ‘어머, 아프리카 사람들도 전기밥솥을 쓰네! 신기하다!’ 같은 감탄어구 몇 개와 사진 몇 장으로는 아마추어리즘에 머물고 만다. 거기서 한두 발자국은 더 들어가서 분석하고 결론을 내야 전문가의 글이 된다. 그렇다면 전문성을 부각하기 위한 방법을 한 번 알아보자.
1. 업계의 최신 트렌드 소개하기
가장 흔한 블로그 글쓰기 주제다. 따로 예를 들 필요도 없을 정도다. 주로 선진 사례나 해외 뉴스 등을 소개하는 글을 쓰는 것인데, 그렇다고 그 내용을 있는 그대로 번역이나 요약만 하거나, 몇 자 설명을 달아놓고 원문에 링크해 놓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전문가는 메신저가 아니다.
그러니까 전문가는 팩트를 전달하는 일에서 더 나아가 팩트에 대한 분석, 판단, 의견, 제안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보도 매체와 1인 기업은 다른 점이다. 어떤 이벤트든 뉴스 미디어가 쓴 듯한 글을 쓰면 안 된다. 사실보도가 의미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실을 보도하는 일은 뉴스 미디어가 하고, 전문가는 거기에 자신만의 구조를 입혀 새로운 논의로 발전시켜야 한다.
2. 허점 짚어서 기존 권위를 깨기
어떤 업계든 권위를 가진 개인과 조직이 있다. 그들의 글을 보다가 결정적 허점을 발견한다면? 축하받을 일이다. 그들이 당신에게 선사하는 업계진입 축하선물이다. 남들이 쓰기 전에 어서 쓰시라.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오로지 사실(fact)만 가지고 승부해야 한다. 사실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면 더 연구해야 한다.
허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진실을 일부만 보여주고 그것이 전부인 양 기술하는 허점은 당연히 전부를 보여주면서 반박한다. 「개발에 대한 공헌은 원조만이 아니다」를 보자. 어느 신문―급하게 쓰는 글이 많아서 오류도 많은, 블로거에게는 물 반 고기 반인 오류의 황금어장―에 실린, 우리나라 원조 규모가 작아서 개발공헌지수가 맨날 꼴찌라는 보도 내용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용어를 잘못 쓰면서 빚는 오류는 아주 질이 낮은 종류인데, 이런 걸 발견하면 아무리 기뻐도 표정 관리를 잘해야 한다. 까딱 잘못하면 함께 싸잡아서 수준 낮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패한 더민주의 혁신안 후퇴? 오마이의 엉터리 음모론」을 한번 보시라. ‘기소’와 ‘판결’을 헷갈려서 엉뚱한 글을 쓰다니… 아주 제대로 한 건 했다.
통계를 잘못 쓴 오류를 뒤집으면 아주 통쾌하다. 별것 아니라도 통계와 관련된 오류를 짚으면 꽤 유능해 보인다. 숫자도 마찬가지다. 수맹(數盲)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숫자로 된 오류를 지적하면 우월해 보인다. 사례는 「‘블랙 다이아몬드’라는 환상: 아프리카 중산층의 허와 실」을 참조하자.
3. 남과 다른 의견 내보이기
주류를 형성하는 의견과는 사뭇 다른 의견을 내면 주목을 받는다. 그렇다고 오로지 관심을 끌기 위해서 무조건 남의 의견에 삐딱선을 타라는 얘기는 아니다. 남들이 다 ‘예’라고 대답할 때 용기 있게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것에 가깝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남과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점협력국을 아예 지정하지 말자」를 사례로 보자. 남들이 다 A안으로 하자, B안으로 하자 하면서 토론할 때 과감하게 그따위 짓 하지 말자고 말하면서 관점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관행을 정지시키는 용기도 용기지만 적어도 ‘말은 되는 것 같은데…’ 수준의 합리성 정도는 확보해야 한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주류나 관행 범위 밖의 문제를 언급하는 것도 좋다. 사례로 「사후약방문은 소용없다: 긴급구호보다 ‘생존’을 먼저 지원하자」를 들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아주 새로운 일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선뜻 동의해주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저 ‘어, 그런 것도 있었나?’ 하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논의의 지평을 확장해 나간다는 측면에서 보면 꽤 ‘전문가스러운’ 접근이라 할 수 있다.
4. 공부한 내용 자기 말로 설명하기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었을 때, 그 내용을 글로 정리하는 것은 무척 좋은 습관이다. 그런데, 강의나 책 내용을 주구장창 베끼는 블로그들이 많은데, 그래서는 아마추어를 벗어날 수 없다. 내용을 적되 자기 말로, 그러니까 자기식의 해석과 적용이 가미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론을 공부했으면 자기 주변에서 실제 사례를 들어 검증해 본다거나, 다른 나라 사례를 보았으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적용했으면 좋을까 정도는 자기 고민이 있어야 한다. 「경제학은 과학적일 것이라는 환상: 질베르 리스트」를 한번 보시라.
앞에서 경험을 쓰라고 했는데, 독서는 전문가에게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 따라서 블로그에서 서평은 주요한 소재다. 책을 매개로 전문적인 식견을 나눌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평이라고 해서 들여다보면 태반이 내용을 소개하고 감상을 나누는 데서 멈춘다. 심한 경우는 목차를 줄줄 늘어놓기도 한다.
전문가가 서평을 쓸 때는 저자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조건을 달아 동조한다. 저자가 미처 제시하지 못한 데이터를 내밀기도 하고, 전혀 다른 입장에서 재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서평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출판사나 저자의 지인이 내놓는 찬양 일변도의 단순한 추천사가 아니라, 그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진지하게 지적으로 교류하는 계기다.
결론적으로 1인 기업이 전문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뭘 하든 남과 달라야 한다.
원문: 개발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