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의 진심
요새 본업과 동떨어진 진로상담을 꽤 하고 있다. 내가 몇 차례 이직 경험이 있는 ‘퇴사의 아이콘’이자 독립한 ‘1인기업’으로 살고 있기도 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자연스럽게 학교를 중심으로 일을 많이 하니까 젊은이들과 접촉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물론, 내가 얘기하는 걸 좋아하고, 잔소리가 많은 ‘아저씨’라서 그렇기도 하다.
취업에 많은 도움을 주고 싶기는 한데… 현실적으로는 도움을 많이 주고 있지 못하다. 워낙 경기가 얼어붙어 있기도 하려니와, 입사원서를 수백 장씩 접수하는 요새 취업 방식에는 도저히 조언할 깜냥이 아니기도 해서다. 그래서 늘 내 방식대로 하라고 조언한다. 몇 해 전 작고한 앙드레김 선생의 복식과 같은, 일관성이 있는 조언이랄까…
하고 싶은 일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취업하는 방법에 대해 거론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사실 위험하다. 사회적으로 풀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으로 제한한다는, 자기계발서에 대한 비난과 같은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난 사회적인 차원에서 실업이나 고용 문제를 풀만 한 역량이 없다. 다만,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젊은이 몇 명에게, 내 방식대로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다.
다만 전제가 있다. 일단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한다. 그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이야 ‘당근 있지’라는 친구들도, 한 단계만 더 물어보면 대부분 입을 다문다. 하고 싶은 일이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이 ‘대기업 직원’이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다. 대기업 직원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그냥 앉아있고 싶은 ‘장소’를 말하기 때문이다. ‘컨설턴트’라 해도 마찬가지다. ‘컨설팅 회사에 앉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디지털 마케팅 컨설턴트’가 되겠다고 해야 거기서부터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은 꼭 어떤 자리에 가서 앉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나 법조인처럼 자격증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과 자리는 구분되어야 한다. 하고자 하는 일을 하다가 가고자 하는 자리(조직, 보직)에 앉는 편이 그 반대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예전에 쓴 글을 다시 소개한다. 마케팅을 하고 싶다고 하기에 마케터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줬건만, 그렇게는 하지 않고 영어성적 올리기에만 몰두하던 후배. 경영학 석사지만 결국 학원 영어 강사가 되었다. 그렇다. 마케팅을 계속하면 마케터가 되고, 영어공부를 계속하면 영어 강사가 된다. 세상 이치가 참 간단하지 않은가? 뭔가를 자꾸 하면, 결국 그 일을 하게 된다.
선구자들
그런데 오늘은 내가 계속 이야기해왔던 그 실천적 방법을 실제로 써본 사람들을 접했다. 남다른 경력 LG 새내기 4인이라는 기사에서다. 기사의 내용을 보면, 남들 다 준비하는 스펙을 쌓지 않고 특이한 전략을 취해서 입사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내가 주목하는 두 명의 사례가 있는 반면, 나머지 두 경우는 추천하기가 좀 그렇다.
우선 별로인 사례 두 가지.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 경력으로 광고회사 입사. 걸그룹 연습생 경험으로 통신회사 입사. 아무리 좋게 봐도 이건 조직 차원에서 구성원의 다양성을 늘리자는 얘기에 불과하다. 취업준비하는 입장에서 이런 방법은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비추다.
내가 주목하는 사례는 두 번째, 네 번째로 소개되었다. 대학교 재학 중에 ‘남성 미용’을 주제로 팟캐스트를 운영했다. 팟캐스트는 1인미디어라는 측면에서 블로그와 비슷하다. 해외 화장품 회사에서 인턴도 했고, 여대생을 대상으로 피부관리에 대해 강의를 하기도 했다. 결국 LG생활건강에 입사, 남성 화장품 ‘보닌’의 마케팅 기획 일을 하고 있다.
어려서 여드름 때문에 고민하다 피부미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주인공은, 그 관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팟캐스트를 운영했으면 꽤 전문가 같은 분위기를 줬을 것이고, 화장품 회사 남성화장품 담당직원도 들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그런 과정에서 인턴 제안도 받았을 가능성이 있고, 그런 일이 쌓여서 자연스럽게 LG생활건강에 입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주인공이 LG생활건강에 가지 않았다면? 아마 아모레퍼시픽이나 로레알코리아에 갔겠지 싶다. 아니, 미래에 그리로 스카우트 될지도 모른다.
LG유플러스에 입사한 다른 신입사원은 잘못 소개되고 있다. 마치 단편영화를 찍은 경험 때문에 주목받은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결국은 “최신 정보기술(IT) 소식을 전하는 ‘귀족참치의 어장관리’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파워 블로거”이기 때문에 선발된 것이다. 검색해보니 그는 지방대에서 신문방송을 전공했지만, IT기기에 관심을 가지고 그 사용법을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블로그를 운영했다. 아마추어지만 이미 재학중에도 업체에서 자사제품을 후원받는 경지에 이르렀다. (“IT길잡이를 꿈꾸다“) 이 정도면 경쟁사인 SK텔레콤이 왜 이런 인재를 모셔가지 못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전략이 필요하다
일단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전략을 짜야 한다. ‘뾰족한’ 전략 말이다. 두루뭉술 한 전략으로는 이길 수 없다. 실제 내가 상담한 예를 함께 보자.
스페인어를 전공하는 친구가 금융권에 가고자 한다. 그래서 3학년부터는 전공인 스페인어보다는 금융자격증 공부에 집중하려고 한단다. 비현실적 얘기다. 같은 대학에서 경영, 경제 전공한 친구들과 같은 자격증을 따서 경쟁을 한다고? 거대한 주류를 지향하다 빠져 죽는 꼴이다. 남과 같아지려고 노력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남들과 달라질 것인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1. 전공과 일을 연계하자
일단, 전공과 일을 이어붙여 보자. 중남미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주력시장이 아니지만, 엄연히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자원, 농업 등과 관련하여 금융권 특히, 증권사에서는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애널리스트가 시장마다 분석을 하긴 하는데, 중남미 시장에 대한 분석은 아마도 미국 시장의 분석을 얻어다 쓸 것이다. 한국 기업의 관점과 입장을 가지고 중남미 시장을 들여다본다면? 미국인의 관점과는 조금은 다른 분석이 나올 것이다.
2. 블로그를 운영하자
그렇다면 중남미 증권시장과 산업계 동향, 경제 변화추이를 꾸준히 분석해서 글을 쓴다면 어떨까? 어쭙잖게 보일까 봐 걱정할 필요 없다. 100번째쯤에는 꽤 그럴듯한 글이 나올 것이다. 일주일에 한 편이면 이 년이 걸리고, 모질게 마음먹고 일주일에 두 편을 쓰면 일 년이면 100개를 쓸 수 있다. 글을 일기장에 써두어서는 아무 필요가 없으니,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려서 남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건설적 비판이 들어온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꾸준함과 깊이다. 양지로 나온 ‘덕질’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왜 블로그냐고? 이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기구 인턴십? 효과도 모르겠지만, 아무나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블로그는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다. 공짜다. 혼자서 결정해서 언제라도 할 수 있으며, 효과도 대단하다. 블로그를 어떻게 써야할 지 고민이 된다면, 1인기업용으로 내가 써 둔 블로그를 참고하시라. ‘1인기업’을 ‘전문가’로 바꿔서 생각하면서 읽으면 된다. (“1인기업의 블로그에는 무엇을 쓰나?”)
자, 이제 입사원서 낼 때가 되면 그동안 써 둔 블로그 가운데 독특하고 잘 쓴 것들을 모아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보내자. 전국적으로 비슷한 집안 분위기와 어쭙잖은 인턴십 경험을 천편일률적으로 써내는 경쟁자들보다 훨씬 전문가답게 보일 것이다.
아니, 조금만 더 내용에 심혈을 기울인다면 블로그 100개에 도달하기 전에 업계 종사자들과 의견을 나누는 기회가 올 수도 있고, 그런 인연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직장에 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분야에 대한 글을 쓰면 이미 그 분야 종사자가 된다. 아직 돈을 받지 않으니 아마추어일 뿐이다. 아마추어지만 고수는 프로 전향이 쉽고 자연스럽다. 골프, 게임 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다.
3. 제발 실행을 하자
그런데, 나도 이 얘기 처음 하는 것이 아니고, 이 글 읽는 분들도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디서 이미 한 번쯤 들어본 얘기가 아닌가? 그런데 왜 머리로 생각할 때는 그래야지 싶다가도,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까? 아마도 몰살을 당해도 다 같이 간다는 ‘레밍효과’ 때문이 아닐까? 남들이 다 몰려가는 길에서 나만 벗어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래서 혼자 가는 길이 취업에서 결정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모든 취업준비생이 여기서 추천하는 방식대로 제각기 글을 쓰고, 예비 전문가 활동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제 그 방법은 효과가 없어진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매우 소수의 사람들만 그렇게 실행할 뿐임을 우리는 잘 안다. 그래서 반드시 효과가 있다. 믿는 자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자가 성취할 것이다.
이제 새 학기다. 이번 학기부터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전공과 관련된 분야의 글을 쓰고, SNS에서 유통하는 것을 과제로 주려고 한다. 전부터 만들려고 생각해오던 ‘블로그 100개 쓰기’ 과정을 학생들에게 시험해 보려고 한다. 실행을 강제하는 방법. 과연 먹힐까. 궁금하다.
원문: 개발마케팅연구소